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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Talk]/아름다운것들[Beuatyful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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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교 도서관에 붙어있는 "명문 30훈"

01.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Sleep now, you will be dreaming, Study now, you will be achieving your dream.

02.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다.
Today that you wasted is the tomorrow that a dying person wished to live.

03.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When you think you are slow, you are faster than ever.

04.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Don't postpone today's work to tomorrow.

05. 공부할 때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The pain of study is only for a moment,but the pain of not having studied is forever.

06.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In study, it's not the lack of time, but lack of effort.

07.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몰라도 성공은 성적순이다
Happiness is not proportional to the academic achievement, but sucess is.

08.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전부도 아닌 공부 하나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Study is not everything in life, but if you are unable to conquer study that's only a part of life, what can you be able to achieve in life?

09.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
You might as well enjoy the pain that you can not avoid.

10. 남보다 더 일찍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 성공을 맛 볼 수 있다.
To taste success, you shall be earlier and more diligent.

11.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에서 비롯된다.
Success doesn't come to anyone, but it comes to he self-controlled and the hard-working.

12. 시간은 멈추지 않고 간다.
The time never stops.

13. 지금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이 된다.
Saliva you drooled today will be tears falling tomorrow.

14. 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Study like a dog and play like a premier.

15. 최고를 추구하라. 최대한 노력하라. 그리고 최초에는 최고를 위한 최대의 노력을 위해 기도하라.
Pursue the top. The maximum endeavor.
And to the beginning for the effort of the maximum for a top intend.

16.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은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다.
A person who invest in tomorrow, is the person who is faithful to today.

17. 학벌이 돈이다.
The academic clique is money itself.

18. 오늘 보낸 하루는 내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Today never returns again tomorrow.

19.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At this moment, your enemies books keep flipping.

20.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No pains No gains.

21. 꿈이 바로 앞에 있는데 당신은 왜 팔을 뻗지 않는가.
Dream is just in front of you. Why not stretch your arm.

22. 눈이 감긴다면,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If you close your eyes to the present, the eyes for the future close as well.

23. 졸지 말고 자라.
Sleep instead of dozing.

24. 성적은 투자한 시간의 절대량에 비례한다.
Academic achievement is directly proportional to the absolute amount of time invested.

25. 가장 위대한 일은 남들이 자고 있을 때 이뤄진다.
Most great achievements happen while others are sleeping.

26. 지금 헛되이 보내는 이 시간이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겠는가.
Just before the examination, how desperate would you feel the time you are wasting now.

27. 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
Impossibility is the excuse made by the untried.

28. 노력의 대가는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The payoff of efforts never disappear without redemption.
If you don't walk today, you have to run tomorrow.

29.한 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 얼굴이 바뀐다.
One more hour of study, you will have a better husband.

30.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To lose your health is to lose all of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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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회사에 출근을 했다. 여행을 계획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미루고서..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하기 위해서 브라우저를 열었는데 구글이 바라보고 느낀 광복절의 메시지가 보였다. 심플했지만 무궁화가 늠름하게 보여진 느낌은 속이 깊은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태극문양도 이채로왔다. 굳이 국기가 펄럭이는 효과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심쿵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네이버, 다음, 네이트, 줌 등 국내 포털이 바라본 광복절을 한 번 찾아봤다. 포털은 광복절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먼저 아래는 네이버의 광복절 캐치프레이즈와 이미지를 캡쳐한 것. 로고 변화는 없고 국기를 든 여러 사람들이 신난? 즐거운 모습들을 형상화 했다. 14일 임시공휴일을 국민에게 선물하시고, 광복절 특사로 4대강 관련 기업과 기업 총수에게 선물을 안긴 사람들은 아마 이번 광복절이 큰 선물일게다. 모 그룹 총수가 풀려나서 전직원에게 선물까지 돌렸다고 하니 말이지. 그런데 광복절은 사실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 할 날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또, 네이버가 대한민국 기업이 아니었나? 



'광복 70주년을 축하합니다'라는 말의 뉘앙스가 불분명하다. 어찌되었건 가장 넓고, 크게 광복절을 축하하고 있다.  






다음이 바라본 광복 70주년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가장 아래 줌닷컴의 태극기 보다 분명 성의가 들어가 있는 국기의 모습이다. 광복절 이전에 제헌절, 현충일에도 국기 모양을 빼 들었던 포털들은 더이상 날?에 대한 의미보다는 국기에 대한 애착이 심한 듯 하다. 아무튼 다음은 광복절을 축하?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쩌면 구글보다 더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진게 네이트다. 이미 포털 경쟁에서 아주 극소수 서비스만 이용하고 있는 3위 업체이지만 광복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메시지로 만들었다. 국기(태극기)가 아닌 철조망으로 일본에서 해방된 날에 대한 의미보다는 한국전쟁으로 분단된 나라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 같다. 



분명 줌(ZUM.COM)에서는 광복절 70주년 보다 더 중요한게 임시공휴일임을 로고와 이미지로 알 수 있다. 태극기 모두가 표현되지 않은 국기의 모습도 그렇고, 광복절, 광복 70주년에 대한 텍스트가 사라졌다. 뭐 이용자도 별로 없고, 서비스도 많지 않고 하니 그냥 넘어가거나 언급하지 않는게 좋겠다. 



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누굴 비판하고 할 것 없이 평소 광복절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도 전혀 그렇지 않으니... 광복절의 의미를 알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광복과 관련해서 슬프거나 아픈 분들이 많다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는 하루다. 찬찬히 포털 뉴스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 광복절.. 축하만 하기엔 뭔가 2% 부족하구나.. 뭔가 더 알고 느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에게도 한 마디 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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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성공하는데 있어서 사업과 물품을 거래하고 마케팅하는 회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수익을 우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핵심가치는 수익만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기업의 물품과 사업에 대한 애착을 느끼는 소비자(사용자)가 많아지는게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것까지 기업의 배려가 느껴져야 한다.



이 포스트에선 글로벌 기업인 APPLE, BMW, MOLESKINE 의 작은 감동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해 본다.


APPLE의 제품들은 디자인에 목숨을 걸었다. 작은 마감 하나하나가 감동적이다. 재질역시 쉽게 변질하거나 상하지 않도록 강한 재질이면서 제품군들 역시 사용자가 원하는 제품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어떤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최고의 제품을 선보이려 하는 것은 ‘스티브 잡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대목 아니겠는가?

애플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앱(App)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필자 역시 애플의 제품을 잘 몰랐지만 아이폰과 맥북을 통해서 신세계를 경험하면서 APPLE의 철학과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애플의 기업가치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명품들의 가치가 바로 그 제품에서 나온다는것이 인상적이고 무척 동감하고 있다. 맥북의 파워 연결선이 왜 자석형태로 만들어 졌지? 라는 물음 하나만 언급하면 답이 나온다.

애플의 제품을 가진다, 갖고 있다는 것은 자부심과 그 기업의 가치를 제품의 사용자가 진정으로 느끼는 감동의 하나가 아닐까?


BMW 의 마케팅을 들여다 보면 필요한 마케팅을 신속하게 적용한다. 2012년에는 APPLE의 매장에 배치된 지니어스(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해 주는 전문가를 지칭함)와 같은 자동차 전문가를 BMW매장에 배치하여 차량 구입을 하려는 고객에게 전문적인 제품 설명과 상담을 하고 있다. 

BMW의 자동차 타이어의 휠은 자동차를 주행하면 주행할수록 검게 변한다. 왜 휠이 검게 변할까? 명차에 어긋나는 자동차 기술이 아닐까? BMW 뿐만 아니라 모든 자동차의 대부분은 브레이크를 밟으면 라이닝이 갈려서 분진이 생기는데, 그 가루가 공기 중으로 날리는 것을 BMW는 바퀴의 휠이 잡아 낸다고 한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 생기는 분진이 공기 중에 섞이면 환경 오염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MOLESKINE 의 비밀은 무엇일까? MOLESKINE 의 마케팅은 전설로 기억되고, 전설로 남을듯 하다.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같은 예술가들이 애용했던 MOLESKINE의 노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저가 제품들의 공격과 디지털화 된 현대사회와 맞물려 사라지고 만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 이탈리아의 두 사업가가 몰스킨의 마케팅 전략을 통해 MOLESKINED의 수첩을 부활시키고,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한다.

MOLESKINE의 제품은 특별함을 제공한다. 가격도 특별하다. 별로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제품들이 고가를 형성하고 있다. 쓸만해 보이는 노트가 2만원대이고, 몇천 원 같은 볼펜하나가 2만원을 넘나든다. 제품을 직접 뜯어보고 사용해보면 이런 평가는 한 번에 해소가 된다. 간단한 이치다. 대충 만든 제품이 없고, 그 상품의 가치가 고객의 마음을 당기고 구매로 이끈다.

