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성과 무용성의 깨달음

2019.04.18 07:36사진[Photo]/사진이야기

아이들 필기하는 동안, 교실 앞문에서 출발하여 창 끝까지, 
칠판 앞을 가로지르며 묵묵히 걷습니다. 

걸으며···· 한 걸음 내딛고, 앞선 발의 모양을 흰 분필로 교실 바닥에 그려 놓습니다. 
다시 뒷발을 내딛고, 또 그립니다. 그렇게 내딛는 발마다 발 모양을 그리며 끝까지 갑니다. 
돌아보면 마치 형사가 범죄 현장의 범인 발자국을 그려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또 저 인간이 뭔 짓을 허는 거여?” 하며 의아해하는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선생님이 걸어가는 데에 꼭 필요한 땅은 얼마 만큼이냐?>

아이들의 반응은 다른 수업과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하는 아이도 있고, 이해 못하는 아이도 있고, 이해 안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여전히 잠을 자는 아이도 있구요!! 

별 다른 응답이 없으면, 내가 설명합니다.

<사람이 걸을 때 꼭 필요한 땅은 선생님 발 모양만큼의 땅이다.>

그러면 어지간한 아이들은 즉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여전히 “뭔 말이여?” 의 표정을 짓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은 무시하고 내가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지금 바닥에 그려진 발 모양의 땅만 존재하고, 
나머지 땅은 모두 까마득한 절벽이라면 나는 걸을 수 있었을까?>

몇몇 아이들은 나름대로 답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여전히 나와 농담 따먹기를 하려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대체로 무시합니다. 

그들 말로는 씹었다고 표현합니다.

<아니요! 못 걷습니다.> -- 몇몇 진지한 아이들의 답입니다.
<그래도... 몰라!> 
<걸을 수 있어··· 왜 못 걸어? 난 걸을 수 있어···!!> -- 끝내 튀려는 아이들의 답입니다.

어설픈 튐에 대해 철저히 씹어버린 순악질 교사인 내가 말합니다.

<따라서 걸을 때 필요한 땅은 꼭 발 모양의 땅만큼이 아니란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여전히 이해 못하는 아이와, 이해 안 하는 아이와, 자고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내가 딛고 가지 않은 땅이어도, 분명히 꼭 다 필요한 거란다. 

너희들의 쓸모에 대해 너무 생각지 말아라. 
빛나는 존재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란다. 
살아가는 도중에 때로 자신이 하등에 쓸모 없는 존재라 느껴지더라도, 
그 쓸모 없음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꼭 잊지 말아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금 어려워합니다. 
괜한 말을 했나 싶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스스로 합리화시킵니다. 
왜냐하면 어떤 유명한 교육학자가 “진짜 교육이란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리고, 

최후로 남는 것!” 이라며 목에 핏대를 올린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아이들이 지금 설파한 존재 가치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언젠가 문득 자신의 가치를 홀라당 잃어버리는 날에 닥칠 양이면, 
오늘 우연히 그들 무의식의 저 편에 버려진 듯 뿌려진 이 작은 진리가
미약한 힘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걸로 나는 즐거운 교사라는 생각입니다.


그들 무의식의 한 모퉁이에 나라는 존재가 점상처럼 도사리고 있든,
혹은 까맣게 잊혀진 존재가 되었든 그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겁니다.
교사란, 자신의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거나 혹은 기억하게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아이들의 가치 실현을 꿈꾸는 존재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의 극복, 그리고 존재의 가치 실현!
이것은 오늘날 거의 완전히 기력을 잃은 우리 교육이 꼭 되살려야 할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유용성과 무용성의 깨달음은 바로, 
넓고도 깊은 노장의 바다로 이끌어 갑니다.


Raysoda / Jeri님의 글을 옮깁니다.


우리는 하나하나 깨달음의 연속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