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연아 선수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계시니 더이상 언급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큰 화제가 되어버려서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그만하길 소망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스승과 제자의 신뢰에 금이 간 상태이지만,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어떤 이유가 존재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동계올림픽에서 눈물을 보인 김연아 선수를 다독이는 오서코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선수와 코치를 응원했던 사람으로 아쉬움은 오래 지속 되리라 생각됩니다. 급하게 적는 글이지만 시대를 풍미했던 피겨선수였던 사람들과 서로를 존중했던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가 이런 폭로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오서 코치의 인터뷰(스포츠조선) 속에서 담담한 어조로 아직도 제자 김연아를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 것은 저만 그렇게 느끼진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김연아의 어머니 or 브라이언 오서?

김연아 선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직접 김연아 선수가 적었다고 하더라도 그 글을 지운 것과 다시 미니홈피에 적은 글은 어떤 의미일까요? 트위터의 글을 단순한 감정에 의한 글로 본다면, 미니홈피의 글은 이 결별이 서로 양보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는게 분명 해 보입니다. 문제가 발생되고 사태를 수습하는 경우 두가지 경우가 생깁니다.

원만하게 해결하거나 서로 얼굴을 안보는 것이지요. 결국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 모두에게 짐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은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서로간의 공방일 뿐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미 서로는 입장을 정리 했다고 생각됩니다.

단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 핵심은 간과하고 이 관계를 금전적인 문제(일주일에 65만원 코치였다)로 몰고 가는 여론과 찌라시 언론이 기사를 내고 있는 것 입니다. 돈문제(65만원)로 일관하는 언론의 행태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적시했지만 핵심은 김연아의 어머니와 오서 코치가 키를 쥐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서로에 대한 폭로전은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큽니다.



돈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신뢰관계

오서 코치는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김연아는 최고의 선수이고 제자로 기억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돈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신뢰관계로 해석된다. 단지 인터뷰에 65만원을 언급한 것은 돈관계로 일축하고 있는 일부 언론들의 기사를 반박하는 해석으로 이해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65만원을 받고 일한 오서 코치의 인터뷰를 김연아측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서코치 유도 질문에 신뢰와 냉정함을 잃지 않다.

신문기사의 인터뷰 뿐만 아니라 잡지나 TV, CABLE 등 방송사 인터뷰는 그 기사의 핵심의도를 벗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재 편집이 가능합니다. 뒤 늦게 공개된 옥주현의 슈퍼스타K 방송분은 물론이고 무한도전, 1박 2일 등 버라이어티에서도 편집에 따라 전혀 다른 의도로 해석 할 수 있는 것을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스포츠신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 갈등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낸 후 기사화 하려는 의도가 보였지만 신뢰와 사랑으로 형성된 관계에 대해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건강한 인터뷰를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최고의 스승, 브라이언 오서

끝까지 김연아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연아 측이 어떤 기사나 기자회견을 할지 의문이지만 단순하게 코치의 계약기간 만료 형태가 아닌 통보식의 계약관계 종료는 계약 당사자들 간의 의리와 신의를 버리는 행위이다. 아무리 작은 계약이라도 서로간의 도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관계에 대한 내용과 서로 합의가 아닌 일방통보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화로서 부드럽게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연아의 발언

당사자인 김연아 선수 나이가 20살입니다. 많은 경험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음에도 언론과 인터넷에서 엄마가 공격 당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감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며 김연아 선수 역시 스승이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에 대해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언론과 인터넷상에서 부풀려지고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일들이 재생산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이해하고 배려해야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두 사람을 응원했던 한 사람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지켜 볼 한 사람으로 드리는 글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글과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글 역시 게재하지 않는게 이 아픈 일들을 조금이나마 여러사람이 지켜보고 잘 풀리도록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사실은 사실로 증명 될 뿐 입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이번 일에 대해서 확대하거나 나쁜방향으로 재생산 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될 일 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번 일에 대해서 지켜보고 해결이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입니다.

관련글 - http://monopiece.tistory.com/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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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ulbburi.tistory.com BlogIcon @풀뿌리 2010.08.25 21:59 신고

    공감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기대하고 믿어왔던 사제지간의 신뢰와 배려를 바탕으로 글을 남기셨네요. 분명 본인이 아니고선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실을 단지 추측으로 판단하고 몰아가기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 맑았다 생각합니다. 헤어질 때 서로의 뒷모습이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는데 그리됐음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 Favicon of http://coldrain.tistory.com BlogIcon 콜드레인 2010.08.26 23:23 신고

    갑작스런 기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김연아 선수와 오서 코치는 최고의 콤비라고 생각해왔는데, 갑자기 결별이라니?!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고 있겠죠...
    좋게 마무리 되었으면 좋으련만.

  3.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fleuriste st-laurent 2010.08.28 04:30 신고

    최고의 코치와 선수로 남을거 같아여

  4. Favicon of http://blue2310.tistory.com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10.08.28 17:22 신고

    김연아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 이지만 ,, 아직은 여린 어린 선수인데.. 이번일로 마음에 상처가 크지 않으면 좋겠내요.

    자주 못와 뵈어서 너무 죄송 합니다. 본래도 자주 와 보지는 못했지만 ..ㅎ
    부끄럽게도 김군의 이름으로 된 책이 한권 나오게 되어서 그것 준비 하느라 몇달을 고생 했습니다.ㅎㅎ

    즐거운 주말 되세요

  5. 돈엄마 2010.10.24 09:32 신고

    김연아가 뭘 알까요.

    애엄마가 돈 독이 심하게 오른거죠.

  6. Favicon of http://www.buy-specialist.com BlogIcon buy specialist 2011.05.22 07:22 신고

    당신은 통찰력의 훌륭한 비전 아르 ..

  7. Favicon of http://www.howiesfurniture.net BlogIcon used ashley furniture 2011.08.01 20:24 신고

    저는 최근에 블로그를 통해 와서 함께 읽고있다. 내가 처음으로 덧글을 남길 거라 생각 했어요. 내가 읽고 즐기고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무슨 말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금, 조금은 매니아들이 많을 시기에 사진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라고 해봐야 많은 걸음을 걷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벌써 7-8년 정도 시간이 흘렀네요. 가벼운 스냅사진부터 필름사진을 담고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까지 겪어보면 비로소 사진의 소중함과 감정이 한없이 즐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200 | Aperture priority | Spot | 1/100sec | F/8.0 | -0.67 EV | 15.0mm | ISO-400 | Flash did not fire

2010. 부산 영도 - 자화상

 

예전에는 사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현재는 그 고민을 바탕으로 설정 해 둔 것들에 대해서 실행을 해 볼 요량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책도 읽고, 영화나 잡지 같이 눈요기를 해주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눈요기에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온라인 사진갤러리 레이소다 - http://RaySoda.com 에서 사진을 감상하고 추천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 입니다. 시간을 붙잡아 두고 우리에게 추억과 기억을 더듬게 하는 매개체로 사진은 이제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찍어서 이메일로 바로 날릴 수 있는 세상에 온 것 같습니다.

 

어떤 사진이 좋다, 좋지않다라고 규정하는 것 보다 사진을 담은 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반영들을 세심하게 다루어서 사진을 담아가는 과정과 기록하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강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사진을 담으면서 모든 분이 공감하기는 어렵겠지만 자신에 대한 사진의 생각과 이야기를 담아내기가 쉽지 않은데 좋은 기회가 닿아서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해주셨던 분은 레이소다의 Salem님 이시고 관련 인터뷰 내용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노피스의 인터뷰 내용 - http://rinterview.tistory.com/entry/monopiece-장대군 

 

모노피스의 레이소다 갤러리 구경가기 - http://www.raysoda.com/user/18777

 

* 100만명 이벤트에 당첨되신 분들께 사과 말씀을 드리며...드디어 주문한 액자가 도착했고, 사진을 받았습니다. 3월 초에 배송할 예정입니다...늦어서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ㅜ.ㅜ

 

  1. Favicon of http://diary.webpher.com BlogIcon 띠용 2010.02.25 21:03 신고

    우와 모노피스님 엄청 인기인이셨네요+_+

  2. 똥막흉아 2010.02.26 11:58 신고

    컥 100만명 !!!
    나도 사진 한 장 ㅡ.ㅡ;;;

  3. Favicon of http://coldrain.tistory.com BlogIcon 콜드레인 2010.02.26 12:46 신고

    인터뷰 내용에서 모노피스님의 사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소한 것도 하나의 소중한 piece로 여기시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 Favicon of http://brightdaisy.textcube.com BlogIcon 서정적자아 2010.02.26 16:14 신고

    어머나. 레이소다.
    저도 한때 레이소다 했었는데. 우와. ^.^

  5. Favicon of http://azeizle.tistory.com BlogIcon 쭌's 2010.03.08 17:42 신고

    레이소다에 10장의 사진도 못 올린 1인입니다...ㅜㅜ

  6. 게시물 이러한 종류는 항상 감동하고 내가 단지 잘 쓰기, 난 행복 게시물 이곳에서 많은 좋은 지점을 찾을 수 있도록 품질의 콘텐츠를 읽는 것을 선호 게시물 주셔서 감사합니다

  7. 도 관련있는 소재를 함께 소개하고 2) 그 외 인터뷰 같은 부가 정보도 같이 소개해서 팬이 되었죠. 800회, 제가 4살 때 시작한 방송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모습이 참 즐겁습니다.

  8. Favicon of http://www.stockmusicsite.com/ BlogIcon Music For TV 2011.04.16 02:40 신고

    MMORPG 게임은 레벨을 최고로 올려놓아야 진정한 게임이 시작되죠.
    그전까지는 일정 수준까지 혼자 힘으로 커야 하니깐 많이 외롭더군요.

  9. Favicon of http://www.modificationsloan.com/ BlogIcon The Krup Law Group 2011.04.16 14:58 신고

    오늘은 노무현대통령의 서거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이미 알고 계실테고 추모를 하기 위해서 봉화마을이나 서울광장 등에 다녀오셧으리라 생각됩니다. 현재 노무현대통령의 추

  10. Favicon of http://www.dizguise.com/ BlogIcon Dizguise 2011.04.20 14:38 신고

    이웃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드는군요. ^^; 그래도 텍스트큐브에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좋은 말씀을 해 주셨던 분들께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1. 책임을 지게 해야한다. 이 책임에 있어서 대통령도 예외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12. Favicon of http://www.slayerment.com/blog/my-experience-krup-law-group BlogIcon The Krup Law Group 2011.05.13 16:40 신고

    유를 배제하고 이야기 하기엔 너무 무거운 주제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어느 사람의 잘못을 따지는 것 보다는 추모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13. Favicon of http://www.slayerment.com/blog/my-experience-krup-law-group BlogIcon The Krup Law Group 2011.05.13 16:40 신고

    유를 배제하고 이야기 하기엔 너무 무거운 주제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어느 사람의 잘못을 따지는 것 보다는 추모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14. Favicon of http://www.laketravisestates.com/ BlogIcon Lake Travis Real Estate 2011.06.24 12:53 신고

    니아들이 많을 시기에 사진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라고 해봐야 많은 걸음을 걷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15. Favicon of http://www.arcuria.net/ BlogIcon Sacramento Interventions 2011.06.24 13:05 신고

    시기에 사진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라고 해봐야 많은 걸음을 걷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벌써 7-8년 정도 시간이 흘렀네요. 가벼운 스냅사진부터 필름사진을 담고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까지 겪어보면 비로소 사진의 소중

  16. Favicon of http://www.topqualityestate.com/K%C3%B8b_bolig_i_Thailand_s47.html?mId=70 BlogIcon Hua Hin i Thailand 2011.09.12 03:19 신고

    재미있군 게시합니다. 이 주제에 대한 생각, 그래서 우리와 함께 이것을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했습니다! 그것은 귀하의 웹사이트에 처음 방문하는군요.

  17. Favicon of http://www.beijingeros.com BlogIcon escorts in beijing 2011.10.08 22:50 신고

    Fantastic, keep on doing that!

  18. Favicon of http://www.flag.nu/ BlogIcon Flagstænger glasfiber 2011.12.29 14:54 신고

    여기라고 해봐야 많은 걸음을 걷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LG트윈스, MBC청룡 시절까지 아니 프로야구 원년에 아버지가 사오셨던 해태타이거즈의 구단북을 보면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오던 나였다. 고등학교에 가서 야구 열심히 하면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 중학교입학을 하면서다. 국민학교 시절 MBC청룡의 어린이회원으로 잠실야구장을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김재박, 이광은선수와 악수를 했었고, 백인천 감독의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벌써 20년이 넘어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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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의 2002년 한국시리즈 진출과 더불어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았을 때... 그 때 부터 이승엽을 싫어했지만 지바롯데와 요미우리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LG보다 요미우리의 경기를 더 챙겨보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동창녀석의 뜬금없는 야구장이야기 때문에 야구장을 가야 한다. LG를 계속 사랑하겠다라고 생각했지만 기본기 없는 모습에 투지나 열정없는 모습까지 오보랩되면서 정이 떨어지기 시작한게 벌써 몇 년째인가? 라는 생각을 하니 롯데의 승승장구와 기아의 10연승이 참 부럽다.

 

오늘 인터넷 뉴스를 보면서 봉중근선수가 인터뷰 한 기사를 읽어보니 식었던 마음에 기름과 불을 당기듯 굳은 의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뜬금없이 눈물이 흘렀다.

 

기사 내용을 살짝 인용 해 본다.

스포츠서울 인터뷰내용

"아직 팔꿈치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그리고 주변에서 부상을 걱정해주시며 내년을 위해 쉬라는 분들이 많은 것도 맞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아직 팬들이 시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수가 먼저 시즌을 포기할 수 있겠나. 어깨가 빠지는 한이 있어도 마운드에 서겠다"


스포츠의 묘미는 누구나 잘 알 듯 각본없는 드라마다. LG가 시즌 초반 2위를 달릴 때 아..드디어 올해는 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지만 현재 진형행의 순위와 경기를 지켜보면 한숨이 나오는게 사실이다. 왜 이럴까라는 생각도 들고 LG트윈스의 홈페이지 게시판도 들여다 보지만 경기력이나 선수의 열정이 부족함을 느낀다. 적어도 프로선수라면 팬들이 이런 생각을 갖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LG트윈스 구단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축 늘어진 형태다.

 

봉중근 선수의 잔류때문에 팬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내년 시즌을 위해서 쉬어야 하는 것도 좋다. 현재 7위인데 어떻게 4강에 오르나? 너무 무리하는 것은 좋지않다...등의 의견이다.

 

반면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도 보인다. LG트윈스의 구단 홈페이지에 회원 게시판은 정말 보기 싫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선수나 감독의 이름을 서슴없이 부르는 것이 대한민국 인터넷의 문화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무의미한 욕설과 도배,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들은 아이들이 보기 민망할 수준이다.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성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게시판이 이 정도이니 선수들이 힘내서 싸울 수 있겠는가?라는 반문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과연 선수들을 타박하고 몰아세우는게 진정한 스포츠팬의 행동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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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LG트윈스 홈페이지

봉중근 선수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우리가 4강에 합류한다면 그보다 더 재밌고 흥미로운 드라마가 어디 있겠냐. 반전 드라마를 지켜보라"


LG선수들이 잘 해서 4강에 합류하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기도 하지만 역대 최다 관중을 불러모으는 롯데처럼 선수와 팬이 하나가 되어 구단을 지키고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선수가 아무리 잘하더라도 맹목적인 비난만 일삼는 팬과는 혼연일체되어 구단의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선수 한 명의 인터뷰내용이었지만 선수단을 이끌어가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WBC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선수로 기억되는 봉중근 선수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쌓아두었던 마음이 풀렸다. 괜시리 눈물이 나는 내 자신에 당황스러웠다. 폭풍우가 지나고 나서는 잠실에서 LG트윈스 선수들을 보러 갈 예정이다. 사랑해요. LG 트윈스 !!

 

  1. BlogIcon blue paper 2009.08.12 15:48 신고

    마지막까지 엘지 화이팅입니다. ^^

  2. Favicon of http://grouch.ginu.kr BlogIcon 궁시렁 2009.08.12 16:11 신고

    봉타나! 흐윽 ㅠㅠ
    (물론 LG 팬은 아닙니다 ㅎ)

  3. Favicon of http://heysukim114.tistory.com BlogIcon 저녁노을 2009.08.12 16:27 신고

    아자 아자 홧팅^^

  4. Favicon of http://donghun.kr BlogIcon 멀티라이프 2009.08.12 17:52 신고

    평소에도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서 가끔 던져주는 말들이 의미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팬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네요..

    실력도 최고이지만, 선수로써의 자질도 최고임에 분명합니다.

    봉준근 선수 화이팅 입니다.^^

    아~ 그리고 풍경사진님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5. Favicon of http://diary.webpher.com BlogIcon 띠용 2009.08.12 18:57 신고

    스포츠 선수의 저런 멘트가 사람들을 감동시킬때가 많더라구요^^

  6. Favicon of http://blueshine.textcube.com BlogIcon Blueshine 2009.08.12 23:18 신고

    저런 선수가 팬들한테 사랑을 많이 받죠~ 아주 좋은 모습이라 생각해요.

    근데 엘지는 이미 팀 분위기가 영 아니지 않나요??
    여태 곪아왔던게 이제야 터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 Favicon of http://photoeff.textcube.com BlogIcon 모노피스 2009.08.13 16:29 신고

      내부적으로 문제는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봉중근 선수만 대단한게 아니고 선수단 전체가 이런 마음일거라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kin3245.textcube.com BlogIcon fmoulous 2009.08.15 04:39 신고

      잘나가는 팀은 문제가 있어도 가려집니다.
      하지만 잘 안나가는 팀은 없던 문제도 생기죠.
      어느 팀이나 불화는 있는 법이지만, 기자들이란게 기삿거리를 찾아다니다 보니 하위팀의 성적 하락과 팀내불화를 관련짓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7. 어머나 2009.08.13 04:37 신고

    나는 기아 팬이지만 봉 선수! 힘 내세요 당신이 있어 우리는 살아갈 맛이 있습니다.

