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에 대한 명상

2007.12.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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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동두천





































신해철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하루하고 반나절 정도가 필요하다.

그는 나의 신이었고, 위대한 음악의 전도사였으며, 꿈을 꾸게 해 준 장본인이었기에...

그를 10년만에 만났던 2004년 동두천락페스티벌의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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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동두천. 그도 나이를 먹더라...간주 부분의 힘들어 하는 모습

 










































그는 열심히 노래했지만 체력과의 싸움이 시작된 듯 보였다.

몇 곡 부르지 않았지만 숨을 헐떡이는 그를 보았고, 그는 내내 내 카메라를 교묘하게 따돌렸다.

아쉽게도...그의 사진은 에러가 난 하드디스크에서 잠들어 있다...

 

신해철 재즈앨범과 관련된 인터뷰 (YES24 진행)

 

당신은 신해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음악을 하는 뮤지션, 그 이상의 의미라는 점이다. 가수 유니의 죽음으로 인터넷상의 악성 댓글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디지털 음원 시장의 확대가 음악시장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을 때 그의 발언 하나 하나는 사회 전체로 파장되는 힘을 지니며 다가온다. 모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안면인식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 고백 아닌 고백은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될 만큼 신해철은 어느덧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어쩌면 이는 그가 몸담고 사는 사회에 대하여 많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또 하나. 어떤 문제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고민에 대한 답을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구사할 수 있는 그의 지적 능력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해철이라는 사람의 핵심은 역시 음악. 그가 돈과 시간을 들이고, 사람들을 모아 일을 도모하고, 자아 실현을 이루는 무대이자 장이 바로 음악이다. 마치 부정과 부정의 연속이었던 서양철학사의 한 장면을 재현하듯 1990년대 최고의 록밴드 넥스트를 해체한 후 "레코딩 테크놀러지"를 배우고 실험하여 두문불출하던 십 년. 그는 그 십 년을 딛고 최근 통산 25번째 앨범이자 솔로 앨범인 『The Songs For The One』을 발표했다. 컴퓨터에 의한 편집과 짜깁기가 창작의 주요 방법이 되다시피 한 현 가요계에서 초호화진용의 28인조 빅밴드와 보컬을 한 번에 동시 녹음하는 초강수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앨범이다.

넥스트가 아닌 신해철의 앨범 『The Songs For The One』

"이번에 나온 앨범이 상당히 로맨틱하고 부드럽습니다. 넥스트의 실험정신 가득한 음악을 좋아하던 기존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음악을 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음악을 하시나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죠. 사람들 요구에 따라가자면 끝이 없어요. 대중들이 요구하는 것과 너무 동떨어지는 것을 해도 음악을 못하겠지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 통산 레코드 판매량이 육칠백만 정도인데, 앨범 세 장 내고 육백만 장 파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 앨범은 지금도 팔리거든요. 꾸준히 지속적으로 활동을 한 셈인데, 순간 순간 사람들이 지금쯤이면 이런 것을 기대할거야… 그런 것들이 안 읽히는 것은 아니에요.

음악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려야 할 때에는 그 기대에 부응해서 음악을 하죠. 하지만 사람이 어느 정도 먹었으면 배가 불러야지, 배 터질 때까지 욕심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러려면 상업적 욕심보다는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맞겠죠.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도 듣는 사람은 편안하게 들을 수 있지만 만드는 사람은 편하게 만든 것은 아니거든요. 만드는 과정도 어떻게 보면 넥스트가 했던 작업에 비해 고난이도가 많았어요. 사람들은 왜 '넥스트 6집 왜 안 나오느냐, 나와서 왜 시원하게 안 때려부수느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번에 이걸 해야겠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뭐 그런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죠."


"앨범 재킷의 'Thanks to'에서 직접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아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많이 어필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거든요. 그런 점을 굳이 드러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음악이라는 것이 삶의 반영이니까…. 나와 우리 집사람이 꽤나 로맨틱하게 살고 있다는 삶의 증거랄까? 순서가 거꾸로인 것 같아요. 그러려고 만든 것은 아니고, 그렇게 지내니까 이런 음악이 나온 것이 아닐까. 아마 제가 독신으로 살고 있거나 그랬으면 이런 게 안 나왔겠죠?"

