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eamer

고민이 많았지요? 형님. 우리가 만난게 딱 3번입니다. 재즈카페 활동을 할 당시 MBC 무대 뒤에서 하얀 정장을 입고 출연 했을 때, 2004년 동두천락페스티발의 헤드라이너 무대에서, 쾌변독설 싸인회에서 아내와 함께 가서 엉뚱한 정치 질문을 던졌을 때... 모두 잊지 못할 날이고 추억입니다. 



다른 신해철 빠순이 빠돌이처럼 저도 역시 그랬어요. 아니 더 빠돌이였죠. 형이 낸 앨범은 물론이고, 작사, 작곡, 편곡한 곡이 있으면 죄다 모았던 진정한 빠돌이였습니다. 심지어 형이 학원 광고 찍었을 때도 칭찬, 칭송 했던 그런 놈이었죠. 그런데 벌써 나이가 40개가 다 되었네요. 형님과 같이 늙어 온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도 형님 대학가요제 대상 탈 때는 풋풋한 초딩 6학년 이었네요.음악에 음자도 몰랐지만 라디오 키드인 저는 형님 음악 많이 듣고, 느끼고 살아왔네요. 아마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렀던 가수를 꼽자면 단연 형님이 탑입니다. 그 다음이 이승철, 이승환 형님들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이 글을 쓰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직딩 남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 저도 딸 바보이면서 화, 수요일은 육아를 하는 착한 아빠거든요. 형님의 라이브를 통해서 Rainbow Eyes를 알게 되었고, 커피 한 잔과 미소라는 곡을 부르던 그 때, 아기천사의 노래들과 무한궤도의 곡들. 무한궤도와 015B의 상관 관계를 알게 되면서의 짜릿함. 


중고딩하고 반말로 대화했던 고스가 싫어서 듣지 않기도 했고, 방송시간 내 집안 불 3번 껐다 켰다 하라고 했던 추억들, 삼태기 메들리를 들려주던 당신과 신혼여행지에서 방송했던 기억,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자의?적 해석했던 기억과 광우병이 한창이던 시절 영국의 최고급 쇠고기 요리를 이리저리 해먹고 자랑했던 당신, 조리퐁 갯 수를 헤아려 방송에 알려왔던 팬과 콘택 600의 알갱이 숫자까지 몇 개인지 알게된 우리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아직도 지인들과 이야기 하면서 내 자신이 이해하는 것은 당신을 놏고 싶지 않아서 였을 겁니다. 당신을 마냥 젊은 친구들에게 빼앗기기 싫은 치기였던 것 같아요. 내 청춘의 아이콘이자 인생의 멘토였던 당신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주 짧은 생이지만 값지고, 의미있고, 감사하게 살아오신 당신께 여전히 존경을 표합니다. 


사랑합니다. 마왕 신해철! 


* 남들은 잘 가라고 잘 하는데 난 힘들다. DAUM 해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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