  8. Favicon of http://foreversj.com BlogIcon 타점왕 2009.08.14 12:19 신고

    와우... 말 한마디라도 이렇게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ㅠㅠ
    물론, 진심어린 봉중근선수의 뜻 잘 받았습니다.

    각본없는 드라마... 기대됩니다^^

  9. Favicon of http://kin3245.textcube.com BlogIcon fmoulous 2009.08.15 04:39 신고

    사랑해요 LG, 사랑해요 봉타나 흑흑흑

  10. Favicon of http://photozone.textcube.com BlogIcon 얼음구름 2009.08.18 14:19 신고

    냉정하게 말해서 올해 LG는 틀렸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되면 팬들 눈치 볼 것도 없이 구단에서 알아서 먼저 포기할 시즌이라 판단되면 주전급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거나, 선수 기용에 여유를 두면서 40인 확장로스터를 통해 내년 주전감들을 물색하건만..

    국내에서는 선수나 감독이나 구단이나 그 놈의 체면 때문에 일단 어떻게든 이기고 보자는 식이 강해서 좋은 전력들이 롱런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멀리 볼 것도 없이 LG의 경우는 한때는 팀의 아이콘이었떤 유지현 선수가 32세에 은퇴를 했지요.)

2008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TV방송 프로그램과 영화가 있었습니다. SBS에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인 '바람의 화원'(박신양, 문근영)과 영화로 상영되었던 '미인도'(김민선, 김영호)가 바로 그 작품들입니다. 또 하나 다큐프로그램 매니아로 부터 호평을 받은 EBS의 '화인'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풍속화가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이고, '김홍도', '신융복', '김준근' 등 풍속화가들에 대한 삶을 추적해 보고 현재와 과거를 회상해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 10점
EBS 화인 제작팀 지음/지식채널


이 책을 제가 읽은 것은 약 한달 전으로 기억됩니다. 서평을 적는 것도 좋겠지만 EBS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한 제작진과 인터뷰를 해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제작진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서평을 넣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도 했습니다. 간단하게 제가 읽은 내용을 정리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외의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등 당대의 최고의 풍속화가들의 생각과 그림, 삶의 모습들을 들춰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홍도

타작도, 김홍도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의 삶을 볼 수 있고, 그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자아가 깨어나고 성숙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래에 펼쳐질 내용은 방송프로그램의 PD이고, 책의 대부분을 이끌어 오신 김광호PD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했고, 7가지 정도를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습니다.

1. 조선시대의 화인들이 시공간을 넘어서 계속 기억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은 풍속화가들이 계속 기억되는 원인으로 좁혀 답합니다.)


 이 책에서 다룬 조선 후기 풍속화가들이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조선시대 사람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제대로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선 전, 중기에 등장했던 화폭 속의 인물들이 사대부 양반과 같은 조선사회의 일부 계층이었다면 이들 풍속화 속 인물들은 정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천한 계층이었던 기생과 천민들의 모습까지 처음으로 생생하게 화폭에 담겨졌음은 물론 이들의 정서까지도 색과 선으로 잘 표현해 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화폭 속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거죠.


이렇게 람들의 모습과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한 그림. 그게 바로 조선시대 풍속화를 빛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만큼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도 드문 듯 합니다. 사랑하는 승려를 기다리는 애절한 모습의 아낙네 모습 속에서 현재의 우리 역시 시대를 초월한 애절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신윤복의 ‘송낙’), 무동의 신나는 춤사위에서 우리 역시 저자거리 춤판의 신명을 느낄 수 있다는 것(김홍도‘무동’)이 바로 풍속화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인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 풍속화가들에게는 그림에 대한 뛰어난 재주와 감각 또한 있었습니다. 김홍도는 근대화 기법을 풍속화에 접목해 사실주의 화법에 기반을 둔 조선풍속화를 탄생시켰고, 신윤복은 본능적인 색과 구도에 대한 천재적 감각으로 조선 풍속화를 미의 세계로 이끌었으며, 김준근은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 풍속화의 근대적 생산체제를 시도한 선구자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천재적 감각 역시 그림 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화인 3인의 작품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선정한다면?


어려운 질문인데요. 신윤복의 ‘미인도’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미인도는 과거 학교 다닐때 중학교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아주 작은 사이즈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은 프로그램 만들 때까지 전혀 떠오르질 않았어요. 너무 작은 사이즈라 원본의 감동을 제대로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 걸 프로그램 제작하면서 알게 되었죠.


프로그램 자료 수집차 문화재 복원 전문가 선생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바로 ‘원본 크기의 ’미인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원본도 아닌 복사본 그림을 얼기 설기 조합해 만든 그런 그림이었는데도 (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원본 소장처에서 원본 공개를 안해 관련 전문가들도 복사본을 확대해 관련 작업을 하더군요)


미인도

신윤복의 미인도


어른 키의 2/3에 해당하는 실제 미인도 그림을 보고 제대로 필이 꽂혔습니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서 부터  치마선 하나하나까지 화가의 정성이 그대로 배어 있는 그 그림을 보며 자리를 뜰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는 생각했죠.  ‘아, 이 여인을 신윤복은 진정으로 사랑했구나’  그래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이 작품을 실물 크기 그대로 복원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꼭 실물 크기의 ‘미인도’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3. 화인 중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지...


아마도 신윤복일 것 같네요.  정말 천재였던 화가였습니다.  취재를 통해 그의 미의식이 얼마나 뛰어났는지에 대해 알고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미적 구도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화폭 자체를 하나의 구도로 보고 그 속에 자신이 본 상황들을 본능적으로 그려 넣었고 색의 농담과 선택에도 뛰어나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매 그림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의 그림이 단순히 애정행각 등의 소재 때문에 강렬했던 건 아닌 것입니다.


그와 술잔을 기울인다면 그의 천재성이 어디서 나왔는지 묻고 싶네요. 시대에 대한 반항(중인으로서의 울분)이 그를 천재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의 천재성을 이끈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를 여자로 만든 지금 이 시대의 인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주. 책에서는 신윤복의 성별을 남성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화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역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감수하고 왕을 속이면서까지 여자였던 신윤복을 화원으로 만들었다는 가정이 그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능한 것인지 그에게 묻고 그의 반응을 살피고 싶네요. 


아마도 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요? ‘술이 과하시군요... 그림 얘기나 더 합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주 한 접시를 더 내 놓으며 미인도 속 여인과의 관계까지 듣는다면 아주 유익한 술자리가 될거 같네요.

신윤복HP | HP oj7400

기방무사, 신윤복



4. 다큐멘터리와 그림의 공통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다큐멘터리나 그림이나 모두 동 시대 사람들의 살아 있는 스토리(story)들을 화면이나 화폭에 효과적으로 담아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다큐멘터리나 그림 모두 동 시대의 모습들을 다양한 형태로 담아내고자 노력해야하며 이를 통해 끊임없이 시대와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걸작 다큐나 그림들이 바로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5. 책 속의 그림이나 자료들을 찾는데 어려문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제대로 된 자료 찾는 것 입니다. 이에 대한 어려움이 발생하면 말 그대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되죠. 관련 논문은 물론이고, 해외전문가 등에게도 의뢰합니다. 가령, 전통 색채전문가가 국내에 많이 계시지 않아 전통색채가 주로 광석 종류인데 착안해 광물분야 전문가를 찾기도 했습니다. 또한 조선풍속화의 구도나 농담에 대한 분석 역시 국내에서는 전무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시는 교수님께 의뢰해 새롭게  서양 미술기법으로 풍속화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김준근HP | HP oj7400

단오추천, 김준근



6. 이런 일련의 과정(다큐멘터리, 역사를 찾는 작업)들 중 계획하거나 해보고 싶은 작업은?


이건 미정입니다.(주.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콘텐츠 및 방송프로그램의 기획에 관해서 더이상 여쭤보기 어려워서 세부적인 부분은 묻지 않았습니다. 아직 다큐프로그램 PD로 계시니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7. 화인들의 작품이 외국에 소장된 것에 대한 소감이나 관계기관이 노력해야 할 사항은 무엇이라 보시는지?


일단 국내 소장기관들에게 부탁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번 제작과 관련해 프랑스 출장을 갔을 때 일입니다. 유명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갔더니 벽에 걸린 오래된 명화 밑에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마도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그 그림을 그려보는 수업인거 같았습니다. 이런 수업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남긴 미술품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리고 자라나서 그 미술품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가꾸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 미술품을 너무도 모른다고 관계자분들은 한탄하십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1년 내내, 아니 언제나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그림들이 대부분입니다. 꽁꽁 미술품 저장고에 숨겨진 채 그대로 있습니다. 보존이란 명분 하에 말이죠. 자신들의 소중한 미술유산을 직접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대다수 국민들에게 우리 미술품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보존이 문제라면 공인된 기관에서 모사복원(원본과 동일한 모사본을 제작하는 것)을 해서 항상 전시하는 방법 등을 강구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이 봐야 많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인터뷰 질문및 편집 : 모노피스

인터뷰 답변 : EBS 기획다큐팀 김광호PD


풍속화 :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라는 책은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나 어른들을 위한 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역사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고 조선시대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시대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파고 들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다루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고, 3인의 풍속화가인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에 대한 부분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사진과 그림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을 비교 해 볼 수 있습니다. 


* 인터뷰 포스트는 2009년 저의 극비? 프로젝트였는데 이제야 시작합니다. ^^; 다른 분들의 인터뷰도 재밌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 Favicon of http://333hun.tistory.com BlogIcon 세미예 2009.03.19 14:05 신고

    책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 Favicon of http://www.ddibo.com BlogIcon 띠보 2009.03.19 15:14 신고

    와.. 이메일로 인터뷰 할 생각을 하시다니..
    저는 임권택 감독 영화보고
    장승업이 좋더라구요

    • 조선시대 삼원이라고 불리시는 분들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입니다. 이 책 보고나서 말씀하신 '취화선'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나중에 짧게나마 다시 감상후기라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mimic.tistory.com BlogIcon 미미씨 2009.03.19 21:37 신고

    그때 바람의 화원 할때쯤 EBS에서 신윤복님과 김홍도님 그림 이야기 들려주는거 피곤한 눈을 비벼가며 봤던 기억이 나요.

  4. Favicon of http://azeizle.tistory.com BlogIcon 쭌's 2009.03.20 00:13 신고

    잘 보았습니다 ^^*
    인터뷰까지 하시고 대단하세요 !!~~

  5. 똥막대기 2009.03.20 09:18 신고

    정말 재밌게 읽었음둥.
    저 프로그램을 뛰엄 뛰엄 봤었는데;;;
    보존이란 허울좋은 이름아래 보장고에 꼭꼭 숨겨뒀다는 말이 참 거시기한 ....
    또 다른 면에서 보자면 국가예산이 적은 것과 관료들의 행정쪽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도 싶어.

  6. JUYONG PAPA 2009.03.20 09:27 신고

    이런 인터뷰를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실건가요?
    정말 기대되는데요..
    책은 아직 못 읽어봤지만..시간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7. 머니야 2009.03.20 15:38 신고

    책 너무요즘 안읽어서..정말 스스로에게 찔리네요...그나마 요렇게 간접체험이라도 할수 있으니 위안을 좀 삼습니다..^^;;

  8. Favicon of http://moms.pe.kr BlogIcon 함차 2009.03.21 00:43 신고

    인터뷰 포스트라..대단하십니다. 새로운 느낌입니다. 앞으로 대박일껏 같아요
    책 소개 내용도 훌륭하시구요..많은 인터뷰로 재미나고 유익하게 올려주세요

  9. Favicon of http://gemoni.tistory.com BlogIcon 바람노래 2009.03.23 12:40 신고

    무려 극비 였군요.ㅎㅎ
    인터뷰라...ㄷㄷ
    아, 그나저나 저도 미인도 같은거 척 하니 벽에 하나 걸어 놓고 싶네요.ㅡㅜ

  10. Favicon of http://myungee.com BlogIcon 명이 2009.03.23 16:59 신고

    색다른 포스팅인데욤? 오호...ㅎㅎ
    전화를 함 드릴까 하다가~ 바쁘실듯 해서 패쓰했답니다. ㅎㅎ
    담번에 같이 하도록 해요~^*^

    풍속화를 볼때마다,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드는건, 저만 그런걸까요?

  11. Favicon of http://ddoza.tistory.com BlogIcon 또자쿨쿨 2009.03.23 17:30 신고

    지난주말에 서점에서 이 책을 찾다가 약속시간이 임박해 그냥 오고 말았습니다.
    언제 기회되면 다시 ...

  12. Favicon of http://lucifer625.tistory.com BlogIcon 이름이동기 2009.03.23 18:42 신고

    양파군의 최면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리플을 ... 쿨럭.... ^^

    인터뷰 덕분에 생생한 글을 읽을 수 있게되었네요 ^^
    정말 감사합니다 ~ ㅎㅎㅎㅎ
    풍속화나 민화나 저에겐 많이 생소하였는데 드라마를 통해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조금씩
    친근해 지는 것 같아요 ~
    저도 벽에 뭐하나 떡하니 걸어놓고 싶네요 ^ㅡ^ㅋㅋ

  13. Favicon of http://www.ibagu.co.kr BlogIcon JiNi 2009.03.24 09:56 신고

    그림에 대하여는 문외한이지만 우리 역사에 대하여는 관심이 많은데 이 책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잘 보았습니다.

  14. 2009.03.24 17:29

    비밀댓글입니다

  15. Favicon of http://jorba.tistory.com BlogIcon Jorba 2009.03.24 17:34 신고

    풍속화, 참 좋은 책인 듯 합니다. 담달 구입목록에 추가해야 겠어요. ^^
    인터뷰도 잘 듣고 갑니다. ㅎㅎ

  16. Favicon of http://vart1.tistory.com BlogIcon 백마탄 초인 2009.03.26 00:42 신고

    유익한 도서로군요,,,

    적을 두고 있으신 곳에서 만든 책이라 애착이 더 가실듯,,, ^ ^

    내용중에 그림쟁이로서 공감하는 대목들이 눈에 많이 띄는군요!!

  17. Favicon of http://www.golfstockonline.com/ BlogIcon Golf Equipment Wholesale 2011.05.03 17:51 신고

    사골탕 진~짜 먹고싶당~

  18. Favicon of http://www.jewellerybeadsale.com/ BlogIcon sxfcafdsf 2011.05.13 16:5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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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나는 절대적으로 물건이 사이트에 얼마나 훌륭한 지에 놀랐입니다. 이 웹 페이지를 저장하고 난 정말로 곧 일 사이트를 방문에 대한 것입니다. 우수한 작품을 올리세요!

2008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TV방송 프로그램과 영화가 있었습니다. SBS에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인 '바람의 화원'(박신양, 문근영)과 영화로 상영되었던 '미인도'(김민선, 김영호)가 바로 그 작품들입니다. 또 하나 다큐프로그램 매니아로 부터 호평을 받은 EBS의 '화인'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풍속화가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이고, '김홍도', '신융복', '김준근' 등 풍속화가들에 대한 삶을 추적해 보고 현재와 과거를 회상해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 10점
EBS 화인 제작팀 지음/지식채널


이 책을 제가 읽은 것은 약 한달 전으로 기억됩니다. 서평을 적는 것도 좋겠지만 EBS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한 제작진과 인터뷰를 해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에 제작진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서평을 넣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도 했습니다. 간단하게 제가 읽은 내용을 정리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외의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등 당대의 최고의 풍속화가들의 생각과 그림, 삶의 모습들을 들춰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홍도

타작도, 김홍도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의 삶을 볼 수 있고, 그런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자아가 깨어나고 성숙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래에 펼쳐질 내용은 방송프로그램의 PD이고, 책의 대부분을 이끌어 오신 김광호PD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했고, 7가지 정도를 질문하고 답변을 받았습니다.

1. 조선시대의 화인들이 시공간을 넘어서 계속 기억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은 풍속화가들이 계속 기억되는 원인으로 좁혀 답합니다.)


 이 책에서 다룬 조선 후기 풍속화가들이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조선시대 사람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제대로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선 전, 중기에 등장했던 화폭 속의 인물들이 사대부 양반과 같은 조선사회의 일부 계층이었다면 이들 풍속화 속 인물들은 정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천한 계층이었던 기생과 천민들의 모습까지 처음으로 생생하게 화폭에 담겨졌음은 물론 이들의 정서까지도 색과 선으로 잘 표현해 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화폭 속에 고스란히 담기게 된거죠.


이렇게 람들의 모습과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한 그림. 그게 바로 조선시대 풍속화를 빛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만큼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도 드문 듯 합니다. 사랑하는 승려를 기다리는 애절한 모습의 아낙네 모습 속에서 현재의 우리 역시 시대를 초월한 애절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신윤복의 ‘송낙’), 무동의 신나는 춤사위에서 우리 역시 저자거리 춤판의 신명을 느낄 수 있다는 것(김홍도‘무동’)이 바로 풍속화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인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 풍속화가들에게는 그림에 대한 뛰어난 재주와 감각 또한 있었습니다. 김홍도는 근대화 기법을 풍속화에 접목해 사실주의 화법에 기반을 둔 조선풍속화를 탄생시켰고, 신윤복은 본능적인 색과 구도에 대한 천재적 감각으로 조선 풍속화를 미의 세계로 이끌었으며, 김준근은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 풍속화의 근대적 생산체제를 시도한 선구자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천재적 감각 역시 그림 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화인 3인의 작품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선정한다면?


어려운 질문인데요. 신윤복의 ‘미인도’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미인도는 과거 학교 다닐때 중학교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아주 작은 사이즈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은 프로그램 만들 때까지 전혀 떠오르질 않았어요. 너무 작은 사이즈라 원본의 감동을 제대로 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 걸 프로그램 제작하면서 알게 되었죠.