"결혼 생활이 음악에 끼친 영향이 있나요?"

"글쎄요…. 음악 자체에 크게 영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내 삶이 결혼을 함으로써 변하는 부분이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넥스트가 결혼을 하든, 돈이 있든 없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거라면, 변화한 것이 바로 이 앨범이겠죠. 넥스트에서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My Way', 'Moon River' 등 익숙한 곡들 위주로 편성되었습니다. 곡 선정은 어떻게 하셨나요?"

"무난하고 쉽고 즐거운… 그런 느낌들? 그런 것에 충실했고 미주알고주알 따지지 않았어요. 내가 불러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좀 더 집중했습니다. 제가 자기 전에 코냑 한 잔 마시고 자는 습관이 있는데 그때 내가 무엇을 들었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쓰임새가 되었으면 해서 만든 거예요. 밤에 집에 들어와서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놓고 술잔 하나 들고 있을 때 듣든지, 와이프와 창 밖 바라보며 춤출 때 듣든지, 자기 전에 듣든지… 그런 용도로 만든 거라 삶의 치열한 고민을 통해 나온 것은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웃음)"


"이번 앨범은 특이하게 보컬만 하셨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해철은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하니까. 음악하는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겠지만 일단 제가 그렇거든요. 밴드 팀원과 역할 분담할 때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보컬을 맡게 되었고, 음악을 하는 형식적인 방법이 내가 직접 보컬을 하는 거였기 때문에…. 음악하는 사람 중에서 보컬 파트에 저만큼 애착이 없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넥스트에서 노래할 때는 초긴장 모드에서 하는 거의 개노동인데 친구들과 술 마시면서 가라오케에서 노래 부를 때는 엔터테인먼트잖아요. 나한테도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작의 부담은 덜어내고 내게 휴식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휴식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이번에 노래할 때 기분 좋더라고요. 선천적인 내 목소리는 이런 거구나, 라고 새삼 알기도 했고요. 그런대 한 샷 녹음으로 가야 하니까 그게 좀 머리 아팠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면에서는 이 앨범이 공격적이에요. 듣는 사람은 편하게 듣지만 국내 풍토에서 빅밴드 어레인지먼트에 도전하고, 70년에 이후에 거의 폐기되다시피한 한 방 원샷에 도전하고 이런 것이 어떻게 보면 이 악물고 한 거였거든요. 요즘 나오는 조립식 음악에 대해서 느끼는 짜증과 반감의 표현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보면 신해철의 공격성이 완전히 없어진 앨범은 아니에요."


이번 앨범은 조립식 음악에 대한 반감의 표현

"그 공격성이 에둘러서 표현된 거네요."

"요즘은 음반 시장이 침체되니까, 음악 편성 자체가 위축되고 축소되잖아요. 그래서 지난 번 넥스트 5.5집에서는 70인조 오케스트라가 들어가고 이번에는 28인조 빅밴드 스윙 오케스트라가 들어가고 돈을 쳐바른 건데… 어디서 돈이 났느냐는 미스터리로 남겨두기로 하고(웃음) 그런 면에서 반발 모드예요. 원샷으로 가야 한다고 편집증적으로 녹음한 것도 그렇고."

"원 샷 녹음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작비 때문에?"

"그게 기본적으로 재즈라고 생각하니까요. 재즈라는 장르 자체가 노래를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법도 없고, 또 재즈라는 음악 자체를 이렇게 해야 한다는 법도 없으니까. 내 맘대로 꼴리는 대로 하면 그만인데, 그래도 뭔가 살아 움직이는 에너지를 표현하지 못하면 그것은 재즈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한 방에 거의 라이브 테이크 잡듯이 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결정이 났고 또 제가 딴 맘 못 먹게 박권일 프로듀서라고 다른 프로듀서에게 맡겨서요. 곳간 키를 넘겨주었으니…. 사실 녹음 끝나고 몇 개는 2절만 다시 불러보자고 빌었다니까요. 뻰찌 먹었잖아요.(웃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

"이번 작업 하면서 배운 게 있었나요?"