몰스킨의 기본은 평범해 보이는 천에 기름을 먹이고(방수효과) 커버를 씌운 정도다. 심플하고 실용적이다. 이런 특별하지 않은 노트를 사람들은 왜 사랑할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3가지 마케팅 장점이 있어서다. 

1. 창조적 계층이라는 새로운 소비자 그룹의 등장을 반기고 그들을 타겟화 하여 제품을 개발
2. 모든 고객은 경험을 구매한다. 경험이란 것은 앞서 언급한 상품의 가치와 편의성의 경험이다.
3. MOLESKINE의 노트와 수첩은 ‘수첩이 아니다. 아직 글자가 쓰이지 않은 책(Unwritten book)이라는 마케팅을 성공시켰다.

아주 간단한 사례들이지만 기업의 가치는 원대한 목적을 어떻게 추구하여 의식적으로 고객에게 전달하고 경험하게 하느냐에 달린게 분명하다. 이를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처럼 아주 냉철하게 판단하여 능숙하다면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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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관련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던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제1의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난 과연 그렇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종종하곤 하지만 아직 그렇다라고 대답하기엔 이른듯 하다. 회사일도 가사일도 바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족간의 신뢰문제겠지.

 

딸 아이가 엄마를 더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질투할 필요도 없지만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직장과 집이 멀어서 조금만 시간외 근무를 하면 딸 아이는 잠들어 있기 일수고 아내도 피곤해 한다. 누굴 원망할 필요도 없고, 자책할 필요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직장과 나, 나와 가족을 위해 개선해야 될 문제는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 직장이 불편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답한다. 직장과 집의 거리, 연봉, 사람, 복지, 미래와 비전 중 2가지 이상 만족하면 그냥 회사를 다니라고 조언했다. 정답은 아니겠지만 현실적인 문제(경제적 여건)을 비롯해서 가정의 행복도 우선되어야 한다.

누구나 한 번 생각해 보는 이 놈의 직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아마도 높은 확률로 현재의 위치나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어제 KBS에서 방영했던 교황의 방문과 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는 큰 영감을 줬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교황님의 방한을 통해서 삶이 바뀐 사람들, 그리고, 교황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서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진 점은 아직 이 사회에 온도가 높은 곳이 존재하고 변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같다.

 

돈은 적게 벌어도 낮은 곳을 향해 시선을 움직이고 행동하는 삶이 더 우리 인생의 한 번 뿐인 기회라고 자평한다.  드라마 '미생'처럼 또는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도 있는 것 처럼 늘 고민하면서 살기는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한 번의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야지 생각하면서도 난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싶은 연말이다. 또 감사한 분들에게 인사도 드려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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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D 사용시간이 2달 정도 지났다. 그간 있었던 다양한 장점을 풀어보면 대략 이렇다. 저렴한 가격으로 개인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업그레이드라 하면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사실 SSD가 모든 문제를 풀 황금열쇠는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자 그럼 아주 간략하게 장점을 설명하면서 당신이 왜 SSD를 사야만 하는지 알려드리겠다.

 

 

SSD 베스트셀러 - 삼성 840 PRO Series

 

 

SSD(Solid State Drive) 는 pc의 핵심 3대 요소인 CPU, RAM, HDD 중 하드디스크에 해당하는 저장장치다. 달리 표현하면 이 세가지의 품질이 높을수록 PC 본연의 성능을 느낄수 있다. 보통 CPU와 RAM의 경우 용량과 스팩이 빠르게 개선되었지만 HDD의 경우는 그 속도 개선이 미진했다. 바로 HDD의 처리를 위해서는 디스크의 회전속도가 더 이상 빠를 수 없다는데 이런 사유가 기인한다.

 

SSD는 HDD의 자체 성능을 개선함은 물론 PC의 처리속도를 극대화 시키는데 가격대 성능비로 탁월하다 할 수 있다. 만약 컴퓨터 업그레이드를 저렴하게 하고 싶다면 SSD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속도 개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SSD의 용량과 속도가 빠르게 변화되었고, 가격도 많이 낮아진 상태다. 보통 SSD를 사용하면서 핵심 프로그램은 SSD에 저장, 설치하고, 데이터 및 자주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외장하드나 백업용 하드를 사용하는게 좋다.

 

SSD의 장점은?

 

1. 속도가 HDD보다 3-5배 정도 빠르다.

2. 안정성에서 앞선다.(뻑 나는 경우가 드물다...HDD보다.. 전혀 뻑(Blue Screen)이 안나는 것은 아니다.

3. 소음이 적고 전력소모가 적어 전기 사용료를 절감할 수 있다.

4. 반 영구적인 수명성(큰 전기적 결함만 없다면 당신의 평생 동반자가 될수도...)

5. 고온, 파손, 충격에 강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5가지 큰 장점이 있다. 유일한 단점?이라 하면 가격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2달간 SSD를 사용해 본 결과 부팅과 시스템종료의 속도는 기존의 답답함을 한 번에 날려주었다. 많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뚝딱하고 부팅을 마치고 대기상태에서 PC사용이 가능하다. 데이터 전송량 역시 빨라서 일부 파일을 옮기거나 복사하는 경우에도 시간절약이 능숙하다. 마치 예전처럼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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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 23 포스팅을 재 포스팅함.

노무현대통령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셨습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서슴없이 하셨지요. 제가 노무현대통령을 처음 만났던 시기는 신촌에서 대규모로 선거전을 했었던 대통령선거 때로 기억됩니다. 키는 작았지만 인자한 미소와 더불어 강건한 의지가 돋보였고, 청중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또한 일품이었습니다.

누가 찍으셨는지 모르곘지만 이 사진 참 좋아라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돌이켜 생각 해 보면 노무현대통령의 정책과 생각과 말들에 대한 비판이 많았던 기억입니다. 그 때마다 누구보다 침을 튀겨가면서 싸우고 얼르고 의견을 말하고 했었습니다. 혼자서 생각하고 행동했지만 그게 바로 정의이고, 믿는 것에 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온국민이 슬퍼하고 위로를 하는 날로 기억이 되겠지만 그 분의 행적과 일들 행동과 말들, 웃음과 눈물등은 역사앞에 다시 새롭게 쓰여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슬픈일에 인터넷바다에서는 욕설과 악성댓글로 판을 치지만 그러지 않을 날이 오리란 생각을 해 봅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도 쏟아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뭔가를 쳐다보지 못하고 넋을 놓고 있습니다.

 

그 후로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 것은 2007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EBSe라는 영어교육전문채널의 개국식 현장에서 뵐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대통령의 연설문을 드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역시나 말 잘하시는 대통령께서는 연설문 없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후 어떤 시골마을의 아이 어머니하고 인터뷰를 하시고 답변을 하셨는데 참 모습이 아이러니 했습니다. 한나라의 아버지이자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 때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한 시골마을의 초등학생 어머니에게 우리나라 교육을 잘 이끌지 못하고 계서서 미안한 마음이 많다. 앞으로 더 잘되게 노력하겠다라는 말씀이였습니다. 생방송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셔서 여러사람이 적잖이 놀랐던 그 당시 부대상황은 모든 이들에게 공감이 되었고, 저에게도 많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어차피 한 번은 돌아가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남의 죽음앞에서 좋은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존경했고, 사랑했던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런 추억속에서 또 다른 삶을 개척하겠지 라는 생각에 손발이 떨립니다. 몸에 땀이 납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노무현대통령과의 짧은 만남은 이제 영원히 추억으로만 존재 할 것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노무현대통령님.

 

노무현대통령 온라인 헌화 장소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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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한국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어를 무료로 학습 가능한 두리안(www.ebsd.co.kr)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느낀 스스로 질문이다. 포털에 검색하고 나서 재밌는 생각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또한 한국어를 더 사랑해야지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

 

 

EBS 두리안 사이트의 메뉴얼(두리안 사이트는 한국어, 한국문화를 무료로 학습 가능한 사이트)

 

자 그럼 외국인들이 바라보고 느낀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내용을 공개해 본다. 아래의 이미지는 구글링을 통해 얻은 정보.

 

 

 

 

또 다른 득템 사진. ㅎㅎ 재밌는 사진이 가득. 한참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진이...