프로그램 자료 수집차 문화재 복원 전문가 선생님 작업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바로 ‘원본 크기의 ’미인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원본도 아닌 복사본 그림을 얼기 설기 조합해 만든 그런 그림이었는데도 (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원본 소장처에서 원본 공개를 안해 관련 전문가들도 복사본을 확대해 관련 작업을 하더군요)


미인도

신윤복의 미인도


어른 키의 2/3에 해당하는 실제 미인도 그림을 보고 제대로 필이 꽂혔습니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에서 부터  치마선 하나하나까지 화가의 정성이 그대로 배어 있는 그 그림을 보며 자리를 뜰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는 생각했죠.  ‘아, 이 여인을 신윤복은 진정으로 사랑했구나’  그래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이 작품을 실물 크기 그대로 복원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꼭 실물 크기의 ‘미인도’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3. 화인 중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지...


아마도 신윤복일 것 같네요.  정말 천재였던 화가였습니다.  취재를 통해 그의 미의식이 얼마나 뛰어났는지에 대해 알고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미적 구도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화폭 자체를 하나의 구도로 보고 그 속에 자신이 본 상황들을 본능적으로 그려 넣었고 색의 농담과 선택에도 뛰어나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매 그림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의 그림이 단순히 애정행각 등의 소재 때문에 강렬했던 건 아닌 것입니다.


그와 술잔을 기울인다면 그의 천재성이 어디서 나왔는지 묻고 싶네요. 시대에 대한 반항(중인으로서의 울분)이 그를 천재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의 천재성을 이끈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를 여자로 만든 지금 이 시대의 인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주. 책에서는 신윤복의 성별을 남성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화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역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감수하고 왕을 속이면서까지 여자였던 신윤복을 화원으로 만들었다는 가정이 그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능한 것인지 그에게 묻고 그의 반응을 살피고 싶네요. 


아마도 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요? ‘술이 과하시군요... 그림 얘기나 더 합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주 한 접시를 더 내 놓으며 미인도 속 여인과의 관계까지 듣는다면 아주 유익한 술자리가 될거 같네요.

신윤복HP | HP oj7400

기방무사, 신윤복



4. 다큐멘터리와 그림의 공통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다큐멘터리나 그림이나 모두 동 시대 사람들의 살아 있는 스토리(story)들을 화면이나 화폭에 효과적으로 담아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다큐멘터리나 그림 모두 동 시대의 모습들을 다양한 형태로 담아내고자 노력해야하며 이를 통해 끊임없이 시대와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걸작 다큐나 그림들이 바로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5. 책 속의 그림이나 자료들을 찾는데 어려문 문제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제대로 된 자료 찾는 것 입니다. 이에 대한 어려움이 발생하면 말 그대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되죠. 관련 논문은 물론이고, 해외전문가 등에게도 의뢰합니다. 가령, 전통 색채전문가가 국내에 많이 계시지 않아 전통색채가 주로 광석 종류인데 착안해 광물분야 전문가를 찾기도 했습니다. 또한 조선풍속화의 구도나 농담에 대한 분석 역시 국내에서는 전무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시는 교수님께 의뢰해 새롭게  서양 미술기법으로 풍속화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김준근HP | HP oj7400

단오추천, 김준근



6. 이런 일련의 과정(다큐멘터리, 역사를 찾는 작업)들 중 계획하거나 해보고 싶은 작업은?


이건 미정입니다.(주.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콘텐츠 및 방송프로그램의 기획에 관해서 더이상 여쭤보기 어려워서 세부적인 부분은 묻지 않았습니다. 아직 다큐프로그램 PD로 계시니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7. 화인들의 작품이 외국에 소장된 것에 대한 소감이나 관계기관이 노력해야 할 사항은 무엇이라 보시는지?


일단 국내 소장기관들에게 부탁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번 제작과 관련해 프랑스 출장을 갔을 때 일입니다. 유명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갔더니 벽에 걸린 오래된 명화 밑에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스케치북을 들고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마도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그 그림을 그려보는 수업인거 같았습니다. 이런 수업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남긴 미술품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리고 자라나서 그 미술품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가꾸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 미술품을 너무도 모른다고 관계자분들은 한탄하십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1년 내내, 아니 언제나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그림들이 대부분입니다. 꽁꽁 미술품 저장고에 숨겨진 채 그대로 있습니다. 보존이란 명분 하에 말이죠. 자신들의 소중한 미술유산을 직접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대다수 국민들에게 우리 미술품에 대한 사랑을 얘기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보존이 문제라면 공인된 기관에서 모사복원(원본과 동일한 모사본을 제작하는 것)을 해서 항상 전시하는 방법 등을 강구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이 봐야 많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인터뷰 질문및 편집 : 모노피스

인터뷰 답변 : EBS 기획다큐팀 김광호PD


풍속화 :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라는 책은 그림을 좋아하는 분이나 어른들을 위한 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역사에 대한 인식은 물론이고 조선시대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시대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파고 들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다루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고, 3인의 풍속화가인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에 대한 부분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사진과 그림에 대한 해석이나 느낌을 비교 해 볼 수 있습니다. 


* 인터뷰 포스트는 2009년 저의 극비? 프로젝트였는데 이제야 시작합니다. ^^; 다른 분들의 인터뷰도 재밌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 Favicon of http://333hun.tistory.com BlogIcon 세미예 2009.03.19 14:05 신고

    책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 Favicon of http://www.ddibo.com BlogIcon 띠보 2009.03.19 15:14 신고

    와.. 이메일로 인터뷰 할 생각을 하시다니..
    저는 임권택 감독 영화보고
    장승업이 좋더라구요

    • Favicon of http://monopiece.sisain.co.kr BlogIcon 모노피스 monopiece 2009.03.19 16:10 신고

      조선시대 삼원이라고 불리시는 분들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입니다. 이 책 보고나서 말씀하신 '취화선'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나중에 짧게나마 다시 감상후기라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mimic.tistory.com BlogIcon 미미씨 2009.03.19 21:37 신고

    그때 바람의 화원 할때쯤 EBS에서 신윤복님과 김홍도님 그림 이야기 들려주는거 피곤한 눈을 비벼가며 봤던 기억이 나요.

    • Favicon of http://monopiece.sisain.co.kr BlogIcon 모노피스 monopiece 2009.03.20 09:18 신고

      앗...그러셨군요. 피곤하심을 물리치고 보셨다니...사실 저는 방송은 못봤거든요...^^ 당장 보고 싶네요...ㅎㅎ

  4. Favicon of http://azeizle.tistory.com BlogIcon 쭌's 2009.03.20 00:13 신고

    잘 보았습니다 ^^*
    인터뷰까지 하시고 대단하세요 !!~~

  5. 똥막대기 2009.03.20 09:18 신고

    정말 재밌게 읽었음둥.
    저 프로그램을 뛰엄 뛰엄 봤었는데;;;
    보존이란 허울좋은 이름아래 보장고에 꼭꼭 숨겨뒀다는 말이 참 거시기한 ....
    또 다른 면에서 보자면 국가예산이 적은 것과 관료들의 행정쪽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도 싶어.

  6. JUYONG PAPA 2009.03.20 09:27 신고

    이런 인터뷰를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실건가요?
    정말 기대되는데요..
    책은 아직 못 읽어봤지만..시간되면 읽어봐야겠습니다.

  7. 머니야 2009.03.20 15:38 신고

    책 너무요즘 안읽어서..정말 스스로에게 찔리네요...그나마 요렇게 간접체험이라도 할수 있으니 위안을 좀 삼습니다..^^;;

  8. Favicon of http://moms.pe.kr BlogIcon 함차 2009.03.21 00:43 신고

    인터뷰 포스트라..대단하십니다. 새로운 느낌입니다. 앞으로 대박일껏 같아요
    책 소개 내용도 훌륭하시구요..많은 인터뷰로 재미나고 유익하게 올려주세요

    • Favicon of http://monopiece.sisain.co.kr BlogIcon 모노피스 monopiece 2009.03.23 12:41 신고

      인터뷰와 관련해서 여러가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함차님 오랜만에 뵈어요..ㅎㅎ

  9. Favicon of http://gemoni.tistory.com BlogIcon 바람노래 2009.03.23 12:40 신고

    무려 극비 였군요.ㅎㅎ
    인터뷰라...ㄷㄷ
    아, 그나저나 저도 미인도 같은거 척 하니 벽에 하나 걸어 놓고 싶네요.ㅡㅜ

  10. Favicon of http://myungee.com BlogIcon 명이 2009.03.23 16:59 신고

    색다른 포스팅인데욤? 오호...ㅎㅎ
    전화를 함 드릴까 하다가~ 바쁘실듯 해서 패쓰했답니다. ㅎㅎ
    담번에 같이 하도록 해요~^*^

    풍속화를 볼때마다,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드는건, 저만 그런걸까요?

    • Favicon of http://monopiece.sisain.co.kr BlogIcon 모노피스 monopiece 2009.03.24 08:47 신고

      제가 전화라도 드렸어야 했는데...몇가지 일이 겹쳤네요. 전화기도 제 수중을 떠난지 며칠되었습니다. ㅎㅎ
      뭔 일이 이렇게 꼬이는지...ㅡ.ㅡ;;

  11. Favicon of http://ddoza.tistory.com BlogIcon 또자쿨쿨 2009.03.23 17:30 신고

    지난주말에 서점에서 이 책을 찾다가 약속시간이 임박해 그냥 오고 말았습니다.
    언제 기회되면 다시 ...

  12. Favicon of http://lucifer625.tistory.com BlogIcon 이름이동기 2009.03.23 18:42 신고

    양파군의 최면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리플을 ... 쿨럭.... ^^

    인터뷰 덕분에 생생한 글을 읽을 수 있게되었네요 ^^
    정말 감사합니다 ~ ㅎㅎㅎㅎ
    풍속화나 민화나 저에겐 많이 생소하였는데 드라마를 통해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조금씩
    친근해 지는 것 같아요 ~
    저도 벽에 뭐하나 떡하니 걸어놓고 싶네요 ^ㅡ^ㅋㅋ

    • Favicon of http://monopiece.sisain.co.kr BlogIcon 모노피스 monopiece 2009.03.24 08:49 신고

      풍속화가 발전한게 현재의 일상 사진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일상사진에서 더욱 매력을 느끼는 편이라 ㅎㅎ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 Favicon of http://lucifer625.tistory.com BlogIcon 이름이동기 2009.03.24 09:05 신고

      엇...그러네요 ^^
      사진 때문일수도 있겠어요 ~
      저도 알게모르게 사진의 영향을 받았나봐요 ~ㅎㅎ
      자주 뵙겠습니다 ~0~ ㅎ1ㅎ1

    • Favicon of http://monopiece.sisain.co.kr BlogIcon 모노피스 monopiece 2009.03.24 20:20 신고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3. Favicon of http://www.ibagu.co.kr BlogIcon JiNi 2009.03.24 09:56 신고

    그림에 대하여는 문외한이지만 우리 역사에 대하여는 관심이 많은데 이 책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잘 보았습니다.

  14. 2009.03.24 17:29

    비밀댓글입니다

  15. Favicon of http://jorba.tistory.com BlogIcon Jorba 2009.03.24 17:34 신고

    풍속화, 참 좋은 책인 듯 합니다. 담달 구입목록에 추가해야 겠어요. ^^
    인터뷰도 잘 듣고 갑니다. ㅎㅎ

  16. Favicon of http://vart1.tistory.com BlogIcon 백마탄 초인 2009.03.26 00:42 신고

    유익한 도서로군요,,,

    적을 두고 있으신 곳에서 만든 책이라 애착이 더 가실듯,,, ^ ^

    내용중에 그림쟁이로서 공감하는 대목들이 눈에 많이 띄는군요!!

    • Favicon of http://monopiece.sisain.co.kr BlogIcon 모노피스 monopiece 2009.03.26 08:51 신고

      아..그림을 하고 계신가봐요. ^^; 처음 뵈었지만 말씀이 따스해서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비오는 날이지만..기분은 활기찬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17. 그레이트 자원! 정보의 재산을 공유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난 그냥이 시작 내가 더 잘 알아가는거야! 건배, 좋은 일을 계속!

제어 할 수 없는 떨림

2008.02.05 16:27
언젠가 들었던 라디오에서 나즈막히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소규모 아카시아밴드..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2인조 밴드였습니다.

이름에서 묻어 나오듯 인디성향의 느낌과 맑은 느낌은 음악 덕분에...예전에 가끔 했었던 라디오 듣고
음반 지르기 신공으로 이들의 1, 2집 앨범 두개를 사두었습니다.

와이프가 집까지 바래다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보라고 들려줬던 CD를 저번주 일요일에
교회에 가면서 다시 듣게 되었고, 또...지인이신 도원형의 홈페이지에 인터뷰 기사가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양해를 구하고 이렇게 옮겨 왔습니다...^^

소규모 아카시아밴드의 느낌은 뭐랄까 참 신비롭고 애잔한 느낌과 더불어 맑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약을 먹은 느낌입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슬픈 사랑 노래



이 포스팅의 아래 내용은 컬쳐뉴스에서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 하시는 '나도원'님의 글을 옮겨 온 것 입니다.
퍼가실 때 출처나 작성자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원문의 내용의 링크 :
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4&title_down_code=003&article_num=8895


느슨하고 포근하게 어느 부분을 부풀려놓는듯한 편안한 음악,《소규모아카시아밴드》
▲ 느슨하고 포근하게 어느 부분을 부풀려놓는듯한 편안한 음악,《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음악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 햇살마저 차갑던 겨울날, 홍익대 부근의 아늑한 카페 ‘봄’에서 만난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말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2004)의 햇살을 손으로 자르거나 쥐어보듯 순간을 포착한 섬세함과 세심한 내향성은 그들의 존재를 귀 밝은 이들에게 알렸다. 얼마 후 김민홍(34)과 송은지(30)의 노래들은 드라마와 CF, 영화 그리고 출근길 지하철역의 스피커에서도 흘러나왔고,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의 주인공을 만들어냈다. 3년 전 겨울에 낯선 레이블에서 나온 신인의 앨범을 소개할 때에는 이처럼 대중적인 공감대를 (기대는 했으나) 확신하기는 힘들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내면으로 향하는 문(門)을 쌓았다면 《입술이 달빛》(2006)부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통가요의 리듬을 포크에 입힘으로써 한국적인 정서로 서구적 형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걸음을 보여줬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나쁘지 않은 피로감처럼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2007)는 보다 느긋하고 편안하다. 예리하게 파고들어 무엇을 끄집어내기보다는 느슨하고 포근하게 어느 부분을 부풀려놓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절제와 느림이라는 삶의 방식을 낮은 어조로 기술한다. 김민홍은 “요즘 목소리를 크게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도원 : 이승영 감독의 〈여기보다 어딘가에〉(2006)의 음악감독을 김민홍씨가 맡았다.

김민홍 : 중앙대 학생이 학교의 지원으로 만든 영화이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팬인 민한욱 교수가 이승영 감독에게 우리를 소개시켜주면서 적은 금액으로 음악작업을 해주게 되었다. 만들어놓은 곡들과 새로 만든 연주곡들을 입혔는데, 작업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도원 : 2004년 12월에 발표한 1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후 3년이 흘렀다. 기간에 비하면 활동 면에서 성공적인 성장을 했다.

김민홍 :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더러는 인디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작가나 PD들처럼 문화연예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분들과 나름대로 유명한 분들이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해주신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송은지 : 인복이 있었다. 공연을 재작년부터 2년 정도의 기간동안 정말 많이 했다. 때로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공연을 계속해왔다. 결과적인 얘기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벅찬 듯하게 활동하면서 알려지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도원 : 많은 사람들이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민홍 : 팬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서 이러저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들 중 어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론적으로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우리 음악은 여성들이 좋아했다.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완전히 다른 이유 때문에 음악을 좋아한다. 여성은 디테일함을 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좀 심심하더라도 어떤 부분과 가사 한 마디가 와 닿을 때 좋아한다. 그런데 남성은 어떤 리듬과 ‘알’이 있는 ‘통’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나는 희한한 스타일이라서 보통의 남자들보다 여자를 조금 더 잘 이해하는 축에 속하고, 여성성과 남성성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가 다음 앨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대하여 고민 중이다. 사실 그동안 나의 고민의 무엇인지 몰랐다가 최근에, 바로 어제 알게 되었다. 고민의 정체를 알았으니 풀어내야한다.

나도원 : 역시 지난 12월에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2007)와 《요조 with 소규모아카시아밴드》(2007)를 함께 발표했다. 일종의 마케팅 기법인가?

김민홍 :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요조라는 매력 있는 친구를 만나서 그냥 저렇게 내버려두면 앨범이 하나 나오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앨범을 낼 생각이었는데, 파스텔뮤직에서 요조와 전속계약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곡비를 받고 요조의 앨범작업을 하게 되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역시 하던 대로 했고. 그런데 두 앨범이 같은 날에 나왔다. 우리 생각과는 무관하다. 회사(파스텔뮤직)에서 그렇게 스케줄을 짰을 것이다.

나도원 : 단지 노래를 누가 부르는가에 따라 소규모아카시아밴드와 요조의 곡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곡은 어떻게 배분되었는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김민홍
김민홍 : (송)은지의 노래에 순수함과 평화로움이 있다면 요조에게는 귀여움과 섹시함이 있다. 요조는 코드가 나와 비슷한 친구였다. 노래에 담을 수 있는 성적인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런 지점들이 나와 비슷했다. 사실 《요조 with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가사들이 무척 야하다. 은지와 요조가 소곤소곤하게 노래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렇게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나도원 : 예전에는 송은지씨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와 자신이 하나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송은지 : 지금은 다르다. 내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이고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나이며, 또 어떤 때에는 내가 (김)민홍 오빠가 될 수 있고 민홍 오빠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훨씬 가까워졌다. 또 그동안 여러 세션들, 그리고 요조와 함께 활동을 해오면서 전과 다른 무엇이 생겨난 부분도 있다.

