김의성

정말 대단한 코미디 영화가 등장했다. 극한직업의 이야기다. 사실 영화 극한직업은 "EBS의 다큐멘터리 극한직업" 프로그램에서 영향을 받은 제목이다. 이 흥행영화가 흥행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본주의의 실패작인 스크린 독점때문이었다. 극장은 여전히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꾼이다. 물론 가끔, 아주 가끔은 독립영화나 작은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1, 2회 정도 상영하긴 한다. 개미만큼의 양심은 있어서일까? 여론몰이 때문일까? 법적인 근거가 있어서 상영할까?


난 잘 모르겠다.

스크린 독점을 하고, 돈이 벌리는 영화만 골라 틀어서, 최근 한국영화 중 실험적인 작품이나 인상깊은 영화가 사라졌다.


난 이해불가다.

티켓파워의 배우를 캐스팅하고, 순식간에 찍고, 편집해서 극장에서 상영한다. 그리고, 돈만드는 문화상품인 영화를 무한 반복 제작, 촬영, 스크린 독점 후 상영하는게 한국영화를 위한 길인지?


영화 산업이 이렇게 몰락해 버린다면 다른 문화상품에까지 영향을 미칠게 분명하다. 돈이 궁한 영화계는 작가에게는 투자도 안하면서, 흥행 좀 했던 감독이 써버린 대본을 들고 영화를 촬영한다. 전문 극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헐값에 사서 흥행감독에게 맡기고, 극장에 영화를 걸면, 그게 영화산업을 발전시키고, 대단해 지는 것인지..?


스크린 자막이 모두 오르기 전에 극장을 나오고, 그 문을 나오면 기억도 안나는 영화를 양산하는 것이 관객과 영화계 전반적으로는 도움이 될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백만, 천만 관객 공약을 내세우고, 쉴새없이 영화 홍보를 하기 바쁘다. 그래야 다음 캐스팅이 될 것이고,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기 때문이다.




극한직업의 극한독점 스크린 수


1월 23일 1552개 24 - 1657개 25 - 1740개 26 - 1909개 27 - 1977개 28 - 1766개 29 - 1826개 30 - 1573개 31 - 1547개 2월 1일 1700개 2 - 1889개 3 - 1948개 4 - 2002개 5 - 1,844개 6 - 1,834개 7 - 1,557개 8 - 1,594개

9 - 1,702개

10 - 1706개

11 - 1571개

12 - 1568개


아마도, 이런 스크린 수는 대기업의 스크린 독점법에 대한 관련법이 발의되고, 고쳐지지 않는한 계속된다. 전국의 스크린 수는 2019년 3월 1일 현재 3017개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도, 주요 시간대에 상영하는 독점 영화를 피할 수 있을까? 스크린 수가 작은 영화는 영화를 보는 시간이 아닌 당황스러운 시간에 배치를 하기 때문에 정작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다면 새벽이나 오전 일찍 극장을 찾아야 한다.


영화를 틀고, 보여주는 극장이 왜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아무런 제재가 없는지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만약 당신이 주식을 한다면 이런 독점, 독과점을 하고 있는 대기업 주식을 사야한다. 절대 망하지 않는 법칙과 공식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삶을 위해 살아가던 공유(#서석우 분)가 재난(좀비)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는 내용이 주다. 결국 살아 남는 것은 몇 안되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기주의가 팽배하면 인류가 공멸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고 사람들의 대처 능력, 개인 or 이기주의의 생각들이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이 생각과 행동들이 어떻게 상황을 바뀌게 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이기주의? 개인주의? 사실 마동석(#윤상화 분) 역시 이기주의의 장면이 극 초반에 등장한다. 정유미(#성경 분)를 화장실에서 기다려 주는 매너 남으로 그의 아내를 위해 헌신을 다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석우의 마음을 변화하는데 석우의 딸과 마찬가지로 영향을 주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의 이기 or 개인주의 역시 자신의 가족을 위한 행동으로 용서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윤상화를 용서 할 수 있다면? 최순실도 용서 할 수 있어야 한다.(너무 극단적 사례이긴 하다 -_-;)


 

극의 마무리는 결국 군부대에 구출되는 성경과 수안(본명 김수안, 아역배우)만 살아남게 된다. 가장 약한 여성 2명이 생존하게 되는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다른 이들을 보살피고, 배려심이 많으며, 개인 이기주의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감독은 이 2명의 생존 여성과 같은 생각을 갖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대처할 때 쉽고 편하게, 나를 위해서 고민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는지 곱씹어 보자는 메시지. 우리는 현실에서 이런 메시지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메시지가 나를 해칠 것 처럼 생각해서 본의와 다르게 폭력적이거나 생각과 다른 과격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는지?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졌다. 


천만 관객의 영화라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함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포스팅 제목에 적은 것처럼 이기주의의 끝은 죽음이 전부일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은 "천리마"고속의 상무로 분했다. 천리마가 중국의 고전 소설 등에서 뛰어난 명마를 의미하지만 한국과 북한을 염두해 둔다면 나쁜 의미의 천리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의미를 두고 시나리오에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천리마 운동의 북한.. 그리고, 용석의 이기주의 행동이 현실적인 대안과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엔 속물 근성이 넘쳐흐르는 캐릭터로 본다면 천리마 고속의 상무..정도면 어느정도 직장명과 이름에서 그의 성격과 행동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용석의 끝이 좋지 않게 끝난다. 결국 그 속물이 또 다른 개인주의자인 석우(공유)에게 피해가 가면서 결말로 이어진다. 사실 좀비 영화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스토리라고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현실적인 공포감은 덜하다. 하지만 좀비라는 것이 실제하던지. 아님 이 현실 세계에 좀비같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놀랍고 끔찍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산행을 정주행 했으니.. 이제 서울역을... ..아 그리고, 소희가 한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난 여기가 더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