호주에서의 녹음 현장

"제가 레코딩 테크놀러지 배우려고 영국에 갔었죠. 저는 특화된 걸 공부한 거예요. 록 쪽 레코딩하는 방법을 주로 공부했거든요. 재즈 쪽은 녹음할 때 마이크를 어떻게 설치하는지, 어떻게 녹음을 하는지 그런 것은 잘 몰랐는데 가서 보니까 마이크 몇 개 설치 안 하더라고요. 너무나 허무하게…(웃음) 연주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볼륨 조절 다 하고, 그런 것을 보면서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우리나라에서 녹음하면 반주 녹음이 다 끝난 상태에서 MR을 들으면서 노래를 넣는 형태인데, 이번 같은 경우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에 연주자들과 내가 눈이 마주치잖아요. 내가 노래가 빨라진다거나 느려질 때 연주자들을 보는데, 연주자들이 너무나도 여유가 넘치는 거예요. 악보도 안 보고 제 얼굴을 보고, 제 노래 스타일 들어보면서 맞춰주더라고요. 그런 교감이 가능한 거죠. 그리고 2007년 지금에 와서는 이것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레코딩 테크놀러지인 셈이죠. 지금 시대에는."


"타이틀 곡을 장미로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Thank you and I love you'가 좋았습니다. 특히 가사가 좋았는데요. 이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쑥스러워서요. 간지럽더라고요. 내가 만든 노래 중에 제일 닭살인 거 같아요. 부르면서도 닭살이 돋아서 방송에 나가서 부르는 것은 무안하고 창피해서 못하겠다 했죠.(웃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는 장난기가 느껴질 만큼 낯간지러웠는데, 그 노래를 포함시킨 이유가 궁금합니다."

"장난기예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는 마지막까지 넣을까 말까 언쟁이 있었던 곡인데… 왜냐하면 노래 제목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지만 가사는 지극히 마초적이에요. 그런 것이 좀 언짢아서…. 가사를 듣다 보면 짜증이 확 나요.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 이 부분에서는 '이것은 아내에게 바치는 것을 가장한 마초의 잘난 척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당시는 그런 시대였고, 또 이 노래 말고 우리나라에서 와이프를 대상으로 한 노래가 트로트 말고는 없어요. 거의 유일한 곡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가, 하수영 씨가 저음 가수였잖아요. 우리나라에 저음 가수가 거의 전무해요. 그 이유 때문에 노래 제목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니까 넘어가자… 해서 넘어갔죠. 저도 선곡하면서 다시 느낀 건데… 정말 마초적이더라구요. 불쾌할 정도로."


실패하는 과정에서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1월 29일을 발매 예정일로 잡으셨는데 일부 팬들은 '정말 그때 나올까? 하고 믿지 않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한 번도 제 날짜에 앨범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일 텐데, 왜 그렇게 매번 앨범 작업에 시간을 끄셨나요? 완벽한 사운드에 대한 고집 때문에?"

"사운드에 대한 고집도 고집이지만 장기 녹음에 들어가면 중간에 팀원들이 나가떨어졌다가 다시 단합해서 목표로 다가갔다가 신이 나서 녹음을 했다가 또 페이스가 쳐졌다가 그런 것을 반복해요. 수십 번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앨범 나오기 직전에는 모두들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까지 가거든요. 잘못하면 그런 것은 팀 해산 요인까지 되어버려요. 상업적인 결과로 보면 항상 단기전이 좋았어요. 이주일 만에 만든 앨범, 이런 것이 항상 앨범 판매고가 높았고구요. 지금도 제 주위 친구들은 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냥 앨범 마감일까지 아무것고 안 하고 놀다가 딱 일주일 전에 시작해서 일주일 만에 끝내고 더 이상 손대지 말라고요. 그런데 패턴으로 보면 후반기로 오면 올수록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죠.(웃음)."

"작업 스타일이 어떠시기에 그런 거예요? 기한 없는 프로젝트인 건가요?"