김민홍 : 나와 은지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라고 하기에는 개념이 커졌다. 앨범타이틀인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는 확장의 개념이다. 우리 둘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의미가 되었다. 이제 은지가 무엇을 하건,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린다 해도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은지도 얼마 전에 올해를 자기계발의 해로 삼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나도원 :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송은지 : 지금까지는 내게 역할이 고정적으로 주어졌다면, 이제 그것을 넘어서서 음악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그를 위해 피아노를 치고 있고 운동도 시작하려고 한다.

나도원 : 이번 앨범의 아트워크를 여러 명의 젊은 미술작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만들었다.

김민홍 : 잡지 「W」의 에디터로 있는 매우 가까운 이의 아이디어이다. 그 친구 주변에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함께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아는 서너 사람과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보내주고, 그들이 그 음악을 듣고 사진이나 그림을 하나씩 작업해서 다시 보내줬다. 
 
송은지 : 도와준 작가들과 작품들까지도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일부라는 것이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라는 제목의 의미이다.

나도원 : 2집 《입술이 달빛》(2006)부터 음악적인 변화가 있었다. 솔로 프로젝트 ‘민홍’의 《superworld》(2005)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입술이 달빛》에서는 절제하는 양상이었다. 이렇게 두 작업을 거치면서 방향성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김민홍 : 1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었던 시기에 만들었기 때문에 다양한 것들이 들어갔다. ‘민홍’의 《superworld》에서는 또 그런 작업들을 해보고 싶었다. ‘민홍’은 완전히 망했는데 (웃음) 좋은 경험이었다. 망한 것 이상의 도움이 있었다.

송은지 : 민홍 오빠가 편안하게 음악을 대하게 된 것이 음악의 방향이 바뀌는 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었다. 또 오빠가 그런 과정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편안하게 나올 수 있었다.

나도원 : 《입술이 달빛》부터 일관성이 확보되었고, 동요와 전통가요처럼 흥미로운 부분이 접목되었다. 독자성을 위해 전통가요의 옷을 입혀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가?

김민홍 : 동요는 잘 모르겠지만, 트로트는 가지고 왔다. 보통 트로트를 쓰면 우스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했다. 2003년부터 1950년대 우리 가요들을 찾아들으면서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왔다. 어떻게 쓸 수 있을 것인가의 출발점이 1집의 <S>와 같은 곡이었고,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과정이 《입술이 달빛》, 그리고 한 템포 늦춘 것이 이번 앨범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이다. 다음 4집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뭔가 많은 걸 해볼 생각이다.

나도원 : 한국적인 정서로 서구적 형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노력으로 보인다.

김민홍 : 그런 면도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말을 가장 잘 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외국 멜로디에 한국말을 붙이면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유려하게 흘러갈 수 있는 멜로디가 평면적이 되어버린다. 그런 걸 넘어서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나도원 : 그런데 이번 앨범은 트로트 리듬과 같은 부분들이 다소 옅어졌다.

김민홍 : 개인적인 성향 때문일 것이다. 남들과 비슷한 걸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하는 건 피하는 기질이다. 요즘에는 트로트 리듬을 활용하거나 하는 밴드들이 많아져서 보다 새로운 음악을 해보고 싶어졌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송은지
나도원 : 점점 간결해지고 있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표현방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아닌가?

김민홍 : 그것 역시 다음 앨범을 준비하면서 풀어야할 숙제이다. 다양성보다는 깊이를 취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요즘 내가 밥 딜런(Bob Dylan)에 열광하고 있다. 기타와 하모니카 그리고 목소리만으로 충분한 깊이를 만들어내지만, 그의 표현방식이 단출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바로 그와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숙제이다. 우리는 아직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

나도원 : 여백이 있는 음악에는 장점이 있다. 청자의 능동적인 작용이 음악의 구성에 참여하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3집의 지향과 맥이 닿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민홍 : 솔직히 여백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라디오에서 나오는 대중음악을 들어보면 압박감이 줄 정도로 너무 꽉 차있다고 느껴왔다. 손으로 사람을 누르는 듯한 느낌과 애써 눌러 담아내는 소리들이 듣기에 버거웠다. 물론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좋은 가요들이 많이 나오지만, 몇몇을 빼면 상업적인 음악들이 더 많다. 그래서 좀 덜어내고 싶었다.

나도원 : 주류가요에 그런 경향이 짙다. 통제에 의한 감동은 계획된 만큼만 달성되거나 그 이하로 약화된다. 계획되지 않은 오차와 우연에서 감동이 나오곤 하는데 말이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기법 상으로 소박해졌는데, 접근법이 풍성하면 창작이 원활해지는 면도 있을 것으로 본다.

김민홍 : 간단하게 말하면 ‘있는 것’은 싫다. 내가 생각하는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요즘은 작업을 못하고 있는데, 나의 상태가 그렇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상태이고, 그런 나의 상태에 따라 접근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송은지 : 《입술이 달빛》 때에는 조금 힘들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에서 자연스럽게 부르던 노래들과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좋았다. 이번 앨범은 몸에 익어선지 훨씬 편안했다. 사실 노래를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전에는 그냥 불렀던 것이지 내가 노래를 불러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것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고, 노래를 하는 송은지로서 찾아내야 하는 것들이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도원 : 송은지씨의 작사·작곡 비중이 조금 늘었다. 자연에 대한 애정이 담긴 <나무>는 장필순 또는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는 양희은이 연상될 정도로 좋은 노래이다. 앞으로 송은지씨의 창작이 늘어날 여지가 있는가?

송은지 : 두고봐야한다. 예전에는 우리가 음악으로만 만났다면, 이제는 점점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고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다.

김민홍 : 나 역시 이번 앨범에서 <나무>를 제일 좋아한다. 은지의 작사·작곡에 대하여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은지에게는 큰 재능이 있고, <나무>와 같은 곡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동요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동요 앨범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은지가 짤막한 가사를 쓰면 내가 멜로디를 붙이는 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타, 노래만으로 채워지는 동요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나도원 : 대체로 차분한 흐름에서 유일하게 흥겨운 분위기인 <쑈쑈쑈>는 2집과 연장선을 긋고, <My Favorite Song>은 1집의 분위기와 이어진다.

김민홍 : 그렇다. <쑈쑈쑈>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곡이었다. (웃음) 원래 우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곡을 만들지 않고 그때그때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나오는 편이다. 그런데 <My Favorite Song>에는 의도라는 부분이 조금은 들어가 있다. 편곡하면서 1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반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곡이다.

송은지 : <My Favorite Song>이 가장 부르기 쉬웠다. 부르면서 이것이 내 목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원 : 가사에 주변의 평범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민홍 : 내가 쓴 가사에 여성성이 강하다. 남자로서 가지고 있는 나의 감성이 있을 텐데,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고민이 있다. 《입술이 달빛》을 낸 후에 우연히 가사를 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송은지 : 음악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재미있다. 산책을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운동을 더 해보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나를 건강하게 만들면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몸이 좋지 않아서 조금만 힘들어도 영향을 받는데, 몸의 상태에 따라 노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했다. 그런 경험들이 스스로를 일깨우는 경우가 많다.

나도원 : 창작력 고갈에 처한 음악인들은 답습을 하거나, 맥 빠진 실험을 하거나, 아이디어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가?

송은지 :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텐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어떤 압박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아감이다. 

김민홍 : 나는 조금 더 가보고 싶다. 전에도 물론 고민은 있었지만 요즘처럼 많이 고민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처음이다.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시기가 되었고, 지금을 잘 견뎌내야 할 것 같다.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상한 음악을 하게 된다. 받아들인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음악은 할 만큼 했다. 이제 좀 더 힘을 싣고 싶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누구에게 얘기를 충분히 걸고 있지 못하다. 1집부터 3집까지 우리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더 나아가고 싶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일단 나 스스로부터 목소리를 크게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도원 : 금을 찾기 위해 밭을 갈다가 다른 무엇을 발견한다는 흔한 얘기가 있다.

김민홍 : 정말 조심스럽지만, 내가 생각하는 음악은 머리로 공부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누군가 머리를 써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긴 해야겠지만.

나도원 : 앞으로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어떤 길을 갈 생각인가?

김민홍 : 꿈을 가지고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만간 기타를 들고 길거리로 나올 생각이다. 꽤 오랫동안 생각해온 일인데, 스스로의 훈련을 위해 마이크 없이 길에서 노래를 부를 생각이다. 그래서 요즘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처럼 길에서 부를 수 있는 곡들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정기공연을 다시 시도하려고 한다. 2월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격주로 홍대 ‘프리버드’와 강남역 ‘DM클럽’에서 공연한다. 친구들과 함께, 또는 어쿠스틱으로, 또는 밴드로 공연한다든지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 한다. 그러한 기획을 그 곳에서 먼저 선보이면서 어떤 과정을 만들어가려 한다.

나도원 : 지금도 공연할 때 떨리는가?

김민홍 : 우리 엄청 떤다. 은지가 말했던 제어할 수 있는 떨림, 그런 떨림마저 없어진다면…….


◆ 발표작품

2004, 소규모아카시아밴드 1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
2005, MINHONG 《superworld》
2006, 소규모아카시아밴드 2집 《입술이 달빛》
2007, 요조 《요조 with 소규모아카시아밴드》
2007, 소규모아카시아밴드 3집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



나도원 _  대중음악평론가. 밴드 뮤지션으로 활동하다 비평계에 입문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대중음악평론가협의회 회원이며,
<가슴> 편집인, 2005 · 2006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매체팀장 등을 역임했다.

 


 

편집 : [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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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zerofilm.tistory.com BlogIcon 똥막대기 2008.02.05 16:19 신고

    담백한 느낌^.^

    • 다른 곡도 소개 할 수 있으면 소개 할께요...^^;

      담백하고 오묘하고 그렇습니다.
      실제 곡들 중에 고양이 스런 느낌...간질간질한 느낌이
      드는 곳들이 몇 곡 있어요...^^

  2. Favicon of http://jiguends.tistory.com BlogIcon 우주괴물 2008.02.09 22:41 신고

    으음... 이거 아무래도 질러야겠습니다. 음반이 있을지...
    이 팀 이름은 전부터 들어왔지만 음악은 처음 접하네요.
    너무 좋아요.
    덕분에 주머니가 가벼워집니다. ㅠ.ㅠ
    헉... 지금 코러스부분.... 환상이네요.

    • 우주괴물님 안녕하세요...^^
      설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새로운 한 주의 시작입니다.
      좋은 소개를 드린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음악이 있어서 좋은 날이 될 것 같네요.

제어 할 수 없는 떨림

2008.02.05 16:27
언젠가 들었던 라디오에서 나즈막히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소규모 아카시아밴드..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2인조 밴드였습니다.

이름에서 묻어 나오듯 인디성향의 느낌과 맑은 느낌은 음악 덕분에...예전에 가끔 했었던 라디오 듣고
음반 지르기 신공으로 이들의 1, 2집 앨범 두개를 사두었습니다.

와이프가 집까지 바래다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보라고 들려줬던 CD를 저번주 일요일에
교회에 가면서 다시 듣게 되었고, 또...지인이신 도원형의 홈페이지에 인터뷰 기사가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양해를 구하고 이렇게 옮겨 왔습니다...^^

소규모 아카시아밴드의 느낌은 뭐랄까 참 신비롭고 애잔한 느낌과 더불어 맑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약을 먹은 느낌입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슬픈 사랑 노래



이 포스팅의 아래 내용은 컬쳐뉴스에서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 하시는 '나도원'님의 글을 옮겨 온 것 입니다.
퍼가실 때 출처나 작성자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원문의 내용의 링크 :
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4&title_down_code=003&article_num=8895


느슨하고 포근하게 어느 부분을 부풀려놓는듯한 편안한 음악,《소규모아카시아밴드》
▲ 느슨하고 포근하게 어느 부분을 부풀려놓는듯한 편안한 음악,《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음악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 햇살마저 차갑던 겨울날, 홍익대 부근의 아늑한 카페 ‘봄’에서 만난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말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2004)의 햇살을 손으로 자르거나 쥐어보듯 순간을 포착한 섬세함과 세심한 내향성은 그들의 존재를 귀 밝은 이들에게 알렸다. 얼마 후 김민홍(34)과 송은지(30)의 노래들은 드라마와 CF, 영화 그리고 출근길 지하철역의 스피커에서도 흘러나왔고,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의 주인공을 만들어냈다. 3년 전 겨울에 낯선 레이블에서 나온 신인의 앨범을 소개할 때에는 이처럼 대중적인 공감대를 (기대는 했으나) 확신하기는 힘들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내면으로 향하는 문(門)을 쌓았다면 《입술이 달빛》(2006)부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통가요의 리듬을 포크에 입힘으로써 한국적인 정서로 서구적 형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걸음을 보여줬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나쁘지 않은 피로감처럼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2007)는 보다 느긋하고 편안하다. 예리하게 파고들어 무엇을 끄집어내기보다는 느슨하고 포근하게 어느 부분을 부풀려놓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절제와 느림이라는 삶의 방식을 낮은 어조로 기술한다. 김민홍은 “요즘 목소리를 크게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나도원 : 이승영 감독의 〈여기보다 어딘가에〉(2006)의 음악감독을 김민홍씨가 맡았다.

김민홍 : 중앙대 학생이 학교의 지원으로 만든 영화이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팬인 민한욱 교수가 이승영 감독에게 우리를 소개시켜주면서 적은 금액으로 음악작업을 해주게 되었다. 만들어놓은 곡들과 새로 만든 연주곡들을 입혔는데, 작업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도원 : 2004년 12월에 발표한 1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후 3년이 흘렀다. 기간에 비하면 활동 면에서 성공적인 성장을 했다.

김민홍 :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더러는 인디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작가나 PD들처럼 문화연예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분들과 나름대로 유명한 분들이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해주신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송은지 : 인복이 있었다. 공연을 재작년부터 2년 정도의 기간동안 정말 많이 했다. 때로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공연을 계속해왔다. 결과적인 얘기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벅찬 듯하게 활동하면서 알려지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도원 : 많은 사람들이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민홍 : 팬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서 이러저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그들 중 어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론적으로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까지의 우리 음악은 여성들이 좋아했다.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완전히 다른 이유 때문에 음악을 좋아한다. 여성은 디테일함을 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좀 심심하더라도 어떤 부분과 가사 한 마디가 와 닿을 때 좋아한다. 그런데 남성은 어떤 리듬과 ‘알’이 있는 ‘통’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나는 희한한 스타일이라서 보통의 남자들보다 여자를 조금 더 잘 이해하는 축에 속하고, 여성성과 남성성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가 다음 앨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대하여 고민 중이다. 사실 그동안 나의 고민의 무엇인지 몰랐다가 최근에, 바로 어제 알게 되었다. 고민의 정체를 알았으니 풀어내야한다.

나도원 : 역시 지난 12월에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2007)와 《요조 with 소규모아카시아밴드》(2007)를 함께 발표했다. 일종의 마케팅 기법인가?

김민홍 :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요조라는 매력 있는 친구를 만나서 그냥 저렇게 내버려두면 앨범이 하나 나오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앨범을 낼 생각이었는데, 파스텔뮤직에서 요조와 전속계약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곡비를 받고 요조의 앨범작업을 하게 되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역시 하던 대로 했고. 그런데 두 앨범이 같은 날에 나왔다. 우리 생각과는 무관하다. 회사(파스텔뮤직)에서 그렇게 스케줄을 짰을 것이다.

나도원 : 단지 노래를 누가 부르는가에 따라 소규모아카시아밴드와 요조의 곡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곡은 어떻게 배분되었는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김민홍
김민홍 : (송)은지의 노래에 순수함과 평화로움이 있다면 요조에게는 귀여움과 섹시함이 있다. 요조는 코드가 나와 비슷한 친구였다. 노래에 담을 수 있는 성적인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런 지점들이 나와 비슷했다. 사실 《요조 with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가사들이 무척 야하다. 은지와 요조가 소곤소곤하게 노래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렇게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나도원 : 예전에는 송은지씨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와 자신이 하나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송은지 : 지금은 다르다. 내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이고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나이며, 또 어떤 때에는 내가 (김)민홍 오빠가 될 수 있고 민홍 오빠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훨씬 가까워졌다. 또 그동안 여러 세션들, 그리고 요조와 함께 활동을 해오면서 전과 다른 무엇이 생겨난 부분도 있다.

김민홍 : 나와 은지가 소규모아카시아밴드라고 하기에는 개념이 커졌다. 앨범타이틀인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는 확장의 개념이다. 우리 둘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의미가 되었다. 이제 은지가 무엇을 하건,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린다 해도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은지도 얼마 전에 올해를 자기계발의 해로 삼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나도원 :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송은지 : 지금까지는 내게 역할이 고정적으로 주어졌다면, 이제 그것을 넘어서서 음악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그를 위해 피아노를 치고 있고 운동도 시작하려고 한다.

나도원 : 이번 앨범의 아트워크를 여러 명의 젊은 미술작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만들었다.

김민홍 : 잡지 「W」의 에디터로 있는 매우 가까운 이의 아이디어이다. 그 친구 주변에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함께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아는 서너 사람과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보내주고, 그들이 그 음악을 듣고 사진이나 그림을 하나씩 작업해서 다시 보내줬다. 
 
송은지 : 도와준 작가들과 작품들까지도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일부라는 것이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라는 제목의 의미이다.

나도원 : 2집 《입술이 달빛》(2006)부터 음악적인 변화가 있었다. 솔로 프로젝트 ‘민홍’의 《superworld》(2005)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입술이 달빛》에서는 절제하는 양상이었다. 이렇게 두 작업을 거치면서 방향성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김민홍 : 1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었던 시기에 만들었기 때문에 다양한 것들이 들어갔다. ‘민홍’의 《superworld》에서는 또 그런 작업들을 해보고 싶었다. ‘민홍’은 완전히 망했는데 (웃음) 좋은 경험이었다. 망한 것 이상의 도움이 있었다.

