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이 지난 22일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1995년 종묘,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 대장경판이 등재된 이래 국내 11번째다.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전된 남한산성은 자연지형을 활용해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를 잘 나타내고 있고, 다양한 군사 방어술을 집대성해 지어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BS ‘한국기행-성곽기행'편은 남한산성과 함께 고려 대몽항쟁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강화산성, 조선 시대 정조가 개혁을 위해 건설한 신도시이자 1997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 도성을 지키던 북쪽 천혜의 요새인 북한산성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세계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는 지금, 남한산성을 비롯한 산성들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다.

 

조선의 자주 정신을 담은 군사행정도시, 남한산성에서 부터 백성들의 애환이 담긴 성인 강화산성, 정조의 미려(美麗)한 계획도시 수원화성, 북한산이 품은 천혜의 요새, 북한산성까지 수백 년을 견고하게 지켜온 든든한 방패, 성곽(城郭)을 따라 역사의 현장 속으로 함께 떠난다.

 

 

 

*방송일시 : 2014623() ~ 627() 오후 930

1. 지혜로 쌓은 도시, 남한산성 - 623일 오후 930)

 

도성을 지키던 남쪽의 방어기지,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성벽 높기 7.5m, 둘레 11.7km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원형이 잘 보전된 성이다.

 

이 남한산성이 올해 6,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었다.

 

남한산성은 유사시를 대비한 임시수도였으며 종묘와 사직을 지닌 행궁을 갖춘 군사행정도시였다.

또한, 임금과 신하뿐 아니라 주변 백성들까지도 피신할 수 있도록 성 안에 행궁과 함께 수천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의 진정한 가치는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느낄 수 있다.

 

인조가 머물렀던 행궁을 비롯해서 수백 년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는 병자호란으로 참담했던 역사를 담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남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전투 지휘소 수어장대와 적이 오는 길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화포를 설치했던 제1남 옹성 등 성곽에 쌓인 돌 하나까지도 그 시절의 지혜와 무게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2. 성곽 길 따라 삶이 흐르고, 남한산성 - 624일 오후 930

 

남한산성을 품고 있는 곳, 경기도 광주시. 이곳에서는 남한산성의 화려했던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남한산성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음식 효종갱’. 사골이나 갈비, 전복, 채소 등을 넣고 밤새 고아내는 이 해장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음식이자, 임금에게 진상할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조청이라는 특별한 재료를 넣고 담그는 전통주, ‘남한산성 소주’. 효종갱을 먹기 위해 남한산성 소주를 마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올 만큼 효종갱과 남한산성 소주의 궁합은 환상이었다고 한다.

 

남한산성 주변을 걸으며 마주하게 되는 엄미리의 독특한 장승. 세모 모양의 눈과 수염이 달린 이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 역할 뿐 아니라 길목을 드나드는 많은 사람의 이정표 역할도 톡톡히 했다여전히 엄미리 사람들은 2년에 한 번씩 장승을 새로 만들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남한산성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기행으로 함께 가본다.

 

 

3. 나들길 따라 만나는 역사, 강화산성 625일 오후 930

 

외세의 침략에 끝까지 항쟁한 호국의 고장, 강화도. 강화도는 한양으로 가는 통로였기에 견고하고 단단한 섬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성의 방어기지였던 강화산성이 있다강화산성은 고려 시대 외세의 침입을 대비하면서 완성된 성이었지만 몽골과의 화친조약에 의해 백성들의 손으로 허물어야만 했던백성들의 피맺힌 역사를 기억하는 성이기도 하다그뿐만 아니라 강화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53개의 돈대는 그 시대의 치열했던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백성들의 한을 담은 성터 다지는 소리’. 산성과 돈대를 쌓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백성들의 소리가 여전히 강화도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강화산성에 울려 퍼진다.  하지만 강화도는 이제 아픈 역사만을 안고 있는 곳이 아니다.

 

강화도에서 나고 자란 선비, 화남 고재형의 심도기행을 바탕으로 정비된 강화도 나들길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여유를 선물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만나는 길, 강화도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4. 성벽너머 아름다운 시간이 흐르고, 수원화성 - 626일 오후 930

 

조선시대 정조가 개혁을 위해 건설한 신도시, 수원화성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은 미려(美麗)함은 곧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정조의 표현대로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곽 중 성곽의 꽃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성이다.

 

성곽과 행궁 뿐 아니라 동북공심돈, 화홍문, 방화수류정 등의 군사시설까지도 그 아름다운 자태와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원화성 곳곳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효심과 백성들을 사랑했던 위민정신의 자취 또한 찾을 수 있다.

 

수원화성의 아름다움은 성곽 내의 행궁동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때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에 생긴 개발 제한으로 사람들은 떠나갔고번성하고 풍요로웠던 마을은 회색빛의 암울한 모습으로 변했지만 화성 안을 지키려는 손길들이 회색 벽에 벽화를 그리면서 행궁동은 다시 색을 찾았고, 수원의 인사동이라고 불리는 공방거리와 함께 수원화성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되고 있다수원화성의 미()를 찾아가는 기행으로 함께 가보자.

 

 

5. 봉우리가 만든 천혜의 요새, 북한산성 - 627일 오후 930

 

 

도성을 지키던 북쪽 천혜의 요새, 북한산성북한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골짜기가 많아 외적의 침입이 쉽지 않았고 높은 산지는 성곽을 쌓지 않아도 자연 그대로 산성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북한산성은 조금씩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유사시 임금의 피난처 역할을 해야 했던 북한산성 행궁은 1715, 호우에 의해 매몰 되었고, 현재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행궁과 가장 가까운 사찰이었던 중흥사는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산성을 축성할 당시, 승려들은 축성을 도울 뿐 아니라 주변 사찰에 머무르며 북한산성을 지켰고, 중흥사는 사찰들의 총지휘 본부였다.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 북한산은 자랑스러운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그리고 북한산을 찾는 사람들은 백운산장을 찾는다등산객들의 쉼터와 식당이 되어주고 때로는 잠자리가 되는 백운산장북한산은 북한산성을 안고 있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우리 삶의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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