 

 

조금은 촌스러운 사진들이 많지만 훈훈한 느낌의 사진과 마지막 문신은 인상적이다. 영혼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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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의미심장하지. 나만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고, 사실말야 내가 어떤 컴플렉스 따위가 있다던가? 혹은 사회적으로 비정상인 부분을 건드리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 비싼밥 먹어가면서 사회에서 이상한 짓거리하다 걸린 인간들에 대해서 혹은 정신병자보다 더 한 x들에게 회개하라고 큰소리를 치는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오늘에서야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회사 지인 혜민양과 며칠 맞교환 했던 혜민스님의 책을 보고 말이지. 2일간의 여행을 통해서 내 존재 혹은 내 생각이 딱 여기에 있어야 하는구나. 더 멀리 가거나 적게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딱 여기에 서 있다는 말이지. 그게 결론이란 생각을 하니까 딱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잠시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잠시 동안의 순간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순간에 대입을 시켜보니 별거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란 책의 생각은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고, 오늘 잠시 동안의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자 함.


1. 감기가 낫지 않음.

2. 감기를 낫게 하려고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낫지 않음.

3. 사우나, 찜질방에서 땀을 흘렸지만 감기가 낫지 않음.

4. 커피를 줄이고 율무차, 생각차, 대추차를 먹었지만 감기가 낫지 않음.

5. 열심히 청소해서 땀을 흘렸으나 감기가 낫지 않음.

6. 아내를 위해 떡볶기를 요리함.

7. 사과 하나를 깍아서 아내와 딸을 줌.

8. 설겆이는 하지 않고 개콘을 보면서 빈둥거림.

9. 아내 발을 주물러 주고, 아이를 타일러서 재움.

10. 며칠전 찍었던 딸기체험, 1박 2일간의 여행 사진을 포스팅하려고 카메라를 찾았지만 차에 두고옴.

11. 귀찮음. 사진은 나중에 정리.

12. 게으름. 이를 아직 안닦음.

13. 출근 걱정은 없음.

14. 일 걱정은 있음.

15.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을 함.

16. 하버드에 다니는 이름모를 여성이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해서 승낙함. 실수로 누른듯.

17. 모바일 RPG게임에서 추어, 잉어, 메기를 낚고 있음.

18. 책상에 두개의 컵이 나란히 있는데 치울지 고민중

19. 새롭게 아이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책상위에 둠.

20. 단률이란 아이의 돌앨범 사진 작업이 날아가서 업체에 문의함. 화남. 하지만 이게 운명이라 생각함. 다른 업체를 알아볼까 고민중.. 등등...


아참. 블로그 스킨 바꿔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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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두고 퇴근하기 전 개그갬 김영철씨의 강연 소식을 전해 본다. 개그맨 보다 열정적인 영어 공부 매니아로 소문이 난 비결,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사건과 조언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다. 필자와 같은 회사원이 겪고 있을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서 참석해 보려고 하는데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대해 보며...

 

사진출처 : 리빙센스(네이버)

 

아래는 강연에 대한 설명 내용

 

[무료강연] 2/27 : 열정토커 개그맨 김영철의 <일단, 시작해> 저자강연-‘모든 순간이 배움이고 학습이다!’
 
“내가 조금이나마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키워드를 꼽아보라고 하면 나는 ‘순간’이라 말하고 싶다. 무엇이든 이루려면 그것을 꼭 이루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 마음을 오랜 시간 다지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 가졌던 목표에 훌쩍 다가선 나를 발견하게 된다.” - <일단 시작해> 본문 중에서
 
개그맨 김영철은 방송국 PD의 권유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석했다가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좌절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무대에서 빌 코스비, 짐 캐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적인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벽 학원을 등록하는 등 영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10년 동안 꾸준히 영어 공부에 열정을 쏟은 결과, 번역서 출간과 영어 관련 라디오 진행 그리고 대학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는 등 영어 잘하는 개그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학습 노하우와 슬럼프 극복 등 영어 공부를 통해 얻은 진솔한 경험을 삼성 ‘열정樂서’ 등의 강연장에서 특유의 유머와 넘치는 에너지로 청춘들에게 전하는 스타 강사로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꿈과 삶을 목적을 위해 꾸준히 배움의 길을 걸어온 개그맨 김영철의 자기계발서 <일단, 시작해>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삶의 목적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당신에게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언제인가를 물으면서, 가슴 떨리는 삶을 살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모든 순간 뜨겁게 배우라고 하면서, 꿈을 향한 1만 시간의 분투기를 들려주며, 꿈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대다수 많은 사람들은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슬럼프에 쉽게 좌절하며 꿈꾸기를 멈춥니다. 김영철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에게 무엇이 됐든 일단 부딪치면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꿈을 향해 가는 여정 속에서 장애물을 만난다고 해도 꿈을 가졌던 첫 순간을 잊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성공의 순간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전합니다. 그가 서른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영어공부를 시작해 현재의 자리에 이른 것처럼 시작하는 데 있어 늦었다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김영철은 영어 공부를 하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어 독서와 주변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항상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책을 읽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고 책을 통해 배운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선배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강호동, 신동엽, 유재석 등 그가 자만에 빠지거나 인생의 문턱에서 좌절해 있을 때 따끔한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선배들이 있습니다. “영어 말고 방송 말이야. 이 바닥에서 열심히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니? 열심히는 기본이고 정말 최선을 다하지 못해 죽을 정도로 해야지”(유재석). “자꾸 붙어라. 형들하고도 붙고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도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와서 막 하고 그래라”(강호동). “너는 너만 지치지 않으면 돼. 다들 카메라가 멈추면 표정도 멈추는데 너만 안 그러잖아. 그리고 기본적으로 코미디언은 말로 웃겨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너는 전무후무한 캐릭터가 될 거야”(신동엽).
 
1999년 꿈에 그리던 개그맨 공채 시험에 합격한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 개그맨, 베스트셀러 작가, 스타 강사의 자리까지 오게 만든 것은 바로 확고한 삶의 목적과 꿈 그리고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배움이고 학습이다’라고 말하는 김영철은 <일단, 시작해> 저자강연에서 자신이 배운 것들을 독자들에게 모두 나눠드릴 것입니다.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걸어가는 모든 분들의 참석을 환영합니다.
 
■ 행사 : 《일단, 시작해》 출간기념 저자강연
■ 주제 : <모든 순간이 배움이고 학습이다!>
■ 부제 : ‘개그맨 김영철의 꿈을 향한 1만 시간의 분투-배움과 도전기’

■ 일시 : 2013. 2. 27 (수) 오후 7시30분~9시
■ 장소 : 카톨릭청년회관 5층 니콜라오홀 (홍대입구역 2번출구 도보3분) / 약도 http://bit.ly/o69Iyk
■ 인원 : 200명 (선착순마감)

■ 회비 : 무료
■ 일정 : 19:30~21:00 저자강연
■ 신청 : [메일접수] goodseminar@daum.net - <성명, 소속명> 기재 신청, 메일제목은 ‘김영철 강연신청’
 
■ 강연내용 :
 
1. 가슴 떨리는 삶을 살아라
(나는 내가 될 거야 / 우연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너의 선택이다 / 멈추지 말고 느리게라도 뛰어봐 등)
 
2. 너에게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언제인가?
(걱정 말고 치열하게 고민하자 /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 등)
 
3. 모든 순간 뜨겁게 배워라
(산 옆에 서야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 분주한 삶을 살며 늘 깨어있기 / 자신의 결핍을 사랑하는 법 등)
 
4. 꿈을 향한 1만 시간의 분투기
(버려야 얻어지는 것들 / 당신의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 정해진 순서는 없다. 일단 부딪쳐라 등)
 
5. 꿈을 멈추지 말아요
(끝까지 다했다고 느꼈을 때 포기하라 / 태도를 바꾸고 크게 생각하라 / 세상은 즐기는 사람의 것이다 등)
 
■ 강사 : 김영철
 
1974년 울산 출생으로, 동국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KBS 14기 공채 개그맨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하였다. 현재 SBS 라디오 <김영철의 펀펀 투데이>를 진행하고 있으며, 행복하고 유쾌한 수다쟁이, 청춘 토커, 인기 개그맨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스타강사로 맹활약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뻔뻔한 영철영어》《THE 더 뻔뻔한 영철영어》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치즈는 어디에?》《개구리와 키스를》이 있다.
 
2003년 <개그콘서트> 서수민 PD의 권유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석했다가 빌 코스비, 짐 캐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터내셔널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된 이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1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영어공부에 열정을 쏟는다. 그 결과 MBC FM <정오의 희망곡>의 ‘영철영어’ 코너 진행과 대학에서 영어강사로 활동하는 등 영어 잘하는 개그맨으로 유명세를 떨친다.
 
그는 영어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며, 독서와 주변 지인들의 삶 속에서 항상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자세를 갖게 되었다. 이후 방송뿐만 아니라 강연자로 활동역역을 넓혀가면서 대학과 기업 강연을 비롯하여 tvN <스타 특강>과 삼성 ‘열정樂서’에서 많은 청춘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는 열정적인 스타 강사로 자리매김했다.
 