송은지 : 민홍 오빠가 편안하게 음악을 대하게 된 것이 음악의 방향이 바뀌는 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었다. 또 오빠가 그런 과정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편안하게 나올 수 있었다.

나도원 : 《입술이 달빛》부터 일관성이 확보되었고, 동요와 전통가요처럼 흥미로운 부분이 접목되었다. 독자성을 위해 전통가요의 옷을 입혀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가?

김민홍 : 동요는 잘 모르겠지만, 트로트는 가지고 왔다. 보통 트로트를 쓰면 우스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했다. 2003년부터 1950년대 우리 가요들을 찾아들으면서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왔다. 어떻게 쓸 수 있을 것인가의 출발점이 1집의 <S>와 같은 곡이었고,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한 과정이 《입술이 달빛》, 그리고 한 템포 늦춘 것이 이번 앨범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이다. 다음 4집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뭔가 많은 걸 해볼 생각이다.

나도원 : 한국적인 정서로 서구적 형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노력으로 보인다.

김민홍 : 그런 면도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말을 가장 잘 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외국 멜로디에 한국말을 붙이면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유려하게 흘러갈 수 있는 멜로디가 평면적이 되어버린다. 그런 걸 넘어서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나도원 : 그런데 이번 앨범은 트로트 리듬과 같은 부분들이 다소 옅어졌다.

김민홍 : 개인적인 성향 때문일 것이다. 남들과 비슷한 걸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하는 건 피하는 기질이다. 요즘에는 트로트 리듬을 활용하거나 하는 밴드들이 많아져서 보다 새로운 음악을 해보고 싶어졌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송은지
나도원 : 점점 간결해지고 있는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표현방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아닌가?

김민홍 : 그것 역시 다음 앨범을 준비하면서 풀어야할 숙제이다. 다양성보다는 깊이를 취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요즘 내가 밥 딜런(Bob Dylan)에 열광하고 있다. 기타와 하모니카 그리고 목소리만으로 충분한 깊이를 만들어내지만, 그의 표현방식이 단출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바로 그와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숙제이다. 우리는 아직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하다

나도원 : 여백이 있는 음악에는 장점이 있다. 청자의 능동적인 작용이 음악의 구성에 참여하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3집의 지향과 맥이 닿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민홍 : 솔직히 여백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라디오에서 나오는 대중음악을 들어보면 압박감이 줄 정도로 너무 꽉 차있다고 느껴왔다. 손으로 사람을 누르는 듯한 느낌과 애써 눌러 담아내는 소리들이 듣기에 버거웠다. 물론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좋은 가요들이 많이 나오지만, 몇몇을 빼면 상업적인 음악들이 더 많다. 그래서 좀 덜어내고 싶었다.

나도원 : 주류가요에 그런 경향이 짙다. 통제에 의한 감동은 계획된 만큼만 달성되거나 그 이하로 약화된다. 계획되지 않은 오차와 우연에서 감동이 나오곤 하는데 말이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기법 상으로 소박해졌는데, 접근법이 풍성하면 창작이 원활해지는 면도 있을 것으로 본다.

김민홍 : 간단하게 말하면 ‘있는 것’은 싫다. 내가 생각하는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요즘은 작업을 못하고 있는데, 나의 상태가 그렇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상태이고, 그런 나의 상태에 따라 접근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송은지 : 《입술이 달빛》 때에는 조금 힘들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에서 자연스럽게 부르던 노래들과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좋았다. 이번 앨범은 몸에 익어선지 훨씬 편안했다. 사실 노래를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전에는 그냥 불렀던 것이지 내가 노래를 불러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것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고, 노래를 하는 송은지로서 찾아내야 하는 것들이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도원 : 송은지씨의 작사·작곡 비중이 조금 늘었다. 자연에 대한 애정이 담긴 <나무>는 장필순 또는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는 양희은이 연상될 정도로 좋은 노래이다. 앞으로 송은지씨의 창작이 늘어날 여지가 있는가?

송은지 : 두고봐야한다. 예전에는 우리가 음악으로만 만났다면, 이제는 점점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고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이 필요하다.

김민홍 : 나 역시 이번 앨범에서 <나무>를 제일 좋아한다. 은지의 작사·작곡에 대하여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은지에게는 큰 재능이 있고, <나무>와 같은 곡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동요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동요 앨범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은지가 짤막한 가사를 쓰면 내가 멜로디를 붙이는 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타, 노래만으로 채워지는 동요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나도원 : 대체로 차분한 흐름에서 유일하게 흥겨운 분위기인 <쑈쑈쑈>는 2집과 연장선을 긋고, <My Favorite Song>은 1집의 분위기와 이어진다.

김민홍 : 그렇다. <쑈쑈쑈>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곡이었다. (웃음) 원래 우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곡을 만들지 않고 그때그때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나오는 편이다. 그런데 <My Favorite Song>에는 의도라는 부분이 조금은 들어가 있다. 편곡하면서 1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반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곡이다.

송은지 : <My Favorite Song>이 가장 부르기 쉬웠다. 부르면서 이것이 내 목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원 : 가사에 주변의 평범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김민홍 : 내가 쓴 가사에 여성성이 강하다. 남자로서 가지고 있는 나의 감성이 있을 텐데, 앞서 말한 것과 같은 고민이 있다. 《입술이 달빛》을 낸 후에 우연히 가사를 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송은지 : 음악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재미있다. 산책을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운동을 더 해보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나를 건강하게 만들면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몸이 좋지 않아서 조금만 힘들어도 영향을 받는데, 몸의 상태에 따라 노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했다. 그런 경험들이 스스로를 일깨우는 경우가 많다.

나도원 : 창작력 고갈에 처한 음악인들은 답습을 하거나, 맥 빠진 실험을 하거나, 아이디어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가?

송은지 :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텐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어떤 압박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나아감이다. 

김민홍 : 나는 조금 더 가보고 싶다. 전에도 물론 고민은 있었지만 요즘처럼 많이 고민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처음이다.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시기가 되었고, 지금을 잘 견뎌내야 할 것 같다.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상한 음악을 하게 된다. 받아들인 것을 그대로 얘기하는 음악은 할 만큼 했다. 이제 좀 더 힘을 싣고 싶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누구에게 얘기를 충분히 걸고 있지 못하다. 1집부터 3집까지 우리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더 나아가고 싶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일단 나 스스로부터 목소리를 크게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도원 : 금을 찾기 위해 밭을 갈다가 다른 무엇을 발견한다는 흔한 얘기가 있다.

김민홍 : 정말 조심스럽지만, 내가 생각하는 음악은 머리로 공부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누군가 머리를 써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주긴 해야겠지만.

나도원 : 앞으로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어떤 길을 갈 생각인가?

김민홍 : 꿈을 가지고 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만간 기타를 들고 길거리로 나올 생각이다. 꽤 오랫동안 생각해온 일인데, 스스로의 훈련을 위해 마이크 없이 길에서 노래를 부를 생각이다. 그래서 요즘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처럼 길에서 부를 수 있는 곡들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정기공연을 다시 시도하려고 한다. 2월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격주로 홍대 ‘프리버드’와 강남역 ‘DM클럽’에서 공연한다. 친구들과 함께, 또는 어쿠스틱으로, 또는 밴드로 공연한다든지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 한다. 그러한 기획을 그 곳에서 먼저 선보이면서 어떤 과정을 만들어가려 한다.

나도원 : 지금도 공연할 때 떨리는가?

김민홍 : 우리 엄청 떤다. 은지가 말했던 제어할 수 있는 떨림, 그런 떨림마저 없어진다면…….


◆ 발표작품

2004, 소규모아카시아밴드 1집 《소규모아카시아밴드》
2005, MINHONG 《superworld》
2006, 소규모아카시아밴드 2집 《입술이 달빛》
2007, 요조 《요조 with 소규모아카시아밴드》
2007, 소규모아카시아밴드 3집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



나도원 _  대중음악평론가. 밴드 뮤지션으로 활동하다 비평계에 입문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대중음악평론가협의회 회원이며,
<가슴> 편집인, 2005 · 2006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매체팀장 등을 역임했다.

 


 

편집 : [박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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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y - Extreme Ways  (7) 2008.01.25
  1. Favicon of http://zerofilm.tistory.com BlogIcon 아궁이 2008.02.05 16:19 신고

    담백한 느낌^.^

    • Favicon of http://monopiece.tistory.com BlogIcon 장대군 monopiece 2008.02.05 16:28 신고

      다른 곡도 소개 할 수 있으면 소개 할께요...^^;

      담백하고 오묘하고 그렇습니다.
      실제 곡들 중에 고양이 스런 느낌...간질간질한 느낌이
      드는 곳들이 몇 곡 있어요...^^

  2. Favicon of http://rakastaa.tistory.com BlogIcon 우주괴물 2008.02.09 22:41 신고

    으음... 이거 아무래도 질러야겠습니다. 음반이 있을지...
    이 팀 이름은 전부터 들어왔지만 음악은 처음 접하네요.
    너무 좋아요.
    덕분에 주머니가 가벼워집니다. ㅠ.ㅠ
    헉... 지금 코러스부분.... 환상이네요.

    • Favicon of http://monopiece.tistory.com BlogIcon 장대군 monopiece 2008.02.11 09:16 신고

      우주괴물님 안녕하세요...^^
      설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새로운 한 주의 시작입니다.
      좋은 소개를 드린 것 같아 뿌듯합니다..!
      음악이 있어서 좋은 날이 될 것 같네요.

신해철에 대한 명상

2007.12.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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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동두천





































신해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가 필요하다.

그는 나의 신이었고, 위대한 음악의 전도사였으며, 꿈을 꾸게 해 준 장본인이었기에...

그를 10년만에 만났던 2004년 동두천락페스티벌의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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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동두천. 그도 나이를 먹더라...간주 부분의 힘들어 하는 모습

 










































그는 열심히 노래했지만 체력과의 싸움이 시작된 듯 보였다.

몇 곡 부르지 않았지만 숨을 헐떡이는 그를 보았고, 그는 내내 내 카메라를 교묘하게 따돌렸다.

아쉽게도...그의 사진은 에러가 난 하드디스크에서 잠들어 있다...

 

신해철 재즈앨범과 관련된 인터뷰 (YES24 진행)

 

당신은 신해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 그 이상의 의미라는 점이다. 가수 유니의 죽음으로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디지털 음원 시장의 확대가 음악시장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을 때 그의 발언 하나 하나는 사회 전체로 파장되는 힘을 지니며 다가온다. 모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안면인식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 고백 아닌 고백은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될 만큼 신해철은 어느덧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어쩌면 이는 그가 몸담고 사는 사회에 대하여 많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또 하나. 어떤 문제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고민에 대한 답을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구사할 수 있는 그의 지적 능력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해철이라는 사람의 핵심은 역시 음악. 그가 돈과 시간을 들이고, 사람들을 모아 일을 도모하고, 자아 실현을 이루는 무대이자 장이 바로 음악이다. 마치 부정과 부정의 연속이었던 서양철학사의 한 장면을 재현하듯 1990년대 최고의 록밴드 넥스트를 해체한 후 "레코딩 테크놀러지"를 배우고 실험하여 두문불출하던 십 년. 그는 그 십 년을 딛고 최근 통산 25번째 앨범이자 솔로 앨범인 『The Songs For The One』을 발표했다. 컴퓨터에 의한 편집과 짜깁기가 창작의 주요 방법이 되다시피 한 현 가요계에서 초호화진용의 28인조 빅밴드와 보컬을 한 번에 동시 녹음하는 초강수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앨범이다.

넥스트가 아닌 신해철의 앨범 『The Songs For The One』

"이번에 나온 앨범이 상당히 로맨틱하고 부드럽습니다. 넥스트의 실험정신 가득한 음악을 좋아하던 기존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음악을 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음악을 하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죠. 사람들 요구에 따라가자면 끝이 없어요. 대중들이 요구하는 것과 너무 동떨어지는 것을 해도 음악을 못하겠지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통산 레코드 판매량이 육칠백만 정도인데, 앨범 세 장 내고 육백만 장 파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앨범은 지금도 팔리거든요. 꾸준히 지속적으로 활동을 한 셈인데, 순간 순간 사람들이 지금쯤이면 이런 것을 기대할거야… 그런 것들이 안 읽히는 것은 아니에요.

음악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려야 할 때에는 그 기대에 부응해서 음악을 하죠. 하지만 사람이 어느 정도 먹었으면 배가 불러야지, 배 터질 때까지 욕심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러려면 상업적 욕심보다는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맞겠죠.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도 듣는 사람은 편안하게 들을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은 편하게 만든 것은 아니거든요. 만드는 과정도 어떻게 보면 넥스트가 했던 작업에 비해 고난이도가 많았어요. 사람들은 왜 '넥스트 6집 왜 안 나오느냐, 나와서 왜 시원하게 안 때려부수느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번에 이걸 해야겠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뭐 그런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죠."


"앨범 재킷의 'Thanks to'에서 직접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아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많이 어필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점을 굳이 드러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음악이라는 것이 삶의 반영이니까…. 나와 우리 집사람이 꽤나 로맨틱하게 살고 있다는 삶의 증거랄까? 순서가 거꾸로인 것 같아요. 그러려고 만든 것은 아니고, 그렇게 지내니까 이런 음악이 나온 것이 아닐까. 아마 제가 독신으로 살고 있거나 그랬으면 이런 게 안 나왔겠죠?"

"결혼 생활이 음악에 끼친 영향이 있나요?"

"글쎄요…. 음악 자체에 크게 영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내 삶이 결혼을 함으로써 변하는 부분이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넥스트가 결혼을 하든, 돈이 있든 없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거라면, 변화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이겠죠. 넥스트에서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My Way', 'Moon River' 등 익숙한 곡들 위주로 편성되었습니다. 곡 선정은 어떻게 하셨나요?"

"무난하고 쉽고 즐거운… 그런 느낌들? 그런 것에 충실했고 미주알고주알 따지지 않았어요. 내가 불러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좀 더 집중했습니다. 제가 자기 전에 코냑 한 잔 마시고 자는 습관이 있는데 그때 내가 무엇을 들었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쓰임새가 되었으면 해서 만든 거예요. 밤에 집에 들어와서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놓고 술잔 하나 들고 있을 때 듣든지, 와이프와 창 밖 바라보며 춤출 때 듣든지, 자기 전에 듣든지… 그런 용도로 만든 거라 삶의 치열한 고민을 통해 나온 것은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이번 앨범은 특이하게 보컬만 하셨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해철은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하니까. 음악하는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겠지만 일단 제가 그렇거든요. 밴드 팀원과 역할 분담할 때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보컬을 맡게 되었고, 음악을 하는 형식적인 방법이 내가 직접 보컬을 하는 거였기 때문에…. 음악하는 사람 중에서 보컬 파트에 저만큼 애착이 없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넥스트에서 노래할 때는 초긴장 모드에서 하는 거의 개노동인데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가라오케에서 노래 부를 때는 엔터테인먼트잖아요. 나한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작의 부담은 덜어내고 내게 휴식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휴식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이번에 노래할 때 기분 좋더라고요. 선천적인 내 목소리는 이런 거구나, 라고 새삼 알기도 했고요. 그런대 한 샷 녹음으로 가야 하니까 그게 좀 머리 아팠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면에서는 이 앨범이 공격적이에요. 듣는 사람은 편하게 듣지만 국내 풍토에서 빅밴드 어레인지먼트에 도전하고, 70년에 이후에 거의 폐기되다시피한 한 방 원샷에 도전하고 이런 것이 어떻게 보면 이 악물고 한 거였거든요. 요즘 나오는 조립식 음악에 대해서 느끼는 짜증과 반감의 표현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보면 신해철의 공격성이 완전히 없어진 앨범은 아니에요."


이번 앨범은 조립식 음악에 대한 반감의 표현

"그 공격성이 에둘러서 표현된 거네요."

"요즘은 음반 시장이 침체되니까, 음악 편성 자체가 위축되고 축소되잖아요. 그래서 지난 번 넥스트 5.5집에서는 70인조 오케스트라가 들어가고 이번에는 28인조 빅밴드 스윙 오케스트라가 들어가고 돈을 쳐바른 건데… 어디서 돈이 났느냐는 미스터리로 남겨두기로 하고(웃음) 그런 면에서 반발 모드예요. 원샷으로 가야 한다고 편집증적으로 녹음한 것도 그렇고."

"원 샷 녹음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작비 때문에?"

"그게 기본적으로 재즈라고 생각하니까요. 재즈라는 장르 자체가 노래를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법도 없고, 또 재즈라는 음악 자체를 이렇게 해야 한다는 법도 없으니까. 내 맘대로 꼴리는 대로 하면 그만인데, 그래도 뭔가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를 표현하지 못하면 그것은 재즈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한 방에 거의 라이브 테이크 잡듯이 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결정이 났고 또 제가 딴 맘 못 먹게 박권일 프로듀서라고 다른 프로듀서에게 맡겨서요. 곳간 키를 넘겨주었으니…. 사실 녹음 끝나고 몇 개는 2절만 다시 불러보자고 빌었다니까요. 뻰찌 먹었잖아요.(웃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

"이번 작업 하면서 배운 게 있었나요?"