"기한도 없고… 사실 딱 십 년이 되었네요. 넥스트가 해산한 지. 나머지 십 년 동안은 음악을 위해서 레코드 테크놀로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고, 레코딩 테크놀로지를 배워가면서 그걸 실험하기 위한 곡들을 만든 십 년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당연히 대중들 입장에서는 점점 듣기가 힘들어지죠. 어떤 곡들은 좁쌀 하나 하나 색칠해서 63빌딩만한 그림을 만든다, 라는 식의 작업이여서 공동작업자들이 정신병원에 가는 것이 낫지, 이런 작업을 어떻게 하냐… 그런 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했으니까. 이제 한 시즌 끝났다고 생각하고 쉬어가면서 이번 앨범 하나가 나온 건데… 어떻게 보면 십 년 동안 제가 공부한 것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뜻이기도 해요. 한 방으로 가, 편안하게 가고…. 다음 넥스트 앨범도 아마 원 샷, 원 테이크 녹음으로 갈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요?"

"기본이 가장 중요한 거라는 것을 실패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 같아요. 결론이 안 나면 끝까지 파는 건데, 결론이 나올 때까지 공부를 했어요. 내가 레코딩 엔지니어로 다른 사람의 앨범을 믹싱할 수 있고 레코딩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공부했으니까. 거기까지 가고 나니까 결론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곡이 좋아야 하고. 멜로디 좋아야 하고,. 가사 좋아야 하고, 노래 잘해야 하고… 드럼 베이스 연주 잘하면 되는 거지, 그거 이상, 그 이하 방법이 없다, 잘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라는 거예요."

죽어도 베드로는 못 되는 성격

사실 그것을 십 년 전에도 몰랐던 것은 아니에요. 기필코 직접 확인해 봐야 하는 거죠. 성질 머리상. 저는 '나 믿고 따라와라' 하면 '네!' 하고 따라가는 베드로는 죽어도 못 되는 거예요. 예수가 부활해서 눈앞에 나타났는데 직접 손으로 확인해보고 믿는 도마(Thomas) 정도는 될지 몰라도요. 곡 좋아야 하고, 연주 좋아야 하고… 그런 것이 맞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외국 음악 들어보면 뭐가 휙 하는 소리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알아야겠고 양놈들은 드럼소리 팡 하면 저기까지 들리는데… 그런데 왜 목소리 안 먹어 들어가지? 그것도 알아야겠고, 미치겠는 거예요.

공부해 보니까 양놈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더라고요. 진짜 뮤지션들은 음악 즐겁게 하고 평소 생활도 즐겁게 하고 음악 즐겁게 만들면, 내가 궁금해하던 소리가 뒤에서 날아오고, 그런 것들을 프로듀서가 담당하는 체제인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프로듀서 체제가 아니니까, 내가 직접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잖아요. 제가 프로듀스해주는 후배 밴드들에게 '너네는 좋은 멜로디와 가사만 만들어, 나머지는 내가 다 해줄게' 그래요. 기껏 죽어라고 공부해서 남 좋은 일 해주고 있지요. 내 후배들은 덕 많이 보는데 저는 사실 공부한 덕 많이 못 보고 있어요. 손해만 좀 봤지요.(웃음)"


"배워서 남 주고 계시니까 공부 잘한 거 아니에요?"

"특히 락 프로듀서는요, 외국 같은 경우는 사운드 믹스까지 끝내는 것이 프로듀스의 일이거든요. '이렇게 만들어 저렇게 만들어 그렇게 지시해서 끝내는 것이 아니고. 사운드 디자인 개념을 머릿속에 갖추고 마지막 기계를 만지는 과정까지 프로듀서가 하는 일인데 우리나라에는 그게 없으니까 그걸 해주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어요. 그 소원은 이룬 셈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왜 이렇게 쓸쓸해 보이죠?"