■ 주최 : 한경BP
■ 주관 : 한국CEO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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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 선거, 투표장소 조회를 간단하게 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투표할 장소를 모르신다구요?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간단하게 조회가 가능합니다.

https://si.nec.go.kr/necsps/sps.SpsSrchVoterPolls.n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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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인 내가 혈서를 처음 본 것이 친구의 혈서였다. 당시 손가락을 물어 뜯어서 손톱과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XX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라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혈서였다. 대중음악의 아이돌현상이 계속되면서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처음 검색순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혈서를 적은 사진은 물론이고 그 혈서를 적은 피가 생리 중 생긴 피를 가지고 작성했다는 것이다.

생리혈서로 불리우는 혈서.

사실 위 사진은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혈서이자 맹목적인 사랑?의 결과인가가 의문스럽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진과 글을 올린이에게 과연 비난의 화살을 '악플', '욕설'로 해야 하는지를 묻고 싶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글씨체나 맹목적인 문구, 연습장을 찢은 듯한 종이를 바라보면서 이 사진과 글은 어떤 학생이 올린 것으로 추측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을 올린 사람의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에 동감하고 우리 모두의 반성을 요구하고 싶다. 비난과 '악플', '욕설'로 이 글을 올린 사람을 욕하는 것에는 분명 무리가 따른다. 현행법상 처벌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신의 신체에서 성스런 부분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인증을 한다고 속옷까지 보이기에 이른다.

 

혈서를 쓴 장본인은 아마 곧 후회하고 반성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녀를 위해서 비방과 욕설대신 한 사람으로의 배려심으로 마음을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들보다 조금 더 위험한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욕설과 비난은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 부분 인 것이다.

 

그녀에게 따스한 사람의 배려심을 느낄 수 있는 격려의 말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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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방송된 박근혜씨의 출연작,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을 말하듯 노무현대통령 서거 당일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문재인 이사장은 그 밖에도 노무현대통령과의 동업시절의 이야기, 탄핵사건, 서거에 대해서도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 갔습니다.
 

문재인 이사장이 빛났던 순간을 저는 노무현대통령의 서거와 관련된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상주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우직함과 슬픔을 보이지 않고 냉정하고 반듯하게 일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이 기댈 수 있는 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저는 사실 노무현재단의 회원입니다. 정기적인 후원은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5월이면 가서 뵙고, 기도를 드리고, 눈물을 흘리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노무현 재단이 정치적인 색으로 벗어나야 더 빛을 받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옳지 못한 것을 바로 잡고, 누군가 기댈 수 있는 나무의 역할을 재단이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문재인 이사장은 말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라고...그리고, 자신의 정치적인 현재 위치를 박근혜씨는 정치고수지만 자신은 초년병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듣는 사람 생각을 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은 권력을 보좌하는 보좌관과 인물, 정책입니다. 실행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지략을 펴 나가고 바른 정치를 한다면 국민이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출처 : SBS

이미 국민은 시민권력으로 탈바꿈 하고 있습니다. 누가 잘못했고, 잘했으며, 네이버 정치, 사회뉴스에 댓글 알바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체험했습니다. 이미 국민은 대선에서 어떤 인물이 필요한지 나름 정하고 있습니다. 부도덕과 먼 사람, 약속을 이행하는 사람,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 등 각자 나름의 철학으로 대선에 표를 던질 것 입니다.


문재인이 그린 노무현은 문재인은 노무현 그림자였습니다. 그를 알고 지낸 시간들을 감사해 하며, 그의 뒤에서 그를 위한 나머지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정치인으로 바뀐 그의 삶의 모습은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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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님 기일을 맞이하여 친척 어르신들이 모이셨습니다. 아연양도 참석했지만 풍운아 답게 소리지르다가 넉다운 되었구요. ^^ 화두는 안철수, 박근혜, 박원순, 나경원, 홍준표에 대한 인물평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이대는 50대부터 60대 어르신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나는 꼼수다를 듣고, 닥치고 정치를 읽는 30대 중반 막내 조카는 대화에 빠져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네요.



어르신들의 직업은 다양합니다. 큰아버님은 은행지점장을 마치시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열어두셨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고모님들, 자영업을 하시는 고모부까지 6분 정도가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50대-60대 사이의 연령대가 말해주듯 박근혜에 대한 지지 발언이 이어지고, 안철수의 사회환원으로 젊은층의 지지를 많이 확보했다는 이야기, 홍준표의 저격수 역할에 대한 불신과 민주당, 한나라당의 FTA이야기까지 대화가 재미있게 이어졌습니다. 단순하게 비판을 하거나 비난을 하기보다는 살아온 연륜을 말해주듯 유연한 대처로 토론형식의 이야기가 진행되는게 SNS에서 단련된 단답의 토론보다 더 진중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감으로는 누가 좋냐?의 이야기와 박원순의 복지정책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습니다. 서울시장에서 낙마한  나경원의 비방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이야기였는데 서울시장의 이야기와 더불어 대통령에 대한 여성 후보에 대해서는 모든 분이 시기상조이거나 믿기 힘들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대세는 안철수로 이어지는듯 했지만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인가?보다는 1500억원의 사회환원 금액이 200여억원으로 늘어난 부분이 놀랍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음식을 만드신 작은 어머니들은 아연양의 웃음소리에 즐거워 하셨고, 아내는 아연이를 데리고 저에게 오고 있네요. 후후
이제 밤11시가 다되어 갑니다. 금호동에서 남양주 오남까지 가려면 길이 먼데 아직 대화가 끝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12시는 되어야 끝이 날 것 같네요. 내일은 또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인데...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이 벌써 큰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안철수, 박근혜 대결로 점쳐지는 대권이 과연 이렇게 종지부를 찍을것인지? 새로운 인물이 부상하여 핵심 내용이 변화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가 부르는 그 누군가가 나타나리라 생각됩니다.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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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사회환원 행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정치, 경제, 문화, IT등 안철수와 관련된 이야기, 언론기사로 도배가 되고 있습니다. 급부상한 그의 파워와 박근혜를 능가하는 정치권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시대가 부르는 질문에 답을 던져줄 정치인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SNS의 활동력은 물론 SNS를 입고 등장한 나는 꼼수다를 비롯한 나꼼수 4인방이 연관된 책이 날개 돋친듯 팔려나가는 일 등은 모두 새로운 바람, 구태정치가 사라짐을 암시하는 것 입니다.
 
단순하게 신드롬이라 부르기에는 깨끗한 이미지와 선량하고 굵직굵직한 행동들이 국민을 정치로 부르고 그가 답하는 모양새로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사회공헌 메시지에는 분명한 철학이 보이는 것이죠. 단순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녀 - 박근혜와 비교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일단락 짓는 누리꾼도 다수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2005 @모노피스

하지만 정치가 쉽게 변할까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경험한 세대로서 쉽게 바뀐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하지만 MB정권에서의 그의 꼼꼼함은 친익척 비리와 맞물려 한 명이 바뀌어도 크게 바뀔 수 있는 정치사회가 이뤄졌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바꾸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촛불하나지만 큰 불이 되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이 보이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언급했던 http://olpost.com/v/2716342  안철수의 대선행보는 이미 예견했습니다. 하지만 때가 지금이냐? 아니냐?는 명백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한 대권 후보로 점쳐지는 박근혜와 경기도 지사를 연임한 김문수와의 경쟁구도는 분명 보수냐 진보냐의 싸움이 아니라 세대간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지역기반 보다는 연령층에 맞서는 사태를 불러올 수 있겠죠.

이를 아우르는 것은 소외된 계층, 국민을 돌보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대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이 어제 안철수의 사회공헌 메시지였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이념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비단 직원을 향해 메일을 보냈지만 이 메시지는 전 국민을 상대로 비우고 시작하겠다는 대선관련 메시지로 받아드릴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는 검증이 안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강단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했으며, 나라 정책을 조언했던 일을 상기해 본다면 그의 결심 자체가 검증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공헌의 메시지 역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공식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표현했던 것은 물론 청춘콘서트 같은 공연에서 청년에게 던졌던 메시지를 기억해보면 명확하게 들어납니다.

이제 그의 사회공헌 메시지에 국민이 적법한 메시지를 전해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꾼이 아닌 사회를 통합하고 약자를 구해내는 슈퍼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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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기업인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전세계의 사람들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저또한 그런 사람중 하나죠. 오전에 라디오 뉴스를 통해서 전해들은 사망소식은 믿기 힘들정도로 안타까웠습니다. 스티브 잡스하면 프리젠테이션의 달인이라고도 하죠. 그의 인생은 마치 드라마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수많은 대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구요.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세계의 천재 한명을 잃었지만 그를 더 자세히 기억하고 싶어할 것이고, 그리워 할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죽음을 언급했던 연설문을 소개합니다. 