호주에서의 녹음 현장

"제가 레코딩 테크놀러지 배우려고 영국에 갔었죠. 저는 특화된 걸 공부한 거예요. 록 쪽 레코딩하는 방법을 주로 공부했거든요. 재즈 쪽은 녹음할 때 마이크를 어떻게 설치하는지, 어떻게 녹음을 하는지 그런 것은 잘 몰랐는데 가서 보니까 마이크 몇 개 설치 안 하더라고요. 너무나 허무하게…(웃음) 연주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볼륨 조절 다 하고, 그런 것을 보면서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우리나라에서 녹음하면 반주 녹음이 다 끝난 상태에서 MR을 들으면서 노래를 넣는 형태인데, 이번 같은 경우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에 연주자들과 내가 눈이 마주치잖아요. 내가 노래가 빨라진다거나 느려질 때 연주자들을 보는데, 연주자들이 너무나도 여유가 넘치는 거예요. 악보도 안 보고 제 얼굴을 보고, 제 노래 스타일 들어보면서 맞춰주더라고요. 그런 교감이 가능한 거죠. 그리고 2007년 지금에 와서는 이것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레코딩 테크놀러지인 셈이죠. 지금 시대에는."


"타이틀 곡을 장미로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Thank you and I love you'가 좋았습니다. 특히 가사가 좋았는데요.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쑥스러워서요. 간지럽더라고요. 내가 만든 노래 중에 제일 닭살인 거 같아요. 부르면서도 닭살이 돋아서 방송에 나가서 부르는 것은 무안하고 창피해서 못하겠다 했죠.(웃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는 장난기가 느껴질 만큼 낯간지러웠는데, 그 노래를 포함시킨 이유가 궁금합니다."

"장난기예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는 마지막까지 넣을까 말까 언쟁이 있었던 곡인데… 왜냐하면 노래 제목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지만 가사는 지극히 마초적이에요. 그런 것이 좀 언짢아서…. 가사를 듣다 보면 짜증이 확 나요.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 이 부분에서는 '이것은 아내에게 바치는 것을 가장한 마초의 잘난 척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당시는 그런 시대였고, 또 이 노래 말고 우리나라에서 와이프를 대상으로 한 노래가 트로트 말고는 없어요. 거의 유일한 곡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가, 하수영 씨가 저음 가수였잖아요. 우리나라에 저음 가수가 거의 전무해요. 그 이유 때문에 노래 제목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니까 넘어가자… 해서 넘어갔죠. 저도 선곡하면서 다시 느낀 건데… 정말 마초적이더라구요. 불쾌할 정도로."


실패하는 과정에서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1월 29일을 발매 예정일로 잡으셨는데 일부 팬들은 '정말 그때 나올까? 하고 믿지 않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한 번도 제 날짜에 앨범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일 텐데, 왜 그렇게 매번 앨범 작업에 시간을 끄셨나요? 완벽한 사운드에 대한 고집 때문에?"

"사운드에 대한 고집도 고집이지만 장기 녹음에 들어가면 중간에 팀원들이 나가떨어졌다가 다시 단합해서 목표로 다가갔다가 신이 나서 녹음을 했다가 또 페이스가 쳐졌다가 그런 것을 반복해요. 수십 번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앨범 나오기 직전에는 모두들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까지 가거든요. 잘못하면 그런 것은 팀 해산 요인까지 되어버려요. 상업적인 결과로 보면 항상 단기전이 좋았어요. 이주일 만에 만든 앨범, 이런 것이 항상 앨범 판매고가 높았고구요. 지금도 제 주위 친구들은 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냥 앨범 마감일까지 아무것고 안 하고 놀다가 딱 일주일 전에 시작해서 일주일 만에 끝내고 더 이상 손대지 말라고요. 그런데 패턴으로 보면 후반기로 오면 올수록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죠.(웃음)."

"작업 스타일이 어떠시기에 그런 거예요? 기한 없는 프로젝트인 건가요?"

"기한도 없고… 사실 딱 십 년이 되었네요. 넥스트가 해산한 지. 나머지 십 년 동안은 음악을 위해서 레코드 테크놀로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고, 레코딩 테크놀로지를 배워가면서 그걸 실험하기 위한 곡들을 만든 십 년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당연히 대중들 입장에서는 점점 듣기가 힘들어지죠. 어떤 곡들은 좁쌀 하나 하나 색칠해서 63빌딩만한 그림을 만든다, 라는 식의 작업이여서 공동작업자들이 정신병원에 가는 것이 낫지, 이런 작업을 어떻게 하냐… 그런 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했으니까. 이제 한 시즌 끝났다고 생각하고 쉬어가면서 이번 앨범 하나가 나온 건데… 어떻게 보면 십 년 동안 제가 공부한 것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뜻이기도 해요. 한 방으로 가, 편안하게 가고…. 다음 넥스트 앨범도 아마 원 샷, 원 테이크 녹음으로 갈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요?"

"기본이 가장 중요한 거라는 것을 실패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같아요. 결론이 안 나면 끝까지 파는 건데, 결론이 나올 때까지 공부를 했어요. 내가 레코딩 엔지니어로 다른 사람의 앨범을 믹싱할 수 있고 레코딩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공부했으니까. 거기까지 가고 나니까 결론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곡이 좋아야 하고. 멜로디 좋아야 하고,. 가사 좋아야 하고, 노래 잘해야 하고… 드럼 베이스 연주 잘하면 되는 거지, 그거 이상, 그 이하 방법이 없다, 잘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라는 거예요."

죽어도 베드로는 못 되는 성격

사실 그것을 십 년 전에도 몰랐던 것은 아니에요. 기필코 직접 확인해 봐야 하는 거죠. 성질 머리상. 저는 '나 믿고 따라와라' 하면 '네!' 하고 따라가는 베드로는 죽어도 못 되는 거예요. 예수가 부활해서 눈앞에 나타났는데 직접 손으로 확인해보고 믿는 도마(Thomas) 정도는 될지 몰라도요. 곡 좋아야 하고, 연주 좋아야 하고… 그런 것이 맞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외국 음악 들어보면 뭐가 휙 하는 소리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알아야겠고 양놈들은 드럼소리 팡 하면 저기까지 들리는데… 그런데 왜 목소리 안 먹어 들어가지? 그것도 알아야겠고, 미치겠는 거예요.

공부해 보니까 양놈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더라고요. 진짜 뮤지션들은 음악 즐겁게 하고 평소 생활도 즐겁게 하고 음악 즐겁게 만들면, 내가 궁금해하던 소리가 뒤에서 날아오고, 그런 것들을 프로듀서가 담당하는 체제인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프로듀서 체제가 아니니까, 내가 직접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잖아요. 제가 프로듀스해주는 후배 밴드들에게 '너네는 좋은 멜로디와 가사만 만들어, 나머지는 내가 다 해줄게' 그래요. 기껏 죽어라고 공부해서 남 좋은 일 해주고 있지요. 내 후배들은 덕 많이 보는데 저는 사실 공부한 덕 많이 못 보고 있어요. 손해만 좀 봤지요.(웃음)"


"배워서 남 주고 계시니까 공부 잘한 거 아니에요?"

"특히 락 프로듀서는요, 외국 같은 경우는 사운드 믹스까지 끝내는 것이 프로듀스의 일이거든요. '이렇게 만들어 저렇게 만들어 그렇게 지시해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사운드 디자인 개념을 머릿속에 갖추고 마지막 기계를 만지는 과정까지 프로듀서가 하는 일인데 우리나라에는 그게 없으니까 그걸 해주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어요. 그 소원은 이룬 셈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왜 이렇게 쓸쓸해 보이죠?"

"후진국에서 태어나 음악하는 뮤지션의 고통이랄까…. 우리 시대의 뮤지션들은 다 그 고통을 겪었으니까…. 늘 엔지니어들과 의견 차이로 싸우고…. 엔지니어들은 나이가 더 많고 뮤지션들은 빨리빨리 새로운 음악을 흡수해서 욕구는 더 높고…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죠. 그래서 진짜 춥고 배고프게 공부했는데 그렇게 공부해서 들어왔더니 많은 젊은 엔지니어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왔더라고요. 그런데 이것들이 내가 말한 것이 뭘 의미하는지 다 알아요. 유학 괜히 간 것 같아.(웃음)"

 

옛날에는 연예인을 업신여기는 풍토였다

"음악 하시면서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후회요? 근본적인 후회는 없었던 거 같아요. 짜증은 있었어요. 내가 이 짓을 왜 했을까… 잠시 그런 적은 있었는데 진짜 내가 왜 했을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오히려 후회나 그런 것이 닥치면 거꾸로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아요. 밴드 하려고 음악 했는데 밴드 할 환경이 안되면 음악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기회를 보자, 이래서 소위 인기가수가 되었잖아요. 인기가수가 되어서 방송국에 가보니까 엿 같더라고요.."

"어떤 점이요?"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를 안해요. 특히나 신인가수 나부랭이한테는. 신인가수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피디나 스탭들이 연예인을 굉장히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풍토였어요. '내가 왜 이걸 시작해서 이 꼴로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내 끝까지 살아남아서 저 사람들 무릎 꿇는 모습을 보겠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었어요. 그런데 방송국에서 용필이 형이 지나가면 그 피디들이 다 설설 기더란 말이죠. 나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저렇게 될 거야! 그랬는데 물론 용필이 형 만큼은 아니지만 요새는 방송국 가면 국장님이 나와서 커피 타주고 그래요. 그런데 슬퍼요. 그래도 옛날이 더 좋았어요.(웃음)"

스타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

"신해철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니, 참으로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말씀을 하셨더군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신해철이라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요구에 다 응대할 만큼 신해철은 마음이 좋은 건가, 하고요"

"네. 난처한 문제예요. 성격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의무감 같은 것에 묶여있거든요. 기본적인 성격 자체가 손해볼지 뻔히 알면서 헬프를 치면 못 이기고 나가게 돼요.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온갖 군데에서 떠들고 있는 모습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 아시죠? 자기 음악을 하는 데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돼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신가요?"

"그렇기도 하고, 스타라는 것이 스스로 빛을 내지는 않거든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하고, 일시적인 건데… 단지 스타가 할 수 있는 일은 반사의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들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각도를 어느 쪽으로 반사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조절하는 것이죠. 가급적이면 자기가 빛을 반사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것을 소수계층에 대한 발언이라든가, 그런 것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좋고, 여러 가지로 해야 하잖아요. 그래도 자기 밥그릇에 대해서는 거의 발언 안 했어요. 음악계에 대해서는 많이 발언 안 하려고 했어요. 지난 번에 <백분 토론> 나간 것은 예외였지만요. 그때도 이동통신사에 대한 얘기할 때는 빠졌어요. 살면서 나불나불하게 되네요.(웃음)"

"뮤지션들은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신해철 씨는 참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간극 때문에 무척 고독하시지 않을까 상상해봤어요."

"인간이야 다 외롭고 고독하겠죠.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대가족으로 살아서 고모, 삼촌 아홉 명이랑 살았어요 우리집에서 최고의 죄는 냉장고에 있는 콜라를 마지막 바닥이 보일 때까지 마시는 거였어요. 입에 뭐 한 모금 들어갈 때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았죠. 그러니까 밴드로 음악을 하는 것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회사를 하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여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딴따라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도록 블록 지은 곳도 분명 있구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투적으로 반발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을 유일하게 들락거리는 사람이 아내와 엄마, 두 명 정도랄까? 거기를 들락거릴 수 있었기 때문에 제 아내가 된 것일 테고. 그렇죠 뭐… . 인생살이 다 쓸쓸한 거죠."

이제는 더 이상 정치 참여하는 의리 남아 있지 않다

"지난 대선 때 선거 운동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필요성을 또 느끼신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더 이상 필요성을 느낄 것 같지 않은데요? 그것만으로도 제 인생은 충분히 망가졌고, 더 이상 망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에는 개인적으로 제가 나서지 않는 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느냐 안 미치느냐를 떠나서 나 자신의 정체성이 크게 문제가 되는 시점이었어요. 제가 87학번인데 그때는 발레 하던 애도 돌 던지고, 체육과 학생들도 데모하러 나오고 그런 시절이었잖아요. 386의 끝자락이었고 6·10 항쟁은 미완성으로 끝났고….

신해철이 좌파나 우파냐를 떠나서 그 당시에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는 좌파가 좌파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던 자유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리는 늘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지도 모르고… 노무현은 제게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이회창이 집권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바뀌고 있는 부분도 있고 그만큼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타락해가는 속도도 빠르고… . 정치판이 이판사판인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대선 때에는 386의 막내 순번으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의리가 남아있었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부터는 제게 그런 의리가 남아있지 않아요. 제가 더 이상 움직일 이유도 없는 거고. 가뜩이나 '저 새끼 정치할 거다'라는 소리 듣고 있는데 이 정도로 의심받는 것으로 충분히 짜증나요. 그래서 그 얘기 한다니깐요 나 아침에 못 일어난다고,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요."


"하시면 잘할 거 같은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치가들은 어느 정도 권모술수를 굴릴 수 있어야 하고 그것도 능력이라고 보거든요.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스트레이트해요. 될 리가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시작한 음악인데 정치를 하기 위해 음악을 포기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내기 정치한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도 뇌졸중으로 쓰러지실 걸요."

"이승환 씨는 얼마 전 더 이상 CD로 음반을 내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세상에 CD를 구입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있을 때까지 CD를 낼 거예요. 그리고 CD라기보다는 앨범이라는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데… 저는 CD가 사라진다는 위협보다는 앨범이 사라진다는 위협에 더 의미를 두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싱글로 가볍게 한 곡씩 툭툭 내는 것도 즐겁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넥스트가 해야 할 일은 앨범 전체로 평가받는 앨범의 음악을 만드는 겁니다. 마지막 CD를 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보고 음악을 만들어야죠."

"음악이라는 것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 그릇에 무엇을 담고 싶으세요? 물론 그릇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옛날에는 그 그릇 안에 우리나라 현재 가요계가 아직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고 싶었어요. 너무 앞서가는 것도 아니고 현재 나와있는 것도 아닌 반 발짝씩 앞서가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까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그릇 자체가 이상하단 말이에요. 내용을 아무리 열심히 담아도 그릇 때문에 안 돼요. 그릇 만드는 기술을 배우러 떠난 거죠. 지금은 그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어져 버렸어요. 옛날에는 음악을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했고 절벽에 서 있는 심정으로 음악을 했는데 요즘에는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살고 밥 먹고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뭔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담아내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다행이고, 싫다고 하면 말라고 하고, 뭐 이렇게 변했죠. 그러다 보니 이 앨범도 나온 거고요. 내가 결혼했다고 마누라랑 세탁기 광고에 같이 나가고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가정생활을 하고, 내 인생의 일정 부분 그것이 중요한 게 사실인데, 저는 제 가족이 매스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철저히 기피하잖아요. 하지만 제 팬들은 제가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할 테고…. 그들에게는 결혼식장에 카메라가 들어오게 하고 내 집에 카메라가 들어와서 보여주는 방법이 아니라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저 행복하게 살아요'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평소 여가 생활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거의 없어요. 여가라면 몽땅 다 여가겠죠? 음악 하는 게 일이니까…. 음악이 일이 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거든요. 회사를 만든 다음부터는 서류 결제서부터 업무 지시, 그런 것이 정말로 일이더라고요. 냉정한 부분이고….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잔인해졌어요. 옛날 같은 경우에는 같이 일하는 매니저를 해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였거든요. 사람을 패고 들어와도 뒷일 책임지며 끝까지 가는 거였는데 회사를 만들고 나서는 모자란다 싶으면 가차없이 그날로 모가지 날려 버려요. 그러니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세계가 두 개가 있죠. 가정과 넥스트. 넥스트의 보컬로 들어갔을 때에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죠. 그것도 아주 웃겨요. 후배 애들이 음악 만들어오면 '너네 지금 떠야 되거든? 너 히트곡 몇 개야? 이런 식으로 해도 돼?' 이렇게 하고, 넥스트끼리 모였을 때는 '히트곡? 웃기고 있네. 십 분짜리 노래 네 개로 달려! 우린 그런 거 없어!'(웃음) 이중생활이에요."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하고 싶다

"싸이렌 엔터테인먼트는 왜 만드셨나요?"

"지금 얘기하면 너무 이른 감이 있는데…. 이 회사가 만일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한 뮤지션을 프로듀스해서 성공시킨다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저는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시스템에서 오고 있다고 보거든요. 방송과 매스미디어의 구조라든가, 공연장 인프라…. 우리나라 음악 전체 산업과 관련된 인프라의 문제. 이 모든 것이 통째로 뒤집어져야 하는데 그게 가만히 있다고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뒤집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에 괜찮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싹들이 밟혀버려요. 그런 시스템이 빨리 교체가 되도록 촉진을 하는 역할을 하고 그동안에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인큐베이팅해서 보호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이런 것이 신해철 개인의 차원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자본을 끌어들이고 매스미디어와 경쟁을 하고 이런 차원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대량의 뮤지션들을 인큐베이팅할 수 없더라고요. 나는 그런 목적으로 회사를 만들지만 자본가들은 이윤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인데, 그럼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윤을 만족시켜줘야 하고 뮤지션 집단에게는 자기들의 자아성취를 이뤄져야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 그 사람들의 밥줄을 만들어줘야 하고…. 아주 어려운 입장에 처한 거죠.

가만히 있기는 싫었어요. 공부를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영국, 미국 양쪽 시스템을 공부하고 들어왔는데 결론은 시스템의 문제더라고요. 별개의 얘기긴 한데 아무도 우리나라 대중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잖아요. 토양이 엿 같은데 여기서 무슨 열매가 열리기 바라요. 매스미디어의 문제, 뮤지션의 문제 등 이게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저는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대중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사실은 제일 중요한 문제일텐데….

기본적으로 국민성이 나쁘지는 않은데, 뒤틀려 있어서…. 그렇게 얘기하면 밑도 끝도 없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나라 음악계가 괜찮은 토양으로 자라나던 70년대 시절 박통이 대마초 사건으로 우리나라 음악계를 박살낸 것. 한 번 뒤틀린 풍토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90년대 보이던 변화는 디지털 시대가 개막되면서 한방에 날아가고…. 음악하는 사람들은 죽겠는 거죠. 될 만하면 뽀개지고….(한숨)"


"건강하셔야 계획하는 일을 다 하실 텐데요. 건강은 어떠세요?"