"후진국에서 태어나 음악하는 뮤지션의 고통이랄까…. 우리 시대의 뮤지션들은 다 그 고통을 겪었으니까…. 늘 엔지니어들과 의견 차이로 싸우고…. 엔지니어들은 나이가 더 많고 뮤지션들은 빨리빨리 새로운 음악을 흡수해서 욕구는 더 높고…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죠. 그래서 진짜 춥고 배고프게 공부했는데 그렇게 공부해서 들어왔더니 많은 젊은 엔지니어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왔더라고요. 그런데 이것들이 내가 말한 것이 뭘 의미하는지 다 알아요. 유학 괜히 간 것 같아.(웃음)"

 

옛날에는 연예인을 업신여기는 풍토였다

"음악 하시면서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후회요? 근본적인 후회는 없었던 거 같아요. 짜증은 있었어요. 내가 이 짓을 왜 했을까… 잠시 그런 적은 있었는데 진짜 내가 왜 했을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 오히려 후회나 그런 것이 닥치면 거꾸로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아요. 밴드 하려고 음악 했는데 밴드 할 환경이 안되면 음악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며 기회를 보자, 이래서 소위 인기가수가 되었잖아요. 인기가수가 되어서 방송국에 가보니까 엿 같더라고요.."

"어떤 점이요?"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를 안해요. 특히나 신인가수 나부랭이한테는. 신인가수뿐만 아니라 방송국에서 일을 하는 피디나 스탭들이 연예인을 굉장히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풍토였어요. '내가 왜 이걸 시작해서 이 꼴로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내 끝까지 살아남아서 저 사람들 무릎 꿇는 모습을 보겠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었어요. 그런데 방송국에서 용필이 형이 지나가면 그 피디들이 다 설설 기더란 말이죠. 나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저렇게 될 거야! 그랬는데 물론 용필이 형 만큼은 아니지만 요새는 방송국 가면 국장님이 나와서 커피 타주고 그래요. 그런데 슬퍼요. 그래도 옛날이 더 좋았어요.(웃음)"

스타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

"신해철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니, 참으로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말씀을 하셨더군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신해철이라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데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요구에 다 응대할 만큼 신해철은 마음이 좋은 건가, 하고요"

"네. 난처한 문제예요. 성격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의무감 같은 것에 묶여있거든요. 기본적인 성격 자체가 손해볼지 뻔히 알면서 헬프를 치면 못 이기고 나가게 돼요.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온갖 군데에서 떠들고 있는 모습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 아시죠? 자기 음악을 하는 데에는 하등의 도움이 안 돼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신가요?"

"그렇기도 하고, 스타라는 것이 스스로 빛을 내지는 않거든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에 불과하고, 일시적인 건데… 단지 스타가 할 수 있는 일은 반사의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들이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 각도를 어느 쪽으로 반사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조절하는 것이죠. 가급적이면 자기가 빛을 반사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것을 소수계층에 대한 발언이라든가, 그런 것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좋고, 여러 가지로 해야 하잖아요. 그래도 자기 밥그릇에 대해서는 거의 발언 안 했어요. 음악계에 대해서는 많이 발언 안 하려고 했어요. 지난 번에 <백분 토론> 나간 것은 예외였지만요. 그때도 이동통신사에 대한 얘기할 때는 빠졌어요. 살면서 나불나불하게 되네요.(웃음)"

"뮤지션들은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신해철 씨는 참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간극 때문에 무척 고독하시지 않을까 상상해봤어요."

"인간이야 다 외롭고 고독하겠죠.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대가족으로 살아서 고모, 삼촌 아홉 명이랑 살았어요 우리집에서 최고의 죄는 냉장고에 있는 콜라를 마지막 바닥이 보일 때까지 마시는 거였어요. 입에 뭐 한 모금 들어갈 때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았죠. 그러니까 밴드로 음악을 하는 것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회사를 하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여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딴따라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도록 블록 지은 곳도 분명 있구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투적으로 반발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을 유일하게 들락거리는 사람이 아내와 엄마, 두 명 정도랄까? 거기를 들락거릴 수 있었기 때문에 제 아내가 된 것일 테고. 그렇죠 뭐… . 인생살이 다 쓸쓸한 거죠."