 오늘 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제가 대학 졸업식이라는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완전히 자퇴를 했습니다. 제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제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제가 반드시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났을 때 절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의 양부모님은 한밤중에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흔쾌히 입양을 수락하셨습니다.

 저의 생모는 나중에야 양어머니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의 생모는 이런 이유로 최종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 달 후 양부모님이 저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저는 정말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의 양부모님은 저축한 모든 돈을 제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학비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제가 지금까지 한 결정 중에 가장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저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관심 있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 방의 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 위해 콜라병을 반납해서 5센트씩 모았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 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저는 그걸 좋아했습니다. 제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서 한 일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큰 가치로 나타났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 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포드 연설. 
  

 제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손글씨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정규과목들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저에겐 이런 모든 것이 제 삶에 실제로 응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제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도즈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지 않았고, 서체과목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저의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인생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아였습니다. 우즈(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창업자)와 저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냐구요?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잘 맞는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내부적으로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서른 살이 된 해에 그렇게 쫓겨났습니다. 성인이 되어 제가 초점을 맞춰왔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저는 너무나 비참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몇 달 동안 저는 무엇을 할지 몰랐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 저는 데이비드 팩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습니다. 저는 공식적으로 실패한 사람이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 무언가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을 꺾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저의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저에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중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제가 성공의 중압감을 벗어나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을 되찾게 해줬고,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줬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 그리고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만들었고, 지금의 제 처가 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놀랍게도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저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저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쓰디쓴 약이었지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저를 이끌어간 유일한 힘은,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부터 나왔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훌륭한 관계들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제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저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 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하게 될까?” 그리고 여러 날 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고 나온다면, 저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자부심,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약 1년 전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30분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췌장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라면서 제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10년동안 해줘야 하는 말을 단 몇 달 안에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종 시 가족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저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나중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 밝혀져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건강해졌습니다.

 이것이 제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몇 십 년간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죠.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해 갈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니까요.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너무나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합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래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그는 자신의 모든 걸 이 책에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PC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그 책은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 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 번 개정했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제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번역 송윤주.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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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까지 나는 꼼수다 20회를 기다렸는데 오늘 트위터에 올라온 따끈한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도 편집과정이 좀 길어지지 않나 싶고 수위조절을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 23일 12시 이전에 업데이트가 될 예정


트위터의 딴지스의 업데이트 소식 -
@ddanzis: 출근길에 딴지 라디오를 기대해 주신 분들께는 다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나는 꼼수다 20회 "왕재산과 삼화저축은행" 전격 업뎃 대기중입니다. 점심시간 이전에 개봉박두!


나는 꼼수다 20회 다운로드 - old.ddanzi.com/appstream/ddradio.xml

나는 꼼수다 20회 바로 듣기 - http://oujoon.nowcdn.co.kr/ggomsu020.mp3

나는 꼼수다 티셔츠 구매는 여기로 - http://gaka.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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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 2주기 날이 되었네요. 오전에 짐꾸리고 봉하마을로 떠날 생각입니다. 많은 분들이 비와 바람을 뚥고 오시겠네요. 안전운전하시고, 봉하마을에서 뵙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미공개 사진을 공개합니다. (출처 : 사람사는 세상)




▲ 2002년 5월 대선기간 중에 들른 시장에서 장기를 하는 시민들을 만나 훈수를 두는 모습


▲ 2002년 11월 17일과 18일에 걸쳐 대통령 선거 광고사진을 찍을 때 잠깐 쉬면서 상념에 잠긴 모습


▲ 2003년 12월 13일 토요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를 나서기 위해 신발을 신고 있습니다.
친근하면서도 소박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 2004년 1월 18일, 설날 연휴를 이틀 앞둔 일요일.
눈이 내리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참모진들과 북한산을 오르는 모습


▲ 2004년 3월 21일 일요일. 9일 전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 후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청와대 뒷산에 올라 담소를 나누는 모습

그 분이 그립습니다. 그 분의 미소가 그립습니다.

노무현대통령님의 추모페이지 - http://www.knowhow.or.kr/main/main_090523.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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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조회와 댓글때문에 다시 한 번 갱신?합니다..^^

먼저 아고라와 서프라이즈에서 퍼온 글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고, 삼양라면을 만드는 삼양식품이 어떤 회사인지 잘 모르셨던 분들은 아시게 될 것이고...
잘 알고 계신 분들은 계속 사랑 해 주셔야 할 진정한 기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도 아래 내용을 보신 후에...촛불문화제에 나가시면 삼양라면을 드실 것이 분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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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2가지.

농심 + 조.중.동.문 = 박멸


국민 + 삼양  = 화합


삼양라면의 숨겨진 일화와 나의 프랑스 유학시절(펌)


벌써 2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어느 대학도시의 기숙사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 십여명 있었습니다.
낯설은 이국 생활이라 당연히 고국의 음식이 그리웠지요
.
당시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주변에 없었고

어쩌다 명절때나 부모님들께서 비싼 돈 들여 보내주시는 밑반찬이라야
받아보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
라면이라도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지요
.
프랑스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식품점에서 라면을 팔기는 했는데

홍콩인지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서 "출전일정" 일본상표를 붙인 조잡한 제품이었고,
첨부된 중국식 돼지고기 맛 스프가루를 타서 요리를 하면

정말 웬만큼 비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은 그 느끼함에 다 토해버릴 정도.
그래서 저희들은 스프가루 넣는 대신 소금, 양파, 고추가루로 맛을 내고는 했지요
.
우리나라 우리맛 라면을 너무나 먹고 싶은 마음에 하루는 꾀를 내었습니다
.
기숙사 외국 학생들이 모두 삼백여명쯤 되었는데

학교 식당에서 모두에게 대한민국 라면파티를 멋지게 열어주자고,
그래서 우리나라 우리맛 라면의 진수를 전 세계에 보여주자고
.
그런 내용을 써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삼양라면 사장님께

다만 본사가 당시 서울 종로 청진동에 있었다는 것만 알고서
도와주십사 라는 편지를 진담반 장난반 올렸습니다.
물론 무모하고 황당한 요청임을 잘 알기에

저희는 삼양라면에 대해 답신 조차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
파리 오를리 공항 세관에서 제게 소환장이 날아왔습니다
.
외국산 식료품이 무려 2 큐빅톤이나 제 앞으로 왔는데
,
도대체 학생의 신분이라면서 혹시 밀수꾼이냐 아니냐 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
그날 밤차를 타고 파리에 상경
,
새벽에 오를리 공항에 가서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고 물건을 찾아왔습니다
.
세관원들은 거의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짓더군요
.
말이 2 큐빅톤이지 작은 봉고차에 가득차는 엄청난 물량이
,
당시 돈으로도 수백만원 넘는 특급 항공운임표를 붙인채 제 앞에 쌓인 모습
,
라면 상자의 산더미는 제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지요
.
마치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을 정복했노라는 성취의 뿌듯함에 앞서
.
전혀 알지도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일개 학생의 편지 글만을 믿고
,
라면 백여상자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운임까지 지불하여 특급우편으로 보내주신

삼양라면 사장님의 마음 쓰심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고 말더군요...
과연 어떤 분이실까
.
뵙고 싶었습니다
.
감사하고 황송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
저희의 대한민국 라면파티는 대성황으로 끝났고요
.
외국학생들에게는 "짜짜로니" 였던가요, 짜장면 류가 대인기를 끌었지요
.
작은 대학도시였지만, 라면파티 한 번으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
그리고 20년도 더 지나고
...
국민기업 삼양라면이 처했던 어려움도 그저 남의 일인냥 지나쳐버리고
,
이런 저런 핑계로 삼양라면 사장님께 그 흔한 그림엽서 한 장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
부디 용서해주십시요
.
오늘 우리나라의 위기를 맞았지만
,
삼양라면 사장님의 신념과 배려의 마음을 떠올리며 저희의 희망으로 삼습니다.


삼양라면!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무한펌 바랍니다!!)