"건강은 나이 먹을수록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십 대가 약골이었고. 그 당시 넥스트 콘서트 할 때는 한 시간이 뭐야… 삼십 분 넘어가면 헐떡 댔어요. 지금은 세 시간이 넘어가도 대기실에서 신나게 뛰어다니잖아요. 나이 먹어가면서 운동하고 꾸준히 관리해서 그런지 건강은 점점 좋아져요."

"원래 타고난 몸이 좋으신 거 아닐까요?"

"제 나이 되면 점점 파워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오히려 폐활량은 늘어났어요. 이십 대 때에는 너무 막 살았던 거 같아요. 관리를 안 한 거야….(웃음)"
돌 맞을 각오로 쓰는 에필로그

에필로그 -

신해철이 만든 회사 싸이렌 엔터테인먼트에 있는 그의 방. 책이 참 많았다. SF마니아답게 영화 <반지의 제왕>이 개봉하기 전 출간되었던 『반지의 제왕』 세트를 포함하여, 지금은 절판된 수많은 SF소설들, 만화 『캔디 캔디』 애장본을 비롯한 만화. 한국사, 서양사, 미시사, 철학서, 사회과학서를 넘나드는 인문학 서적. 그리고 일명 빨간 표지로 유명한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음악에 가사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고, 작곡가이기도 하고, 대중들을 움직이는 웅변가이기도 하고, 밴드라는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이기도 하고, <고스트네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필두로 세력화하고 있는 '교주'이자 '마왕'이기도 하고. 이제는 음악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고자 음악 산업 시스템 자체를 만들고자 하는 설계자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이토록 대단한 '그'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질문 질문 하나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지, 어쩌면 그렇게 풍부한 비유와 예시를 곁들인 화법으로 대화 내용 자체를 격상하는지,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 그의 말마따나 자신감과 자기 확신 없이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을 텐데, 그가 이뤘고 앞으로 이룰 업적과 성취를 논하기 이전에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멋진 남자이며,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진심으로.


사진 출처 : http://raysoda.com/boa
인터뷰 출처 : YES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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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ebsquare.tistory.com BlogIcon 호호수지니 2007.12.27 10:34 신고

    헉..길다;;; 신해철을 알게된게.. 아마도 아기천사 라는 앨범을 구입하면서..
    거기에 실린 음악 몇곡을 무한궤도에 신해철이 참여했는지.. 리메이크를 했는지..
    알게되면서 였던;;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기천사가 뜨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었던..^^

  2. 안녕하세요. 수진님...^^
    아기천사의 땜방으로 신해철씨가 참여하면서 불렀던 곡이
    '슬픈 표정 하지말아요'로 기억됩니다...
    재밌는 사실은 무한궤도와 015B와의 관계이기도 하지요.
    무=0 , 한=1 , 궤도 = OB(5B) 라는 해석이 됩니다.
    즉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다른 팀이란 해석이죠...^^

  3. Favicon of http://wenley.tistory.com BlogIcon 웬리 2008.02.19 15:29 신고

    트랙백 보고 왔습니다. 저의 경우 마왕빠도리 라고 불러도 전혀 기분나쁘지 않은 사람중 하나 인데요. 확실히! 괜찮은 뮤지션 같습니다. 근데 이젠 좀 앨범좀 -_-;;; 내줬으면 하는데용..

    • 반갑습니다...wenley님...^^
      저도 예전에는 정말 무척 좋아했던 뮤지션이고 음악에 도전 하려고 했을 때 도움을 많이 얻기도 했습니다.
      물론 해철님은 절 모르시지만 말이죠...

      재즈 앨범은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좋다는 의견보다 나쁘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 같더라구요..허허

      때가 되면 발표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일때가 많으니까 조금 기다려 보죠..

  4. Favicon of http://zepp.tistory.com BlogIcon rock사랑 2008.02.23 14:21 신고

    스스로 하고싶은 음악 한다는데야 누가 말리겠습니까마는...
    솔직히 재즈는 오버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요롹페2004년...
    모노피스님과 같은 자리에 있었군요...^^;;
    집이 의정부다 보니 소요롹페는 1회부터 빠짐없이 갔었습니다...

    3년전부터 중국에 있는지라 이제 좋은 공연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렸습니다...ㅡㅜ

    • 2006년에 저도 의정부 근처...지금 방학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작년에는 언제하는지도 모르게 동두천락페스티발이 진행되어서 아쉬움이 남네요.

      중국에는 일때문에 들어 가셨나요? 아니면 아예 한국을
      떠나셨는지요? 아무튼 집떠나면 고생이라는데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신해철에 대한 명상

2007.12.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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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동두천





































신해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가 필요하다.

그는 나의 신이었고, 위대한 음악의 전도사였으며, 꿈을 꾸게 해 준 장본인이었기에...

그를 10년만에 만났던 2004년 동두천락페스티벌의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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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동두천. 그도 나이를 먹더라...간주 부분의 힘들어 하는 모습

 










































그는 열심히 노래했지만 체력과의 싸움이 시작된 듯 보였다.

몇 곡 부르지 않았지만 숨을 헐떡이는 그를 보았고, 그는 내내 내 카메라를 교묘하게 따돌렸다.

아쉽게도...그의 사진은 에러가 난 하드디스크에서 잠들어 있다...

 

신해철 재즈앨범과 관련된 인터뷰 (YES24 진행)

 

당신은 신해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 그 이상의 의미라는 점이다. 가수 유니의 죽음으로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디지털 음원 시장의 확대가 음악시장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을 때 그의 발언 하나 하나는 사회 전체로 파장되는 힘을 지니며 다가온다. 모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안면인식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 고백 아닌 고백은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될 만큼 신해철은 어느덧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어쩌면 이는 그가 몸담고 사는 사회에 대하여 많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또 하나. 어떤 문제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고민에 대한 답을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구사할 수 있는 그의 지적 능력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해철이라는 사람의 핵심은 역시 음악. 그가 돈과 시간을 들이고, 사람들을 모아 일을 도모하고, 자아 실현을 이루는 무대이자 장이 바로 음악이다. 마치 부정과 부정의 연속이었던 서양철학사의 한 장면을 재현하듯 1990년대 최고의 록밴드 넥스트를 해체한 후 "레코딩 테크놀러지"를 배우고 실험하여 두문불출하던 십 년. 그는 그 십 년을 딛고 최근 통산 25번째 앨범이자 솔로 앨범인 『The Songs For The One』을 발표했다. 컴퓨터에 의한 편집과 짜깁기가 창작의 주요 방법이 되다시피 한 현 가요계에서 초호화진용의 28인조 빅밴드와 보컬을 한 번에 동시 녹음하는 초강수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앨범이다.

넥스트가 아닌 신해철의 앨범 『The Songs For The One』

"이번에 나온 앨범이 상당히 로맨틱하고 부드럽습니다. 넥스트의 실험정신 가득한 음악을 좋아하던 기존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음악을 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음악을 하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죠. 사람들 요구에 따라가자면 끝이 없어요. 대중들이 요구하는 것과 너무 동떨어지는 것을 해도 음악을 못하겠지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통산 레코드 판매량이 육칠백만 정도인데, 앨범 세 장 내고 육백만 장 파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앨범은 지금도 팔리거든요. 꾸준히 지속적으로 활동을 한 셈인데, 순간 순간 사람들이 지금쯤이면 이런 것을 기대할거야… 그런 것들이 안 읽히는 것은 아니에요.

음악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려야 할 때에는 그 기대에 부응해서 음악을 하죠. 하지만 사람이 어느 정도 먹었으면 배가 불러야지, 배 터질 때까지 욕심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러려면 상업적 욕심보다는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맞겠죠.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도 듣는 사람은 편안하게 들을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은 편하게 만든 것은 아니거든요. 만드는 과정도 어떻게 보면 넥스트가 했던 작업에 비해 고난이도가 많았어요. 사람들은 왜 '넥스트 6집 왜 안 나오느냐, 나와서 왜 시원하게 안 때려부수느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번에 이걸 해야겠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뭐 그런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죠."


"앨범 재킷의 'Thanks to'에서 직접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아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많이 어필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점을 굳이 드러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음악이라는 것이 삶의 반영이니까…. 나와 우리 집사람이 꽤나 로맨틱하게 살고 있다는 삶의 증거랄까? 순서가 거꾸로인 것 같아요. 그러려고 만든 것은 아니고, 그렇게 지내니까 이런 음악이 나온 것이 아닐까. 아마 제가 독신으로 살고 있거나 그랬으면 이런 게 안 나왔겠죠?"

"결혼 생활이 음악에 끼친 영향이 있나요?"

"글쎄요…. 음악 자체에 크게 영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내 삶이 결혼을 함으로써 변하는 부분이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넥스트가 결혼을 하든, 돈이 있든 없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거라면, 변화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이겠죠. 넥스트에서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My Way', 'Moon River' 등 익숙한 곡들 위주로 편성되었습니다. 곡 선정은 어떻게 하셨나요?"

"무난하고 쉽고 즐거운… 그런 느낌들? 그런 것에 충실했고 미주알고주알 따지지 않았어요. 내가 불러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좀 더 집중했습니다. 제가 자기 전에 코냑 한 잔 마시고 자는 습관이 있는데 그때 내가 무엇을 들었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쓰임새가 되었으면 해서 만든 거예요. 밤에 집에 들어와서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놓고 술잔 하나 들고 있을 때 듣든지, 와이프와 창 밖 바라보며 춤출 때 듣든지, 자기 전에 듣든지… 그런 용도로 만든 거라 삶의 치열한 고민을 통해 나온 것은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이번 앨범은 특이하게 보컬만 하셨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해철은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하니까. 음악하는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겠지만 일단 제가 그렇거든요. 밴드 팀원과 역할 분담할 때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보컬을 맡게 되었고, 음악을 하는 형식적인 방법이 내가 직접 보컬을 하는 거였기 때문에…. 음악하는 사람 중에서 보컬 파트에 저만큼 애착이 없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넥스트에서 노래할 때는 초긴장 모드에서 하는 거의 개노동인데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가라오케에서 노래 부를 때는 엔터테인먼트잖아요. 나한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작의 부담은 덜어내고 내게 휴식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휴식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이번에 노래할 때 기분 좋더라고요. 선천적인 내 목소리는 이런 거구나, 라고 새삼 알기도 했고요. 그런대 한 샷 녹음으로 가야 하니까 그게 좀 머리 아팠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면에서는 이 앨범이 공격적이에요. 듣는 사람은 편하게 듣지만 국내 풍토에서 빅밴드 어레인지먼트에 도전하고, 70년에 이후에 거의 폐기되다시피한 한 방 원샷에 도전하고 이런 것이 어떻게 보면 이 악물고 한 거였거든요. 요즘 나오는 조립식 음악에 대해서 느끼는 짜증과 반감의 표현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보면 신해철의 공격성이 완전히 없어진 앨범은 아니에요."


이번 앨범은 조립식 음악에 대한 반감의 표현

"그 공격성이 에둘러서 표현된 거네요."

"요즘은 음반 시장이 침체되니까, 음악 편성 자체가 위축되고 축소되잖아요. 그래서 지난 번 넥스트 5.5집에서는 70인조 오케스트라가 들어가고 이번에는 28인조 빅밴드 스윙 오케스트라가 들어가고 돈을 쳐바른 건데… 어디서 돈이 났느냐는 미스터리로 남겨두기로 하고(웃음) 그런 면에서 반발 모드예요. 원샷으로 가야 한다고 편집증적으로 녹음한 것도 그렇고."

"원 샷 녹음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작비 때문에?"

"그게 기본적으로 재즈라고 생각하니까요. 재즈라는 장르 자체가 노래를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법도 없고, 또 재즈라는 음악 자체를 이렇게 해야 한다는 법도 없으니까. 내 맘대로 꼴리는 대로 하면 그만인데, 그래도 뭔가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를 표현하지 못하면 그것은 재즈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한 방에 거의 라이브 테이크 잡듯이 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결정이 났고 또 제가 딴 맘 못 먹게 박권일 프로듀서라고 다른 프로듀서에게 맡겨서요. 곳간 키를 넘겨주었으니…. 사실 녹음 끝나고 몇 개는 2절만 다시 불러보자고 빌었다니까요. 뻰찌 먹었잖아요.(웃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

"이번 작업 하면서 배운 게 있었나요?"

호주에서의 녹음 현장

"제가 레코딩 테크놀러지 배우려고 영국에 갔었죠. 저는 특화된 걸 공부한 거예요. 록 쪽 레코딩하는 방법을 주로 공부했거든요. 재즈 쪽은 녹음할 때 마이크를 어떻게 설치하는지, 어떻게 녹음을 하는지 그런 것은 잘 몰랐는데 가서 보니까 마이크 몇 개 설치 안 하더라고요. 너무나 허무하게…(웃음) 연주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볼륨 조절 다 하고, 그런 것을 보면서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우리나라에서 녹음하면 반주 녹음이 다 끝난 상태에서 MR을 들으면서 노래를 넣는 형태인데, 이번 같은 경우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에 연주자들과 내가 눈이 마주치잖아요. 내가 노래가 빨라진다거나 느려질 때 연주자들을 보는데, 연주자들이 너무나도 여유가 넘치는 거예요. 악보도 안 보고 제 얼굴을 보고, 제 노래 스타일 들어보면서 맞춰주더라고요. 그런 교감이 가능한 거죠. 그리고 2007년 지금에 와서는 이것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레코딩 테크놀러지인 셈이죠. 지금 시대에는."


"타이틀 곡을 장미로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Thank you and I love you'가 좋았습니다. 특히 가사가 좋았는데요.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쑥스러워서요. 간지럽더라고요. 내가 만든 노래 중에 제일 닭살인 거 같아요. 부르면서도 닭살이 돋아서 방송에 나가서 부르는 것은 무안하고 창피해서 못하겠다 했죠.(웃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는 장난기가 느껴질 만큼 낯간지러웠는데, 그 노래를 포함시킨 이유가 궁금합니다."

"장난기예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는 마지막까지 넣을까 말까 언쟁이 있었던 곡인데… 왜냐하면 노래 제목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지만 가사는 지극히 마초적이에요. 그런 것이 좀 언짢아서…. 가사를 듣다 보면 짜증이 확 나요.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 이 부분에서는 '이것은 아내에게 바치는 것을 가장한 마초의 잘난 척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당시는 그런 시대였고, 또 이 노래 말고 우리나라에서 와이프를 대상으로 한 노래가 트로트 말고는 없어요. 거의 유일한 곡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가, 하수영 씨가 저음 가수였잖아요. 우리나라에 저음 가수가 거의 전무해요. 그 이유 때문에 노래 제목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니까 넘어가자… 해서 넘어갔죠. 저도 선곡하면서 다시 느낀 건데… 정말 마초적이더라구요. 불쾌할 정도로."


실패하는 과정에서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1월 29일을 발매 예정일로 잡으셨는데 일부 팬들은 '정말 그때 나올까? 하고 믿지 않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한 번도 제 날짜에 앨범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일 텐데, 왜 그렇게 매번 앨범 작업에 시간을 끄셨나요? 완벽한 사운드에 대한 고집 때문에?"

"사운드에 대한 고집도 고집이지만 장기 녹음에 들어가면 중간에 팀원들이 나가떨어졌다가 다시 단합해서 목표로 다가갔다가 신이 나서 녹음을 했다가 또 페이스가 쳐졌다가 그런 것을 반복해요. 수십 번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앨범 나오기 직전에는 모두들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까지 가거든요. 잘못하면 그런 것은 팀 해산 요인까지 되어버려요. 상업적인 결과로 보면 항상 단기전이 좋았어요. 이주일 만에 만든 앨범, 이런 것이 항상 앨범 판매고가 높았고구요. 지금도 제 주위 친구들은 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냥 앨범 마감일까지 아무것고 안 하고 놀다가 딱 일주일 전에 시작해서 일주일 만에 끝내고 더 이상 손대지 말라고요. 그런데 패턴으로 보면 후반기로 오면 올수록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죠.(웃음)."

"작업 스타일이 어떠시기에 그런 거예요? 기한 없는 프로젝트인 건가요?"

"기한도 없고… 사실 딱 십 년이 되었네요. 넥스트가 해산한 지. 나머지 십 년 동안은 음악을 위해서 레코드 테크놀로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고, 레코딩 테크놀로지를 배워가면서 그걸 실험하기 위한 곡들을 만든 십 년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당연히 대중들 입장에서는 점점 듣기가 힘들어지죠. 어떤 곡들은 좁쌀 하나 하나 색칠해서 63빌딩만한 그림을 만든다, 라는 식의 작업이여서 공동작업자들이 정신병원에 가는 것이 낫지, 이런 작업을 어떻게 하냐… 그런 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했으니까. 이제 한 시즌 끝났다고 생각하고 쉬어가면서 이번 앨범 하나가 나온 건데… 어떻게 보면 십 년 동안 제가 공부한 것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뜻이기도 해요. 한 방으로 가, 편안하게 가고…. 다음 넥스트 앨범도 아마 원 샷, 원 테이크 녹음으로 갈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요?"

"기본이 가장 중요한 거라는 것을 실패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같아요. 결론이 안 나면 끝까지 파는 건데, 결론이 나올 때까지 공부를 했어요. 내가 레코딩 엔지니어로 다른 사람의 앨범을 믹싱할 수 있고 레코딩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공부했으니까. 거기까지 가고 나니까 결론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곡이 좋아야 하고. 멜로디 좋아야 하고,. 가사 좋아야 하고, 노래 잘해야 하고… 드럼 베이스 연주 잘하면 되는 거지, 그거 이상, 그 이하 방법이 없다, 잘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라는 거예요."