이제는 더 이상 정치 참여하는 의리 남아 있지 않다

"지난 대선 때 선거 운동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필요성을 또 느끼신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더 이상 필요성을 느낄 것 같지 않은데요? 그것만으로도 제 인생은 충분히 망가졌고, 더 이상 망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에는 개인적으로 제가 나서지 않는 것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느냐 안 미치느냐를 떠나서 나 자신의 정체성이 크게 문제가 되는 시점이었어요. 제가 87학번인데 그때는 발레 하던 애도 돌 던지고, 체육과 학생들도 데모하러 나오고 그런 시절이었잖아요. 386의 끝자락이었고 6·10 항쟁은 미완성으로 끝났고….

신해철이 좌파나 우파냐를 떠나서 그 당시에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는 좌파가 좌파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던 자유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리는 늘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지도 모르고… 노무현은 제게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이회창이 집권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바뀌고 있는 부분도 있고 그만큼 진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타락해가는 속도도 빠르고… . 정치판이 이판사판인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대선 때에는 386의 막내 순번으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의리가 남아있었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부터는 제게 그런 의리가 남아있지 않아요. 제가 더 이상 움직일 이유도 없는 거고. 가뜩이나 '저 새끼 정치할 거다'라는 소리 듣고 있는데 이 정도로 의심받는 것으로 충분히 짜증나요. 그래서 그 얘기 한다니깐요 나 아침에 못 일어난다고,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요."


"하시면 잘할 거 같은데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정치가들은 어느 정도 권모술수를 굴릴 수 있어야 하고 그것도 능력이라고 보거든요.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스트레이트해요. 될 리가 없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시작한 음악인데 정치를 하기 위해 음악을 포기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내기 정치한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도 뇌졸중으로 쓰러지실 걸요."

"이승환 씨는 얼마 전 더 이상 CD로 음반을 내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세상에 CD를 구입하는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있을 때까지 CD를 낼 거예요. 그리고 CD라기보다는 앨범이라는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데… 저는 CD가 사라진다는 위협보다는 앨범이 사라진다는 위협에 더 의미를 두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싱글로 가볍게 한 곡씩 툭툭 내는 것도 즐겁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넥스트가 해야 할 일은 앨범 전체로 평가받는 앨범의 음악을 만드는 겁니다. 마지막 CD를 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보고 음악을 만들어야죠."

"음악이라는 것을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 그릇에 무엇을 담고 싶으세요? 물론 그릇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옛날에는 그 그릇 안에 우리나라 현재 가요계가 아직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고 싶었어요. 너무 앞서가는 것도 아니고 현재 나와있는 것도 아닌 반 발짝씩 앞서가는 것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까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그릇 자체가 이상하단 말이에요. 내용을 아무리 열심히 담아도 그릇 때문에 안 돼요. 그릇 만드는 기술을 배우러 떠난 거죠. 지금은 그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어져 버렸어요. 옛날에는 음악을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했고 절벽에 서 있는 심정으로 음악을 했는데 요즘에는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살고 밥 먹고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뭔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며… 담아내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다행이고, 싫다고 하면 말라고 하고, 뭐 이렇게 변했죠. 그러다 보니 이 앨범도 나온 거고요. 내가 결혼했다고 마누라랑 세탁기 광고에 같이 나가고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가정생활을 하고, 내 인생의 일정 부분 그것이 중요한 게 사실인데, 저는 제 가족이 매스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철저히 기피하잖아요. 하지만 제 팬들은 제가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할 테고…. 그들에게는 결혼식장에 카메라가 들어오게 하고 내 집에 카메라가 들어와서 보여주는 방법이 아니라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저 행복하게 살아요'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평소 여가 생활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거의 없어요. 여가라면 몽땅 다 여가겠죠? 음악 하는 게 일이니까…. 음악이 일이 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거든요. 회사를 만든 다음부터는 서류 결제서부터 업무 지시, 그런 것이 정말로 일이더라고요. 냉정한 부분이고….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잔인해졌어요. 옛날 같은 경우에는 같이 일하는 매니저를 해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였거든요. 사람을 패고 들어와도 뒷일 책임지며 끝까지 가는 거였는데 회사를 만들고 나서는 모자란다 싶으면 가차없이 그날로 모가지 날려 버려요. 그러니까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세계가 두 개가 있죠. 가정과 넥스트. 넥스트의 보컬로 들어갔을 때에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죠. 그것도 아주 웃겨요. 후배 애들이 음악 만들어오면 '너네 지금 떠야 되거든? 너 히트곡 몇 개야? 이런 식으로 해도 돼?' 이렇게 하고, 넥스트끼리 모였을 때는 '히트곡? 웃기고 있네. 십 분짜리 노래 네 개로 달려! 우린 그런 거 없어!'(웃음) 이중생활이에요."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하고 싶다