많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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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볼 것 같습니다. 잠시 쉬는 틈을 사서 티스토리 공지를 확인해 보니 원빈씨가 나눔행사를 진행하고 있네요. 아주 간단하게 블로그에 위젯을 설치하면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1,000원을 기부 할 수 있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행사 안내 페이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희망기부 http://hyphen.daum.net/request/campaign/sub/star2.do
위젯기부 http://widgetbank.daum.net/widget/view/960

따스한 희망을 전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문화에 대한 포스팅은 못하고 이런 단편적인 이야기만 포스팅해서 송구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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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선수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계시니 더이상 언급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큰 화제가 되어버려서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그만하길 소망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스승과 제자의 신뢰에 금이 간 상태이지만,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어떤 이유가 존재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동계올림픽에서 눈물을 보인 김연아 선수를 다독이는 오서코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선수와 코치를 응원했던 사람으로 아쉬움은 오래 지속 되리라 생각됩니다. 급하게 적는 글이지만 시대를 풍미했던 피겨선수였던 사람들과 서로를 존중했던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가 이런 폭로로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오서 코치의 인터뷰(스포츠조선) 속에서 담담한 어조로 아직도 제자 김연아를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 것은 저만 그렇게 느끼진 않았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김연아의 어머니 or 브라이언 오서?

김연아 선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직접 김연아 선수가 적었다고 하더라도 그 글을 지운 것과 다시 미니홈피에 적은 글은 어떤 의미일까요? 트위터의 글을 단순한 감정에 의한 글로 본다면, 미니홈피의 글은 이 결별이 서로 양보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는게 분명 해 보입니다. 문제가 발생되고 사태를 수습하는 경우 두가지 경우가 생깁니다.

원만하게 해결하거나 서로 얼굴을 안보는 것이지요. 결국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 모두에게 짐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은 어떤 사건이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서로간의 공방일 뿐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미 서로는 입장을 정리 했다고 생각됩니다.

단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 핵심은 간과하고 이 관계를 금전적인 문제(일주일에 65만원 코치였다)로 몰고 가는 여론과 찌라시 언론이 기사를 내고 있는 것 입니다. 돈문제(65만원)로 일관하는 언론의 행태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적시했지만 핵심은 김연아의 어머니와 오서 코치가 키를 쥐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서로에 대한 폭로전은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큽니다.



돈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신뢰관계

오서 코치는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김연아는 최고의 선수이고 제자로 기억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돈관계가 아닌 인간적인 신뢰관계로 해석된다. 단지 인터뷰에 65만원을 언급한 것은 돈관계로 일축하고 있는 일부 언론들의 기사를 반박하는 해석으로 이해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65만원을 받고 일한 오서 코치의 인터뷰를 김연아측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서코치 유도 질문에 신뢰와 냉정함을 잃지 않다.

신문기사의 인터뷰 뿐만 아니라 잡지나 TV, CABLE 등 방송사 인터뷰는 그 기사의 핵심의도를 벗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재 편집이 가능합니다. 뒤 늦게 공개된 옥주현의 슈퍼스타K 방송분은 물론이고 무한도전, 1박 2일 등 버라이어티에서도 편집에 따라 전혀 다른 의도로 해석 할 수 있는 것을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스포츠신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 갈등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낸 후 기사화 하려는 의도가 보였지만 신뢰와 사랑으로 형성된 관계에 대해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건강한 인터뷰를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최고의 스승, 브라이언 오서

끝까지 김연아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연아 측이 어떤 기사나 기자회견을 할지 의문이지만 단순하게 코치의 계약기간 만료 형태가 아닌 통보식의 계약관계 종료는 계약 당사자들 간의 의리와 신의를 버리는 행위이다. 아무리 작은 계약이라도 서로간의 도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관계에 대한 내용과 서로 합의가 아닌 일방통보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화로서 부드럽게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연아의 발언

당사자인 김연아 선수 나이가 20살입니다. 많은 경험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음에도 언론과 인터넷에서 엄마가 공격 당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감을 표현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며 김연아 선수 역시 스승이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에 대해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은 언론과 인터넷상에서 부풀려지고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일들이 재생산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이해하고 배려해야

이 글을 적는 이유는 두 사람을 응원했던 한 사람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지켜 볼 한 사람으로 드리는 글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글과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글 역시 게재하지 않는게 이 아픈 일들을 조금이나마 여러사람이 지켜보고 잘 풀리도록 배려하기 위함입니다. 사실은 사실로 증명 될 뿐 입니다. 어떤 목적으로도 이번 일에 대해서 확대하거나 나쁜방향으로 재생산 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될 일 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번 일에 대해서 지켜보고 해결이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입니다.

관련글 - http://monopiece.tistory.com/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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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글을 적으며... 스크랩해서 글을 읽지 않지만 이 내용은 내 가슴과 나중에 시대를 짊어지고 갈 내 아이, 내 아이의 아이까지 보여주고 싶은 글이다. 그래서 스크랩을 하고 이렇게 글을 남긴다. 비록 내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누군가는 역사를 바로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 2006. MonoPiece  '나무가 되고 싶다'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이다.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년 6월 17일 (목) 오전 7시 30분
장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 저는 지난 6월 10일 오후 5시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 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 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 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 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 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 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 재미니, 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 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 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 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 이 둘을 1 대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 노트 한 권, 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 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

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 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 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 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 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 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세, 1970년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 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2005. 경복궁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2007. 군산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 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 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억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 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 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물리학사, 건축학사가 나옵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허벅다리, 갈고리를 아! 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 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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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Talk]/아름다운것들[Beuatyful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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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4일 토요일 기아와 롯데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세계신기록이 수립되었습니다. 오늘은 이승엽 선수의 최다홈런 56호 아시아 기록 이후 이대호 선수가 기록한 세계신기록인 9게임 연속 홈런은 쉽게 깨지기 힘든 기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아와의 경기에서 이어진 이대호 선수의 세계신기록은 시즌 경기가 어느정도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컨디션만 유지된다면 계속 기록을 이어나갈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롯데 자이언트 선수이지만 국내선수의 최고 신기록 소식은 정말 기쁘네요. 진심으로 축하를 하고 싶습니다. ^^
내일과 이후의 경기에서도 좋은 컨디션으로 계속 신기록을 수립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이제 이대호 선수는 반짝 실력이 아닌 기복이 없는 세계최고의 선수로 거듭난 것 같습니다.

올 해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FA자격이 주어지면 과연 어느팀으로 옮길것인지? 연봉은 어떻게 책정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대호 선수의 세계신기록 9게임 연속홈런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LG는 가을잔치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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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Talk]/아름다운것들[Beuatyful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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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내 놓으라는 행사와 공연, 파티 등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 계십니다. 바로 앙드레김 선생님이시죠. 어떤 행사를 치룰 때 그 행사의 크고 작음을 나타내는 잣대는 앙드레김 선생님이 참석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평가를 받는게 행사를 치뤄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그만큼 국내에서 남성 패션디자이너로서 최고의 인물로 평가하는데 주저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입니다.
 
▲ 앙드레김 선생님은 누굴 만나도 환하게 웃어주시기 때문에 개그 소재로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앙드레김 공식홈페이지 http://www.andrekim.co.kr

앙드레김 선생님은 대장암과 폐렴 증세로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1962년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로 데뷔하고 1966년 월드컴에서 북한이 이탈리아 축구를 이긴 후 8강에 오른해에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습니다. 1988년에는 대한민국 선수복을 디자인 하기도 하셨는데 젊은 감각과 개성있는 목소리와 제스처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인물입니다.

저는 생전의 모습을 기억한 팬으로서 세계적인 디자이너 앙드레김과 관련된 3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출처 : http://www.cyworld.com/chocho_ya/3329848

첫 번째 이야기는 며칠 전 앙드레김 선생님의 패션 샵을 지나치며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앙드레김 선생님의 프로의식이 느껴지는 한 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샵에서 디자인 된 옷을 피팅하는 모든 분이 자주색 드레스(앙드레김 스타일의 공주풍)를 입고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패션샵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마케팅을 하지만 앙드레김 샵은 뭔가 달라도 다르게 보였습니다.



여러가지 디자인과 패션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또 한가지는 MBC 임원실 비서들의 유니폼을 직접 디자인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2007년의 일인데 MBC 직원들의 유니폼은 아래 사진과 같이 리본과 꽃잎모양의 소매를 디자인해서 화사함과 정갈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패션으로 보입니다.
▲ 앙드레김 선생님이 직접 디자인 한 유니폼
평소 하시던 말씀처럼 엘레강스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세번째 이야기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엄기영앵커가 앙드레김의 의상을 입고 나온 것이 화제였습니다. 당시 웃기기도 했지만 대중적으로 사랑 받는 앙드레김 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 앙드레김 선생님의 옷을 입은 엄기영 앵커

앙드레김 선생님을 만나본 분이나 싸인을 받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늘 웃어주시고, 싸인도 친절하게 해 주시는데 그 성품이 참 온화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김수철선생님의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도 오셨는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패션과 관련된 자신감과 프로의식이 보여서 내심 기분이 좋았고, 건강이 이렇게 악화되신지 몰랐는데 오늘 오후 7시 30분쯤 돌아가신 소식을 들으니 안타까움이 더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의 이름인 '앙드레김'은 영원이 별처럼 빛이 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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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어느 인터뷰를 기억합니다. 17세 청소년 윤빛가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K리그는 느리고 재미없기 때문에 보질 않는다'라는 당돌한 발언을 했다. 그의 수많은 선배들이 K리그에 몸담고 있고, 그 보다 뛰어난 선수들도 K리그를 발판으로 아시아, 유럽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3년 후 그도 경남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고, 새로운 대표팀 감독인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어제 친선전인 나이지리아 전에서 국가대표로 경기를 뛰었다.