죽어도 베드로는 못 되는 성격

사실 그것을 십 년 전에도 몰랐던 것은 아니에요. 기필코 직접 확인해 봐야 하는 거죠. 성질 머리상. 저는 '나 믿고 따라와라' 하면 '네!' 하고 따라가는 베드로는 죽어도 못 되는 거예요. 예수가 부활해서 눈앞에 나타났는데 직접 손으로 확인해보고 믿는 도마(Thomas) 정도는 될지 몰라도요. 곡 좋아야 하고, 연주 좋아야 하고… 그런 것이 맞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외국 음악 들어보면 뭐가 휙 하는 소리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알아야겠고 양놈들은 드럼소리 팡 하면 저기까지 들리는데… 그런데 왜 목소리 안 먹어 들어가지? 그것도 알아야겠고, 미치겠는 거예요.

공부해 보니까 양놈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더라고요. 진짜 뮤지션들은 음악 즐겁게 하고 평소 생활도 즐겁게 하고 음악 즐겁게 만들면, 내가 궁금해하던 소리가 뒤에서 날아오고, 그런 것들을 프로듀서가 담당하는 체제인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프로듀서 체제가 아니니까, 내가 직접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잖아요. 제가 프로듀스해주는 후배 밴드들에게 '너네는 좋은 멜로디와 가사만 만들어, 나머지는 내가 다 해줄게' 그래요. 기껏 죽어라고 공부해서 남 좋은 일 해주고 있지요. 내 후배들은 덕 많이 보는데 저는 사실 공부한 덕 많이 못 보고 있어요. 손해만 좀 봤지요.(웃음)"


"배워서 남 주고 계시니까 공부 잘한 거 아니에요?"

"특히 락 프로듀서는요, 외국 같은 경우는 사운드 믹스까지 끝내는 것이 프로듀스의 일이거든요. '이렇게 만들어 저렇게 만들어 그렇게 지시해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사운드 디자인 개념을 머릿속에 갖추고 마지막 기계를 만지는 과정까지 프로듀서가 하는 일인데 우리나라에는 그게 없으니까 그걸 해주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어요. 그 소원은 이룬 셈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왜 이렇게 쓸쓸해 보이죠?"

"후진국에서 태어나 음악하는 뮤지션의 고통이랄까…. 우리 시대의 뮤지션들은 다 그 고통을 겪었으니까…. 늘 엔지니어들과 의견 차이로 싸우고…. 엔지니어들은 나이가 더 많고 뮤지션들은 빨리빨리 새로운 음악을 흡수해서 욕구는 더 높고…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죠. 그래서 진짜 춥고 배고프게 공부했는데 그렇게 공부해서 들어왔더니 많은 젊은 엔지니어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왔더라고요. 그런데 이것들이 내가 말한 것이 뭘 의미하는지 다 알아요. 유학 괜히 간 것 같아.(웃음)"

 

옛날에는 연예인을 업신여기는 풍토였다

"음악 하시면서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후회요? 근본적인 후회는 없었던 거 같아요. 짜증은 있었어요. 내가 이 짓을 왜 했을까… 잠시 그런 적은 있었는데 진짜 내가 왜 했을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오히려 후회나 그런 것이 닥치면 거꾸로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아요. 밴드 하려고 음악 했는데 밴드 할 환경이 안되면 음악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기회를 보자, 이래서 소위 인기가수가 되었잖아요. 인기가수가 되어서 방송국에 가보니까 엿 같더라고요.."

"어떤 점이요?"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를 안해요. 특히나 신인가수 나부랭이한테는. 신인가수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피디나 스탭들이 연예인을 굉장히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풍토였어요. '내가 왜 이걸 시작해서 이 꼴로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내 끝까지 살아남아서 저 사람들 무릎 꿇는 모습을 보겠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었어요. 그런데 방송국에서 용필이 형이 지나가면 그 피디들이 다 설설 기더란 말이죠. 나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저렇게 될 거야! 그랬는데 물론 용필이 형 만큼은 아니지만 요새는 방송국 가면 국장님이 나와서 커피 타주고 그래요. 그런데 슬퍼요. 그래도 옛날이 더 좋았어요.(웃음)"

스타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

"신해철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니, 참으로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말씀을 하셨더군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신해철이라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요구에 다 응대할 만큼 신해철은 마음이 좋은 건가, 하고요"

"네. 난처한 문제예요. 성격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의무감 같은 것에 묶여있거든요. 기본적인 성격 자체가 손해볼지 뻔히 알면서 헬프를 치면 못 이기고 나가게 돼요.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온갖 군데에서 떠들고 있는 모습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 아시죠? 자기 음악을 하는 데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돼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신가요?"

"그렇기도 하고, 스타라는 것이 스스로 빛을 내지는 않거든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하고, 일시적인 건데… 단지 스타가 할 수 있는 일은 반사의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들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각도를 어느 쪽으로 반사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조절하는 것이죠. 가급적이면 자기가 빛을 반사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것을 소수계층에 대한 발언이라든가, 그런 것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좋고, 여러 가지로 해야 하잖아요. 그래도 자기 밥그릇에 대해서는 거의 발언 안 했어요. 음악계에 대해서는 많이 발언 안 하려고 했어요. 지난 번에 <백분 토론> 나간 것은 예외였지만요. 그때도 이동통신사에 대한 얘기할 때는 빠졌어요. 살면서 나불나불하게 되네요.(웃음)"

"뮤지션들은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신해철 씨는 참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간극 때문에 무척 고독하시지 않을까 상상해봤어요."

"인간이야 다 외롭고 고독하겠죠.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대가족으로 살아서 고모, 삼촌 아홉 명이랑 살았어요 우리집에서 최고의 죄는 냉장고에 있는 콜라를 마지막 바닥이 보일 때까지 마시는 거였어요. 입에 뭐 한 모금 들어갈 때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았죠. 그러니까 밴드로 음악을 하는 것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회사를 하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여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딴따라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도록 블록 지은 곳도 분명 있구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투적으로 반발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을 유일하게 들락거리는 사람이 아내와 엄마, 두 명 정도랄까? 거기를 들락거릴 수 있었기 때문에 제 아내가 된 것일 테고. 그렇죠 뭐… . 인생살이 다 쓸쓸한 거죠."

이제는 더 이상 정치 참여하는 의리 남아 있지 않다

"지난 대선 때 선거 운동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필요성을 또 느끼신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더 이상 필요성을 느낄 것 같지 않은데요? 그것만으로도 제 인생은 충분히 망가졌고, 더 이상 망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에는 개인적으로 제가 나서지 않는 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느냐 안 미치느냐를 떠나서 나 자신의 정체성이 크게 문제가 되는 시점이었어요. 제가 87학번인데 그때는 발레 하던 애도 돌 던지고, 체육과 학생들도 데모하러 나오고 그런 시절이었잖아요. 386의 끝자락이었고 6·10 항쟁은 미완성으로 끝났고….

신해철이 좌파나 우파냐를 떠나서 그 당시에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는 좌파가 좌파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던 자유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리는 늘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지도 모르고… 노무현은 제게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이회창이 집권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바뀌고 있는 부분도 있고 그만큼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타락해가는 속도도 빠르고… . 정치판이 이판사판인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대선 때에는 386의 막내 순번으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의리가 남아있었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부터는 제게 그런 의리가 남아있지 않아요. 제가 더 이상 움직일 이유도 없는 거고. 가뜩이나 '저 새끼 정치할 거다'라는 소리 듣고 있는데 이 정도로 의심받는 것으로 충분히 짜증나요. 그래서 그 얘기 한다니깐요 나 아침에 못 일어난다고,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요."


"하시면 잘할 거 같은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치가들은 어느 정도 권모술수를 굴릴 수 있어야 하고 그것도 능력이라고 보거든요.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스트레이트해요. 될 리가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시작한 음악인데 정치를 하기 위해 음악을 포기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내기 정치한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도 뇌졸중으로 쓰러지실 걸요."

"이승환 씨는 얼마 전 더 이상 CD로 음반을 내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세상에 CD를 구입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있을 때까지 CD를 낼 거예요. 그리고 CD라기보다는 앨범이라는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데… 저는 CD가 사라진다는 위협보다는 앨범이 사라진다는 위협에 더 의미를 두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싱글로 가볍게 한 곡씩 툭툭 내는 것도 즐겁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넥스트가 해야 할 일은 앨범 전체로 평가받는 앨범의 음악을 만드는 겁니다. 마지막 CD를 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보고 음악을 만들어야죠."

"음악이라는 것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 그릇에 무엇을 담고 싶으세요? 물론 그릇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옛날에는 그 그릇 안에 우리나라 현재 가요계가 아직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고 싶었어요. 너무 앞서가는 것도 아니고 현재 나와있는 것도 아닌 반 발짝씩 앞서가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까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그릇 자체가 이상하단 말이에요. 내용을 아무리 열심히 담아도 그릇 때문에 안 돼요. 그릇 만드는 기술을 배우러 떠난 거죠. 지금은 그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어져 버렸어요. 옛날에는 음악을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했고 절벽에 서 있는 심정으로 음악을 했는데 요즘에는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살고 밥 먹고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뭔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담아내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다행이고, 싫다고 하면 말라고 하고, 뭐 이렇게 변했죠. 그러다 보니 이 앨범도 나온 거고요. 내가 결혼했다고 마누라랑 세탁기 광고에 같이 나가고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가정생활을 하고, 내 인생의 일정 부분 그것이 중요한 게 사실인데, 저는 제 가족이 매스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철저히 기피하잖아요. 하지만 제 팬들은 제가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할 테고…. 그들에게는 결혼식장에 카메라가 들어오게 하고 내 집에 카메라가 들어와서 보여주는 방법이 아니라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저 행복하게 살아요'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평소 여가 생활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거의 없어요. 여가라면 몽땅 다 여가겠죠? 음악 하는 게 일이니까…. 음악이 일이 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거든요. 회사를 만든 다음부터는 서류 결제서부터 업무 지시, 그런 것이 정말로 일이더라고요. 냉정한 부분이고….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잔인해졌어요. 옛날 같은 경우에는 같이 일하는 매니저를 해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였거든요. 사람을 패고 들어와도 뒷일 책임지며 끝까지 가는 거였는데 회사를 만들고 나서는 모자란다 싶으면 가차없이 그날로 모가지 날려 버려요. 그러니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세계가 두 개가 있죠. 가정과 넥스트. 넥스트의 보컬로 들어갔을 때에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죠. 그것도 아주 웃겨요. 후배 애들이 음악 만들어오면 '너네 지금 떠야 되거든? 너 히트곡 몇 개야? 이런 식으로 해도 돼?' 이렇게 하고, 넥스트끼리 모였을 때는 '히트곡? 웃기고 있네. 십 분짜리 노래 네 개로 달려! 우린 그런 거 없어!'(웃음) 이중생활이에요."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하고 싶다

"싸이렌 엔터테인먼트는 왜 만드셨나요?"

"지금 얘기하면 너무 이른 감이 있는데…. 이 회사가 만일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한 뮤지션을 프로듀스해서 성공시킨다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저는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시스템에서 오고 있다고 보거든요. 방송과 매스미디어의 구조라든가, 공연장 인프라…. 우리나라 음악 전체 산업과 관련된 인프라의 문제. 이 모든 것이 통째로 뒤집어져야 하는데 그게 가만히 있다고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뒤집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에 괜찮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싹들이 밟혀버려요. 그런 시스템이 빨리 교체가 되도록 촉진을 하는 역할을 하고 그동안에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인큐베이팅해서 보호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이런 것이 신해철 개인의 차원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자본을 끌어들이고 매스미디어와 경쟁을 하고 이런 차원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대량의 뮤지션들을 인큐베이팅할 수 없더라고요. 나는 그런 목적으로 회사를 만들지만 자본가들은 이윤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인데, 그럼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윤을 만족시켜줘야 하고 뮤지션 집단에게는 자기들의 자아성취를 이뤄져야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 그 사람들의 밥줄을 만들어줘야 하고…. 아주 어려운 입장에 처한 거죠.

가만히 있기는 싫었어요. 공부를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영국, 미국 양쪽 시스템을 공부하고 들어왔는데 결론은 시스템의 문제더라고요. 별개의 얘기긴 한데 아무도 우리나라 대중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잖아요. 토양이 엿 같은데 여기서 무슨 열매가 열리기 바라요. 매스미디어의 문제, 뮤지션의 문제 등 이게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저는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대중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사실은 제일 중요한 문제일텐데….

기본적으로 국민성이 나쁘지는 않은데, 뒤틀려 있어서…. 그렇게 얘기하면 밑도 끝도 없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나라 음악계가 괜찮은 토양으로 자라나던 70년대 시절 박통이 대마초 사건으로 우리나라 음악계를 박살낸 것. 한 번 뒤틀린 풍토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90년대 보이던 변화는 디지털 시대가 개막되면서 한방에 날아가고…. 음악하는 사람들은 죽겠는 거죠. 될 만하면 뽀개지고….(한숨)"


"건강하셔야 계획하는 일을 다 하실 텐데요. 건강은 어떠세요?"

"건강은 나이 먹을수록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십 대가 약골이었고. 그 당시 넥스트 콘서트 할 때는 한 시간이 뭐야… 삼십 분 넘어가면 헐떡 댔어요. 지금은 세 시간이 넘어가도 대기실에서 신나게 뛰어다니잖아요. 나이 먹어가면서 운동하고 꾸준히 관리해서 그런지 건강은 점점 좋아져요."

"원래 타고난 몸이 좋으신 거 아닐까요?"

"제 나이 되면 점점 파워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오히려 폐활량은 늘어났어요. 이십 대 때에는 너무 막 살았던 거 같아요. 관리를 안 한 거야….(웃음)"
돌 맞을 각오로 쓰는 에필로그

에필로그 -

신해철이 만든 회사 싸이렌 엔터테인먼트에 있는 그의 방. 책이 참 많았다. SF마니아답게 영화 <반지의 제왕>이 개봉하기 전 출간되었던 『반지의 제왕』 세트를 포함하여, 지금은 절판된 수많은 SF소설들, 만화 『캔디 캔디』 애장본을 비롯한 만화. 한국사, 서양사, 미시사, 철학서, 사회과학서를 넘나드는 인문학 서적. 그리고 일명 빨간 표지로 유명한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음악에 가사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고, 작곡가이기도 하고, 대중들을 움직이는 웅변가이기도 하고, 밴드라는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이기도 하고, <고스트네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필두로 세력화하고 있는 '교주'이자 '마왕'이기도 하고. 이제는 음악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고자 음악 산업 시스템 자체를 만들고자 하는 설계자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이토록 대단한 '그'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질문 질문 하나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지, 어쩌면 그렇게 풍부한 비유와 예시를 곁들인 화법으로 대화 내용 자체를 격상하는지,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 그의 말마따나 자신감과 자기 확신 없이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을 텐데, 그가 이뤘고 앞으로 이룰 업적과 성취를 논하기 이전에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멋진 남자이며,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진심으로.


사진 출처 : http://raysoda.com/boa
인터뷰 출처 : YES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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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ebsquare.tistory.com BlogIcon 호호수지니 2007.12.27 10:34 신고

    헉..길다;;; 신해철을 알게된게.. 아마도 아기천사 라는 앨범을 구입하면서..
    거기에 실린 음악 몇곡을 무한궤도에 신해철이 참여했는지.. 리메이크를 했는지..
    알게되면서 였던;;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기천사가 뜨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었던..^^

  2. Favicon of http://monopiece.tistory.com BlogIcon monopiece 2007.12.27 16:08 신고

    안녕하세요. 수진님...^^
    아기천사의 땜방으로 신해철씨가 참여하면서 불렀던 곡이
    '슬픈 표정 하지말아요'로 기억됩니다...
    재밌는 사실은 무한궤도와 015B와의 관계이기도 하지요.
    무=0 , 한=1 , 궤도 = OB(5B) 라는 해석이 됩니다.
    즉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다른 팀이란 해석이죠...^^

  3. Favicon of http://wenley.tistory.com BlogIcon wenley 2008.02.19 15:29 신고

    트랙백 보고 왔습니다. 저의 경우 마왕빠도리 라고 불러도 전혀 기분나쁘지 않은 사람중 하나 인데요. 확실히! 괜찮은 뮤지션 같습니다. 근데 이젠 좀 앨범좀 -_-;;; 내줬으면 하는데용..

    • Favicon of http://monopiece.tistory.com BlogIcon 장대군 monopiece 2008.02.19 18:34 신고

      반갑습니다...wenley님...^^
      저도 예전에는 정말 무척 좋아했던 뮤지션이고 음악에 도전 하려고 했을 때 도움을 많이 얻기도 했습니다.
      물론 해철님은 절 모르시지만 말이죠...

      재즈 앨범은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좋다는 의견보다 나쁘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 같더라구요..허허

      때가 되면 발표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일때가 많으니까 조금 기다려 보죠..

  4. Favicon of http://zepp.tistory.com BlogIcon rock사랑 2008.02.23 14:21 신고

    스스로 하고싶은 음악 한다는데야 누가 말리겠습니까마는...
    솔직히 재즈는 오버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요롹페2004년...
    모노피스님과 같은 자리에 있었군요...^^;;
    집이 의정부다 보니 소요롹페는 1회부터 빠짐없이 갔었습니다...

    3년전부터 중국에 있는지라 이제 좋은 공연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렸습니다...ㅡㅜ

    • Favicon of http://monopiece.tistory.com BlogIcon 장대군 monopiece 2008.02.25 09:09 신고

      2006년에 저도 의정부 근처...지금 방학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작년에는 언제하는지도 모르게 동두천락페스티발이 진행되어서 아쉬움이 남네요.

      중국에는 일때문에 들어 가셨나요? 아니면 아예 한국을
      떠나셨는지요? 아무튼 집떠나면 고생이라는데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5. 그레이트 자원! 정보의 재산을 공유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난 그냥이 시작 내가 더 잘 알아가는거야! 건배, 좋은 일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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