"싸이렌 엔터테인먼트는 왜 만드셨나요?"

"지금 얘기하면 너무 이른 감이 있는데…. 이 회사가 만일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근본적인 시스템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한 뮤지션을 프로듀스해서 성공시킨다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저는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시스템에서 오고 있다고 보거든요. 방송과 매스미디어의 구조라든가, 공연장 인프라…. 우리나라 음악 전체 산업과 관련된 인프라의 문제. 이 모든 것이 통째로 뒤집어져야 하는데 그게 가만히 있다고 뒤집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뒤집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에 괜찮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싹들이 밟혀버려요. 그런 시스템이 빨리 교체가 되도록 촉진을 하는 역할을 하고 그동안에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인큐베이팅해서 보호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이런 것이 신해철 개인의 차원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자본을 끌어들이고 매스미디어와 경쟁을 하고 이런 차원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대량의 뮤지션들을 인큐베이팅할 수 없더라고요. 나는 그런 목적으로 회사를 만들지만 자본가들은 이윤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인데, 그럼 나는 그 사람들에게 이윤을 만족시켜줘야 하고 뮤지션 집단에게는 자기들의 자아성취를 이뤄져야 하고, 그러면서도 한편 그 사람들의 밥줄을 만들어줘야 하고…. 아주 어려운 입장에 처한 거죠.

가만히 있기는 싫었어요. 공부를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영국, 미국 양쪽 시스템을 공부하고 들어왔는데 결론은 시스템의 문제더라고요. 별개의 얘기긴 한데 아무도 우리나라 대중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잖아요. 토양이 엿 같은데 여기서 무슨 열매가 열리기 바라요. 매스미디어의 문제, 뮤지션의 문제 등 이게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저는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대중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분석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사실은 제일 중요한 문제일텐데….

기본적으로 국민성이 나쁘지는 않은데, 뒤틀려 있어서…. 그렇게 얘기하면 밑도 끝도 없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나라 음악계가 괜찮은 토양으로 자라나던 70년대 시절 박통이 대마초 사건으로 우리나라 음악계를 박살낸 것. 한 번 뒤틀린 풍토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90년대 보이던 변화는 디지털 시대가 개막되면서 한방에 날아가고…. 음악하는 사람들은 죽겠는 거죠. 될 만하면 뽀개지고….(한숨)"


"건강하셔야 계획하는 일을 다 하실 텐데요. 건강은 어떠세요?"

"건강은 나이 먹을수록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십 대가 약골이었고. 그 당시 넥스트 콘서트 할 때는 한 시간이 뭐야… 삼십 분 넘어가면 헐떡 댔어요. 지금은 세 시간이 넘어가도 대기실에서 신나게 뛰어다니잖아요. 나이 먹어가면서 운동하고 꾸준히 관리해서 그런지 건강은 점점 좋아져요."

"원래 타고난 몸이 좋으신 거 아닐까요?"