작년 조광래 감독은 윤빛가람은 아직 어린선수다. 조금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라는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세대교체라는 큰 틀을 쥐고 나서 발탁한 윤빛가람은 어김없이 그의 기량을 뽑냈고, 골을 뽑아낸 선수로 기록되었다. 나이지리아 전이 사실 큰 경기는 아니었지만 월드컵 직후의 경기였고, 경기력을 평가하는데 이만한 좋은 기회는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젊은 선수의 패기와 감독의 발탁은 궁합을 이뤘고 멋진 골로 그 해답을 했으니 대한민국의 축구가 밝다는 표현이 맞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 조광래 감독의 새로운 황태자 윤빛가람

윤빛가람은 나이지리아전 이전에 열렸던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그의 인터뷰는 이랬다. '그다지 잘 하지 못한 경기였고, 내가 골을 넣은게 맞는지 몰랐다'라는 발언을 했다. 20세 답지 않는 지능적인 플레이는 우연이 아닌 훈련되고 준비된 자세에서 나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한 이런 발언을 했다. '정신적으로 성숙했고 플레이 템포와 수비력을 보완했다, 정신적으로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다름을 몸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선배인 박지성, 이영표 선수의 인터뷰와 사뭇 달랐던 윤빛가람은 골을 뽑아내는 기량은 물론 정신적으로 성숙했음을 느낄 수 있다. 윤비가람을 독설가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K리그에서 성숙하고 외국 무대에서 기량을 늘리고 극복한다면 충분히 좋은 선수로 성장 할 것이라 보여진다. 프로선수는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것은 물론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 그의 경기력을 보면서 사실 대견한 느낌이 들었다. 20세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능적이고 유기적인 플레이를 많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절실히 필요한 영리한 플레이와 세대교체의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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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 아직 식지 않은 지금. 대한민국을 파헤치는 공사가 한창이다. 사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4대강에 대한 위험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오늘 트위터에 올라 온 글 하나를 보고 검색창에 낙동강 사진을 검색해보고 충격적인 사진을 보게되었다. 트위터에 올려둔 한 장의 사진 말고도 낙동강에 흙탕물로 썩어가고 있는 강, 우리의 젖줄이라고 자부하던 강이 변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서 참담하기 이를데 없다.

낙동강의 실제 모습 오른쪽 부분은 상태가 양호한 편. 왼쪽 부분은 흙탕물로 변해버린 모습


위 사진은 4대강 사업으로 부터 강을 지키는 모임인 부산시민운동본부에서 촬영한 항공사진이다.

포크레인으로 강을 파서 준설을 하는 4대강 사업 실제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 하면서 드는 기분은 참 우울하다. 이 사업을 왜 계속 진행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 학계나 언론에서 꾸준한 지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논란이 있었지만 맑은 수풀림과 푸른 강물의 빛은 황토색 흙탕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포크레인이 계속 강을 오염시킨다.

강과 강이 만나는 곳. 낙동강은 이미 흙탕물로 강물색이 변해버렸다.

맑은 강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학계는 물론 정치권, 종교계까지 나서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미 강물속의 수많은 생물들은 물론 인간의 생존권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위 사진은 실제 모습의 일부분이다. 더 많은 사진은 플리커의 아래 주소에서 확인 가능하다.
http://www.flickr.com/photos/sos4rive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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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분들이 접속하고 계신 방송국 홈페이지, 지상파, 케이블 방송사들의 속보 방송은 사실 실시간 데이터가 아닙니다. 몇 분의 텀을 거치고 개표방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시간정보라 보기 어려운 측면이 큽니다.
현재 컴퓨터와 아이폰, TV등 3가지 미디어 매체로 선거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컴퓨터로는 방송사 홈페이지와 트위터를 접속하고 있고, 아이폰으로는 SBS, YTN 생방송, TV로는 MBC 선거 개표방송을 보고 있습니다만, 가장 빠른 미디어는 트위터였습니다.


사실 트위터의 빠른 정보 소통은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은 알고 계실겁니다. 트위터를 하고 계신 분들이거나 하지 않는 분들도 빠르게 정보를 얻으시려면 먼저 트위터에 접속하고 검색창에 개표, 선거결과, 한명숙, 오세훈 등 관련 단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분들의 정보와 개표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방송사 방송보다도 몇 분 정도 빠르기 때문에 입력하는 불편함을 감수하신다면 가장 빠른 정보를 통해서 개표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트위터에 나온 정보는 서울시장의 경우 9% 개표완료가 되었고 한명숙후보가 2만7천표 정도 앞서고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만 방송국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에서는 개표율이 3%~4% 정도의 개표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PM 11:00 개표결과 업데이트입니다.
14.7% 6만5천표개표. 3만3천표로 격차 벌어져. 강남 서초 강동 용산 정도만 지고 나머지 우세!!

PM 11:57 개표결과 업데이트입니다.
22.2% 97만표개표. 36203표 앞서구요, 이젠 미개표 지역 없네요. 방송에선 한후보 우세지역이 포함되지 않아서입니다

6. 3 AM 2:00 개표결과 업데이트입니다.
42.2% 186만표개표. 1812표 앞서서 격차 많이 좁혀졌어요, ㅇ.1% 차이 초접전~


보다 빠른 정보를 원하신다면 트위터에 접속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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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분들은 저를 압니다. 저는 눈물이 많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손을 내밀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순간 머리가 커졌습니다. 그냥 내 삶에 충실하자는 의미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모르는 척하고 눈을 감아버린 적이 있습니다.
자 ...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런 적 있나요? 조금 힘들다고 느껴질때 그냥 눈을 감은 적 있으신가요?

오늘 지금 이 사진을 보고 계신 당신은 팔과 다리가 온전치 못한 20대 후반의 청년 닉 부이치치를 보고 계십니다. 이 사람의 얼굴에서 어떤 것을 느끼고 계신가요? 희망이 보이나요? 8살 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파하고 10살 때 자살시도를 했던 이 청년이 세계를 다니며 아픔과 희망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각지를 돌면서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의 끈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청년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보여지는 장애인 분들을 보면서 가슴 아파 한 적이 있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말씀을 듣고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희망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자는 그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인생에서 부담없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남을 위한 배려를 할 것인가? 고민을 해야 할 시간입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을 도와서 같이 걸어가는 것 입니다.

이 글의 마지막에 보게 될 영상 하나가 있습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외치는 우리들의 친구 닉 부이치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길을 가다가 우리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힘이 들면 다시 일어날 힘이 없다고 느낄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들 처럼 팔다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백번 실패해도 또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을 계속해야 합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고 어려운 사람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희망을 보고 계신가요?
부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행복이 찾아 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가까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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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간 정신없이 메일을 읽다가 사은품을 준다는 광고 메일을 하나 클릭했습니다. 셜록홈즈가 되어 비밀을 찾으면 선물을 준다는 이벤트...남자 고객보다 여성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살림에 뭐 하나 보탤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이벤트 응모하고 다른 분들에게도 소개합니다. ^^

 

해당 페이지로 참여하기를 눌러서 참여하시면 됩니다. 간단하게 여러가지 기능을 볼 수 있구요 마지막에 개인 주소 변경과 더불어 SMS, 메일수신에 대한 동의를 누르시면 이벤트 완료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등 상품이 무척 끌리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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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최고의 순간이라고 하면 김연아 선수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함 될 것 같습니다. 뜨겁게 흘러내리는 닭 똥같은 눈문을 보여준 김연아 선수 지금까지 노력해 온 모든 결과를 눈물 한 순간으로 어찌 할 수 없습니다만 그 눈물의 의미 속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수년간의 노력의 결과 한치의 오차없는 경기를 펼친 김연아 선수의 눈물 대한민국은 물론 경기를 지켜 본 여러분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출처 - gettyimages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감독(이하 코치) 지휘봉을 잡고 김연아 선수를 따스하게 격려했던 '브라이언 오서'코치의 믿는다라는 확신어린 미소와 기도, 지도력과 성실함 등이 결실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오서코치가 선수 시절 올림픽에서만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점도 어느정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올림픽 출전 당시 캐나다팀 기수 - 브라이언 오서