"제 나이 되면 점점 파워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오히려 폐활량은 늘어났어요. 이십 대 때에는 너무 막 살았던 거 같아요. 관리를 안 한 거야….(웃음)"
돌 맞을 각오로 쓰는 에필로그

에필로그 -

신해철이 만든 회사 싸이렌 엔터테인먼트에 있는 그의 방. 책이 참 많았다. SF마니아답게 영화 <반지의 제왕>이 개봉하기 전 출간되었던 『반지의 제왕』 세트를 포함하여, 지금은 절판된 수많은 SF소설들, 만화 『캔디 캔디』 애장본을 비롯한 만화. 한국사, 서양사, 미시사, 철학서, 사회과학서를 넘나드는 인문학 서적. 그리고 일명 빨간 표지로 유명한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음악에 가사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고, 작곡가이기도 하고, 대중들을 움직이는 웅변가이기도 하고, 밴드라는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이기도 하고, <고스트네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필두로 세력화하고 있는 '교주'이자 '마왕'이기도 하고. 이제는 음악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고자 음악 산업 시스템 자체를 만들고자 하는 설계자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이토록 대단한 '그'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질문 질문 하나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는지, 어쩌면 그렇게 풍부한 비유와 예시를 곁들인 화법으로 대화 내용 자체를 격상하는지,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 그의 말마따나 자신감과 자기 확신 없이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을 텐데, 그가 이뤘고 앞으로 이룰 업적과 성취를 논하기 이전에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멋진 남자이며,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진심으로.


사진 출처 : http://raysoda.com/boa
인터뷰 출처 : YES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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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ebsquare.tistory.com BlogIcon 호호수지니 2007.12.27 10:34 신고

    헉..길다;;; 신해철을 알게된게.. 아마도 아기천사 라는 앨범을 구입하면서..
    거기에 실린 음악 몇곡을 무한궤도에 신해철이 참여했는지.. 리메이크를 했는지..
    알게되면서 였던;;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기천사가 뜨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었던..^^

  2. Favicon of http://monopiece.tistory.com BlogIcon monopiece 2007.12.27 16:08 신고

    안녕하세요. 수진님...^^
    아기천사의 땜방으로 신해철씨가 참여하면서 불렀던 곡이
    '슬픈 표정 하지말아요'로 기억됩니다...
    재밌는 사실은 무한궤도와 015B와의 관계이기도 하지요.
    무=0 , 한=1 , 궤도 = OB(5B) 라는 해석이 됩니다.
    즉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다른 팀이란 해석이죠...^^

  3. Favicon of http://wenley.tistory.com BlogIcon wenley 2008.02.19 15:29 신고

    트랙백 보고 왔습니다. 저의 경우 마왕빠도리 라고 불러도 전혀 기분나쁘지 않은 사람중 하나 인데요. 확실히! 괜찮은 뮤지션 같습니다. 근데 이젠 좀 앨범좀 -_-;;; 내줬으면 하는데용..

    • Favicon of http://monopiece.tistory.com BlogIcon 장대군 monopiece 2008.02.19 18:34 신고

      반갑습니다...wenley님...^^
      저도 예전에는 정말 무척 좋아했던 뮤지션이고 음악에 도전 하려고 했을 때 도움을 많이 얻기도 했습니다.
      물론 해철님은 절 모르시지만 말이죠...

      재즈 앨범은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좋다는 의견보다 나쁘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 같더라구요..허허

      때가 되면 발표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일때가 많으니까 조금 기다려 보죠..

  4. Favicon of http://zepp.tistory.com BlogIcon rock사랑 2008.02.23 14:21 신고

    스스로 하고싶은 음악 한다는데야 누가 말리겠습니까마는...
    솔직히 재즈는 오버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요롹페2004년...
    모노피스님과 같은 자리에 있었군요...^^;;
    집이 의정부다 보니 소요롹페는 1회부터 빠짐없이 갔었습니다...

    3년전부터 중국에 있는지라 이제 좋은 공연 찾아다니는 즐거움이 사라져버렸습니다...ㅡㅜ

    • Favicon of http://monopiece.tistory.com BlogIcon 장대군 monopiece 2008.02.25 09:09 신고

      2006년에 저도 의정부 근처...지금 방학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작년에는 언제하는지도 모르게 동두천락페스티발이 진행되어서 아쉬움이 남네요.

      중국에는 일때문에 들어 가셨나요? 아니면 아예 한국을
      떠나셨는지요? 아무튼 집떠나면 고생이라는데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5. 그레이트 자원! 정보의 재산을 공유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난 그냥이 시작 내가 더 잘 알아가는거야! 건배, 좋은 일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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