 

오서코치는 금메달의 목표와 선수를 최고의 선수로 만드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오서코치는 캐나다의 동계올림픽 선수였고, 캐나다의 국기를 들고 올림픽에 참가 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트리플 엑셀을 완벽하게 소화한 선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런 최고의 조건을 가진 코치의 가르침이 대한민국 김연아선수에게 연결되어 세계신기록이 작성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연아 선수의 실력은 전 세계에서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훌륭합니다. 이런 역량은 갈고 다듬고 노력하는 것 이외에 위기와 돌발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힘들고 지칠때 곁에서 마인드 콘트롤을 해 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달기 어렵습니다. 국내에서의 반응은 한 번 실수로 네티즌의 악플이 쏟아지고 언론의 과대, 과잉보도가 잇따르게 됩니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닌 낙인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

 

앞선 여러가지 여건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김연아 선수의 조력자이자 넉넉한 마음과 인상으로 격려를 했던 오서코치의 공이 크다고 보여집니다. 아사다마오의 코치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스케이트 연맹에서도 어느정도 실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오서코치의 도전은 사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확신이 있어서 보다는 노력해서 얻은 결과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큽니다. 자신의 역량을 자신의 제자에게 직접 투여하고 그 결과를 얻어내는 것. 분명히 쉽지 않은 일 입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아사다 마오'선수의 연기가 최고로 올랐을 때 '김연아'선수의 출전 전에 보여주었던 오서코치의 미소 기억 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출처 : SBS재편지 이미지, 인터넷

쇼트 프로그램 연아선수 출전 당시

 

오늘의 경기에서는 '아사다 마오'선수보다 '김연아'선수가 더 앞선 경기를 펼쳐야 했습니다. 승패의 기술과 연기력에서 사실 '아사다 마오'는 '연아'선수의 적수가 되지 못했지만 앞선 쇼트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연아'의 냉정함이 '마오'에게는 중압감과 불편함으로 자극되어서 자책골과 비슷한 실수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마음의 편안함.

 

큰 경기에서의 프로정신은 국제대회를 휩쓸었던 '브라이언 오서'코치의 조언이 충분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서코치는 한국에서 책을 한 권 발간 했습니다. 바로 아래와 같은 내용의 책인데 책의 내용은 김연아 선수에 대한 내용이 아닌 오서코치의 이야기와 선배 스케이터로서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 낸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책에 서술한 것 이상의 귀감이 되는 좋은 이야기들을 김연아 선수와 나누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낸 것이 분명합니다. 충분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건한 소녀로서 최고 기록을 보유하게 된 피겨 스케이트의 여왕으로 '김연아 선수'가 우뚝 솓았습니다. 그녀는 그랜드 슬램도 달성하게 된 최고의 스타이자 오서코치의 수제자입니다.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 - 10점
브라이언 오서 지음, 권도희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스포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독, 코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거스 히딩크 감독입니다.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트 역사상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히딩크 감독과 같은 역량은 물론 선수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고 강건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한치의 오차가 없으며, 음악과 연기를 동시에 이해하고 소화 합니다. 점프와 스케이팅은 나물랄 곳이 없었으며, 컨디션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데는 마법사가 아니면 불가능 할 정도로 끝없는 관심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통해서 느껴지는 짜릿함은 김연아 선수의 연기로 끝을 맺었지만 수많은 노력을 통한 결실은 훌륭한 지도자를 통해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준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

 

오늘 밤 그간 힘들었던 기억을 털어버리고 편하게 잠들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연아 선수, 대한민국 올림픽팀 파이팅입니다.

 

* 김연아 선수의 뜨거운 눈물...저도 찡하고 눈물이 고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김연아 선수의 세계신기록에 숨겨진 것

김연아 선수를 직접 만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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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몽구(시사블로그)의 눈물은 많은 의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많은 시사블로거, 시사블로그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는 절대로 단시간에 결과를 노출한게 아닙니다. 작년 여름으로 기억되는 '언론인권센터'의 세미나에서 제가 '독설닷컴' 운영자인 고재열 기자에게 질문과 요청을 한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저도 나름의 사회, 정치의 글을 작성하긴 하지만 전문적이다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블로그 달인, 독설닷컴-고재열기자에게 묻다.

모노피스와 고재열기자의 질문과 답

모노피스 - 미디어에 대한 이슈나 주제를 가지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신데 사실 소위 말하는 파 워블로거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블로그나 메타블로그, 다음뷰(전 다음블로거뉴스), 네이버블로그 등을 비판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분명 포털사이트도 하나의 미디어매체로 군림하고 있고, 잘못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에 반해서 이런 비판이 없으니 앞으로라도 비판을 부탁드린다...

 

고재열 - 우선적으로 이런 놀이판이 깨져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 블로그와 블로거들이 발전하는 과정에 있고, 정부의 블로그도 커져가는 상황이지만 이런 트래픽과 관심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발전되어야 블로그 판이 성장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리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블로그는 한마디로 개인미디어의 자격이 없다. 수십명이 운영하는 블로그가 과연 제 색을 가지고 어떤 의견이나 말을 제대로 전달하는지 알 수 없다. 판을 키워나가는데 분명한 것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메타블로그가 중요한 요소이다. 당분간은 이런 비판을 자제할 생각이다.




티스토리를 떠난 이유? 글쎄, 뭔가 문제점을 비판하기 어려운 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 몽구의 운영은 개인이 운영해서는 안되는 아주 경이로운 블로그임에 틀림없습니다. 사회의 기현상?들을 찾아 다니고 국민의 알권리를 전파 해 주는 것은 물론 모른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잘못된 상식을 뒤집는 등 그 역할이 개인 혼자서 일궈내기에는 부담이 많은 운영 방식(기존의 시사블로그+현장취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취재를 통해서 얻은 결과물을 다시 편집하고 블로그에 올리고, 블로그의 기본인 피드백과 트랙백, 의견교환과 답변 등을 합니다.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회사일로 엮인 저의 경우 회사가 바쁜 경우 10일이 넘도록 포스팅을 하지 않은 사례가 있습니다. 내 블로그이기 때문에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정보와 날카로운 비판, 취재 결과 등을 우선하는 시사블로그를 운영하는 경우 블로그 글의 내용에 충분한 검토와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음뷰가 바뀌는 것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시사가 앞단에 나올 때 누렸던 행복감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다음뷰의 운영정책에 목소리도 높이지 못하고 다음뷰가 주는 광고와 트래픽으로 글에 대한 이슈와 트래픽을 경험 했음이 분명합니다.

 

사실 저는 궁금합니다. 그 전부터 문제 제기를 했었던 제대로 된 콘텐츠(블로그 포스트)가 대접을 받고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시사블로그 또는 다른 블로그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 포스트와 블로거를 대접했는지? 만약 파워블로거, 블로그의 위치가 바뀐다면 대안이 있는지? 관심을 갖지 않고 살다가 불이익을 당하면 비판, 비난 하고 말 것인지? 이런 것들이 궁금합니다.

 

블로그는 어떤 트래픽에 맛을 알아 버리면 퇴색해 버리는게 상식입니다. 좀 더 이슈를 찾고 맹목적이고,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들로 빠져듭니다. 물론 시사블로그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심의 정도에 있어서 시사블로그들의 바쁜 일상때문인지 몰라도 덧글과 트랙백을 선뜻 건네는 파워블로거는 많지 않습니다.

 

직접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비정규직 문제가 언론보도 시작되는 것이 한나라당, 이명박정부의 "미디어법"때문인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언론노조의 미디어법 반대 투쟁의 투쟁동력을 이끌기 위해서 민주노총의 산하조직으로 볼 수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을 국민에게 이끌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직접 더 큰 권력에 싸워야 하는 언론노조의 여론몰이로 볼 수 있는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은 절대권력을 갖지 못합니다. 시사블로거도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어려운 환경과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을 갖고 방문자가 적은 블로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좋은 글이면 박수치고 추천해야 합니다. 지금 다음뷰(구 블로거뉴스)가 아주 평범한 메타블로그의 수준으로 가고 있는 상태이고, 문제, 비판, 비난에 대한 철저한 입막음을 함과 동시에 그 피해는 시사블로거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시사블로거, 시사블로그가 잘 나갈 때 관심 받지 못한 블로그가 존재 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구글의 서비스인 텍스트큐브로 이사를 한 이유 중 큰 이유가 다음뷰, 티스토리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해 보고자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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